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6일 목요일
우는 자는 복이 있고 웃는 자는 화를 면치 못하리니ㅡ"지금은 심한 통곡과 눈물"의 때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18-20)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으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다"(고후 2:4)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빌 3:18)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히 5:7)
이 세상이 "고해(苦海)"라는 것은 사해(死海)요 누해(淚海, 눈물의 바다)라는 뜻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사 8:19) 한 대로 절대로 신접(神接)한 자와 상관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과 상관하면 필연코 단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러나 귀신들과 접촉하는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은 온통 원귀와 원혼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이 세상 인생 살이의 한(恨)과 원(怨)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구원의 대상이 되는 아담의 씨(네피림의 망령과 대조해서 하는 말)로서 세상에 태어난 이들은 죽으면 그 영혼이 이 세상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일정한 곳에 수용되거나 가는 곳이 정해져 있지만(눅 16:23) 네피림의 망령들은 세상에 배회할 수밖에 없어 이들이 성경에서도 말하는 "귀신"들이고 악령들과 합세하여 인생들을 각종 거짓으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거짓이기 때문에라도 그들의 말에 경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에게 묻는 죄를 범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럴 경우 사무엘 선지자로 나오는 귀신이 영역에는 "gods"(엘로힘)라 되어 복수입니다. 사무엘의 영이라면 단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의 작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자로서 비극적 존재가 아닌 경우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온전하고 일없고 잘 살고 잘 되는 것 같으나 실상을 알고 보면 욥기에도 나오는 대로 사람 한 평생이 고난과 고통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사막의 신기루 같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여"(요일 2:15)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영락없는 자살 행위입니다. 소위 대형교회에서 간판처럼 내다 거는 "하나님의 측복 받아 잘 산다"는 말은 마귀의 말임을 자체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의 교주들의 생활상을 보면 한결같이 호화판 일변도입니다. 아무리 비단 같은 말을 할지라도 그리고 초능력을 나타내더라도 이러한 측면 한 한 가지만으로도 능히 그 정체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진리는 공동체 의식 즉 한 몸 체제에서 오는 동류 의식에 있습니다. 100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고통 중에 있으면 그 한 명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나머지 99명 모두가 그 단 한 명의 고통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한 몸의 삶의 구조입니다. 이것이 이상향적 삶의 기본 뼈대입니다. 자아중심은 나만 편하면 제일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욕심이 죄의 기본입니다(약 1:15). 때문에 이 세상은 삶의 터전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세상의 실상을 알고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세상과 벗하고 짝하고 더불어 함께 지낼 수 있다는 망상을 접어야 합니다. 고통과 번민과 각종 비극과 불행에 시달리는 인생들을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에만 노심초사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때문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은 예수님은 확언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죽음뿐이고 우리 인간에게는 이 자연계에 속한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임을 "여우는 굴이 있고 새는 둥지가 있되 인자 곧 사람의 아들 즉 인간은 머리 둘 곳 하나도 없다" 하신 말씀으로 단언하셨습니다. 이런 비정상인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면 즉 살고자 하면 영원히 잃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요 12:25).
다음에는 이것 저것 세상 일에 분주하고 마음을 쓰는 것을 가리켜 인생은 죽음뿐이고 죽은 자이니 "너는 오직 생명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뜻으로 "죽은 자들로 하여금 저들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 생명의 일에 투신, 헌신하였으면 오로지 이 일에만 전념할 것이지 이것 저것 한눈팔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눅 9:62). 제아무리 나는 믿음으로 은혜로써 구원되었다고 백날 외쳐보아야 천국 들어가지 못합니다(마 7:21).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믿으면(특정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사막의 신기루만 가리키며 따라가도록 만든 것이 사탄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데(갈 5:6) 사랑 없이 무슨 믿음이고 또 구원입니까. 사랑은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것인데(고전 7장) 말만 가지고 행동이 없는 사랑을 누가 신뢰할 것입니까.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헛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을 한 야고보서를 애초 성경에는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했을 정도로 이미 오래 전부터 구원의 말씀에 무식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절대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건마는 중간에 세월이 흘러가면서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변질된 것입니다.
축복 받아 잘 살고 세상에서 형통해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이나 하는 듯 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듯이 그런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이들은 모두가 거지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논리가 됩니다. 이런 것 하나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상식까지 완전히 마비되어 마귀에게 덮어씌어진 것입니다. 살겠다는 욕심뿐이기 때문에 그런 망발을 하게 됩니다.
뜻 있는 이들끼지 모아 합심 기도하기를 힘쓸 일입니다. 두 사람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합의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아도 부부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각방을 쓸 정도로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제사장적 기도에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수준은 이에 비하면 저만치 발치 밑까지 가 있다는 표현도 틀렸습니다. 아예 죽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얼마나 초대 교회 표준에서 멀어져 있는지 정작 알고 보면 말도 못할 지경입니다.
적 그리스도가 곧장 나타난다는 징후가 진하게 묻어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 곧 하나님의 교회는 모두 그 손에 와해됩니다. 난데없이 휴거라는 교리를 만들어 교회는 그 손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들의 권세가 깨어진다"(단 12:7)고 했습니까. 모두 세상 삶의 욕심에서 나오는 망념들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살전 4:17)고 바울 사도는 말했는데 그것은 그런 모든 탄압 중에서도 살아 있는 이들에 한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살아남게 되는지 그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닙니다. 그런 사실만을 바울이 지적한 것뿐입니다.
"몇이든지 죽이게"(계 3:15) 되어 있다고 계시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휴거의 교리 가지고 다툴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믿든 아니 믿든 어쨌든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알리고 사람 삶의 본을 나타내는 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일 때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중하게 명하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3: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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