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5일 화요일
사람들은 종교 생활을 선호한다ㅡ허나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
판에 박힌 의식적인 종교 행위ㅡ사랑과는 당연히 무관하다. 사랑은 삶 곧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 구원의 복음(희소식)을 이런 종교로 바꿔치기하는 일에 사탄은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손댄 것은 아니다. 말씀은 그대로 존속하지만 사탄이 그 가짜를 만들어놓고 속여 왔다는 그 뜻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에 바울은 "살아 있는 제물"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이 합리적인 상식에 맞는 이치에 합당한 예배라 강조한 것인데도 오늘날까지 전반적으로 이 경고를 무시해 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ㅡ머리이신 주님과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물은 제물이나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제물. 원천적인 의미로도 그렇고 실제 상황이 또한 그렇다. 날마다 십자가 지고 가는 우리 각자의 행보가 그러하며 또한 악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인지라 악인이 의인에게 가증스러움이 되는 것처럼 의인은 악인들에게 똑같은 가증스러움이 된다고 성경은 명백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인들은 이 세상 신 및 수하 악령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사주하는 세상 사람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므로 끊임없는 핍박과 탄압의 대상이 되어 왔고 주님 오실 때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악재를 하나님께서는 막중한 가치의 호재로 전환/변환시켜 주셨으니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그 남으신 고난에 그 몸으로서 함께 나누는 영광이요 은혜다(빌 1:29).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배척하신다는 뜻이라기보다 사랑 없이 형식에만 치우쳐 나타내는 외식적인 것을 가증하게 보신다고 구약에도 강조되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형식을 정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일절 관계 없이 사랑의 순종이 주관하는 일상 삶을 중요시하시므로 당연히 이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모든 예배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일 수밖에. 이상 강조한 대로 견해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오직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것이라는 이 본질에서만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니(롬 14:7-9) 이는 항구적으로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하고 사랑 없이 자아중심으로써 형식에 치중할수록 자기 형식에 맞추지 않는 일체를 부정하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나아왔고 교파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이제는 여기서 탈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회개 않고 고집할 때 탈락될 것이다. 탈락하는 자는 예외없이 적그리스도를 추종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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