2018년 3월 9일 금요일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롬 11:22)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는 이 세상에서는 지속됩니다.
양면성으로 동시 작용입니다.
이 내용을 바울 사도는 롬 11:22에서 명백해 했습니다.
전에는 일방적으로 엄위만 작용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구원 받아 인자 안에 있습니다.
바울의 경고는 이 인자 안에서 줄곧 나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인위적 교리는
엄위가 이제는 지나갔고 인자 일방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왜 성경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멋대로 해석하는지.
이런 것이 인간의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 오만함을 버리기 전에는ㅡ.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구원받아 다시는 나 위해 살지 않기로 했으니(고후 5:15/롬 14:7-9)
그대로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랑하여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 일방적으로만 인식하도록
지금까지 너무나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워 온 까닭에
구원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데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내가 "인자 안에서 계속하면"
"하나님의 인자도 계속되신다"는 그 뜻입니다.
엄위로 대하시지 않습니다. 엄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동시 작용입니다.
자아중심으로 나가 세상을 사랑하며 자기 부인을 버릴 때
그 때 엄위로 대하실 수밖에 없고 "너도 찍히리라"(롬 11:22) 한 것.
고로 사랑 가운데 다시 말해 나 자신을 위해 살거나 죽거나 하지 않고
주님만을 위하고 사랑하여 우리가 보내심 받은 대로
그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룸을
매일 먹는 양식처럼 여길 때(요 4:34/20:21,22)
(그것이 구원받은 이제부터는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므로)
사랑의 생명을 우리는 바울처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자랑을 두고 단언하거니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면서ㅡ.
죽은 아담이나 영원 멸망의 운명에 처해진 악령들은
우리를 기준하면 하나님의 엄위에 해당되었던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 안에 계속 머물지 않고
자아중심으로 벋나갔기 때문입니다.
새 창조를 입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서 우리라고 특혜는 없습니다.
똑같이 평등하게 모든 피조물을 대우하십니다.
우리라고 더 불쌍히 보시고 그들이라고 덜 여기심이 없습니다.
바로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
바울 사도의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의 구원을 이루라"입니다.
나의 영원 생사는 나 자신이 결정하지
누가 대신해 주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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