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갔습니다. 하수관 통 속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디오게네스(깡통은 차지 않았지만) 앞에
젊은 알렉산더는 거만하게 서서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하라, 들어주리라" 했습니다. 그 때 디오게네스 답왈,
"소원? 내 앞을 가리고 서셨으니 햇볕이 차단되었으므로
한 쪽으로 비켜 서 주시겠소이까". 나중에 알렉산더는
돌아가면서 측근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저 디오게네스가 되겠다". 알렉산더는 이 세상의 제왕이었지만
디오게네스는 무관의 제왕(無冠帝王)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누구 그 무엇에도 꿇리지 않는 자유인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ㅡ이것이 가장 큰 자유입니다. 자기 부인이 그 자유인의
풍도(風度)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나 자신이
바로 나의 최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도 사탄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몰락해 버린 예
중의 하나입니다. 양단간의 선택입니다. 극과 극의 대립 구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자유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자유는
하나님에게만 종속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도
자유입니다. 왜냐면 사랑 관계에 있으므로 사랑은 절대 자유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스스로
종속하는 것이지 결코 강압에 의해 타의로 종속하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일방적이 아닌 쌍방 교차(또는 교류) 종속입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마지막 아담께서는 "나는 너희들 가운데
섬기는 자로서 존재한다" 선언하셨습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진 자발적인 섬김, 주인 의식으로서의 섬김, 따라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내 스스로 좋아해서 나타내는 섬김,
이것이 자유인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福音,
희소식, 좋은 소식, 복된 반가운 소식)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함"(사 61:1)인 것입니다. 포로되어
구금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방법을 전하기 때문에 반가운
소식 즉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한 정문일침(頂門一鍼)
진화론의 허구성을
논함에 있어 논점을 다른 데에 두지 말고, 현재 인류가 애초의
초자연계 존재로서의 상태에서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계 육체로
전락, 퇴화(진화와는 반대 개념)되어 있는 사실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창조자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아무리 강조해보아야 핵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겉으로만
맴돌 뿐입니다. 핵심은 인간(아담)이 현재 악령들이 변장,
가장하여 소위 "외계인"이라면서 온갖 요술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초능력의 초자연계 존재였음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이들도 전혀 그 방면에는 눈을 돌리지 못한 것이니,
성경을 인위적으로만 해석하고 계시를 통해 나타내시는 진리로서는(마
11:25-27) 믿지 않는 오만함 때문입니다.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통하지) 않고서는
전반적으로 성경의 모든 사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구원 받음에는 지장이 없었던
것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경고하신 대로 워낙 구원의 방법이
간단 명료했기에 사랑으로 순종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
때문이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무식 무지가 방치될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을 인식해야 합니다. 왜냐면 악령 곧 이 세상
신(神)이 온갖 지식과 속임수를 동원하여 스스로 창조자로
가장하여 나타나게 되어 있는 바로 그 시점이 오늘날이기
때문입니다.
진실 검증
구원 받기 위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강조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자기 기만입니다.
① 그러나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고난을 강조하고 이
세상 삶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나올 때에는 그 속에 거짓이
없고 오직 진리뿐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까지는 줄곧
세상의 미움을 받고 핍박 받고 고난 받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신이 마귀이니까 당연히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는 그러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② 이 말씀에 반하여,
이렇게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삶을 사랑하고 세상
권력 위에 군림하려 하는 소위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이 말씀의 진실성을
거듭 다시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위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면 이 세상 신이 이와 같이 가짜를 만들어 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요, 가짜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진짜가 있음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돌보지 않고 기피하고 무시하는 최대 약점이 오히려 최대
강점이 되어 있는 것이니, 여기서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집니다.
아래 글은 먼저 올렸던 글을 삭제하고 약간 보완하여
다시 올립니다.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은 반복 학습에 의한 자기 세뇌를 기대하기 때문인데, 바울 사도나 베드로 사도나 그 편지에 "너희가 이미 진리에
섰으나 다시 기억 나게 하려 한다" 하였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하기를 힘쓰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효과를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오늘날까지 인간의 교리로
가르쳐 온(마 15:9) 것과의 차이가 너무 현저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니까 당연히 세상 위에 군림해야
한다거나 하나님의 피조물 세상이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만사 형통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 등이 모두 그런 "사람의 계명이요 교훈"들입니다.
축복 받아 이 세상에서
잘 살라ㅡ이것은 이 세상 신인 마귀나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고로 이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 축복 받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속임수요 거짓임을 확신하면 틀림
없습니다. youtube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 소위
ufo라고 하여 악령들이 인간을 속이며 벌이는 광경을 보십시오.
저들은 공중에 자유자재로 돌아다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신 그대로입니다. 날개가 없어도
무궁무진한 에너지로 종횡무진으로 쏘다니고도 피로할 줄
모릅니다. 초자연계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거든 이들의 그러한
놀음놀이를 보면 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초라합니까. 가히 생명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천사에게다 날개를 붙여주는 것은 성경에 무식한 인간들의 상상이요 그야말로 소설입니다. 악마가 그렇게 믿도록 조장한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것을 믿지 마십시오. 날개 형상은 천사가 아닌 그들보다 먼저 창조된 즉 6일 창조에 속하지 않은 그 이전 창조의 영물들인 그룹(cherub)과 스랍(seraph)만이 지니고 있는 형태입니다. 물론 날기 위해서의 날개가 아닙니다. 6일 창조에서 에덴의 초자연적 바탕으로 창조된 천사들 즉 영물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거니와 온갖 무쌍한 조화를 부리며 공중이나 바다 밑이나 마음대로 휘젓고 다닙니다. 날개가 왜 필요하답니까. 그들에게는 인간처럼 병균의 침입도 당하지 않습니다. 사고를 당해 불구되는 일도 없습니다. 완전한 자유의 삶입니다.
앞서 보신 동영상에서
인간과 같은 형체 둘이서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에서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데 사람들의 비디오 조작인지 아니면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만약 실제로
악령들이 그런 식으로 변장해서 놀음놀이를 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악령들의 실존 및 인류에 대한 그들의 속임수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장난도 아니고
그들의 허약한 구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본보기인
까닭입니다. 천사는 악령들과 같은 본질의 영물이므로 다시
말해 거룩한 천사들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악한 쪽을
선택했기에 그 일부가 악령이 되어 있을 따름으로, 자연계
육체가 아닙니다.
천사가 인간에게 나타날
때에는 성경에서처럼 반드시 사람(자연계 육체)으로 나타나고
악령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합니다. 날개는 동화 같은 속임수입니다.
얼마나 지금까지 악령들이 인생들을 속여 왔는지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사탄은 용(龍)이지 당연히 날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자와 같은 모양새로 천사를 나타낸다는 것은
그것이 악령에 의한 것이든 인간의 조작에 의해서든,
가소로운 속임수 또는 그런 속임수에 놀아나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무지라 할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모든
기이한 기적들도 천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행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막강한 초능력이므로 우리로서는 한 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 나머지 현상들은
오늘날 비록 나쁜 의도 즉 인생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악령들이 소위 "외계인"이니, "외계 우주선"이니
하며 나타내는 것으로써 엿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각종 "기적"을 악령들은 전시할
작정으로 있으니 그 때 가서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거짓까지
보태서 하나님으로 분장하여 나타내는 바 인간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니까 충분한 성경 지식으로 지금 단단히 완전무장하십시오.
그 때 가서 어리석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공중에서만 아니라 깊은 해양 속으로 안마당 드나들 듯이 하고 있는 저들 영물들입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바로 이렇게 살아야 <사는> 것입니다. 이렇지 못하고 내일 죽을지도 몰라, 오늘 이 시간 무슨 사고를 만나 불구가 될지 혹은 목숨 끊어질지도 몰라, 음식 잘못 먹어 당장 송장이 될지도 몰라 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어찌 사는 것입니까. 이다지도 약한 육체, 종이 곽만도 못하다 할 자연계 육체를 가지고 살려고 하다니요. 이렇게 안개 같고 바람 같고 이슬 같은 목숨이 신기하게도 오늘 내일 이렇게 연이어 가는 것은 모두 3운법칙에 의한 통제 덕분입니다. 왜냐면 그 죽는 시간이 오기까지는 그야말로 불사조처럼 지탱할 수 있도록 장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인생들은 눈이 감겨진 채 "살아도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으로 우왕좌왕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한 수명이 사람마다 달라 일률적인 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장치가 있기 때문에 이 종이 곽만도 못한 인간 육체가 잘도 버티어 나가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입니다. 종이 곽만도 못하다는 것은 종이 곽은 그대로 바스러져도 그 형태가 그대로 종이로서 남지마는, 자연계에 속한 인간 육체의 형태는 숨이 끊어지는 즉시 변화가 일어나 흉한 몰골로 썩기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고로 이런 삶을 하나님이 살라고 하실 리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축복 받아 이 세상 잘 산다는 것은 마귀의 소리임을 다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잘 사는 흉내를 내고(왜 흉내라고 하느냐 하면 그것이 위의 설명대로 잘 살기는 고사하고 삶의 모양새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과시할 때에는 틀림없는 사이비임을 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집회를 거대한 것으로 과시하고 호화판으로 장식하고 세상 군왕처럼 군림하는 자세를 조금이라도 내비칠 경우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양의 털의 옷을 입은 이리이니 즉각 퇴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회에서 탈퇴하시기 바랍니다.
그 남으신 고난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데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 계시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고난 받는 북한 교회입니다. 거기 계시는 증거는 100%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차한 육체의 삶을 위주로 감언이설을 쏟아내는 곳이 있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 불문곡직하고 나오십시오. 그런 곳에 진리는 없습니다. 진리를 모방하여 말을 할 수는 있으나 사람이 구원되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 곧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 그 증거에 있습니다. 이 증거는 주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주님과 함께 고난 받는 중에서 누리는 자유에 있습니다.
북한 교회는 겉으로는 부자유 그 자체이나 진정한 자유인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면 축복 받아 사업이 형통한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리스도 오시기 전 그 그림자적 형태로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모세 율법 시대의 것을 마치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처럼 속이는 말들입니다. 지금은 "십일조"만 아니라 10의 10조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요 내 것이라고는 없으니 모두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왜냐, 그리스도 친히 자기의 전부를 나에게 선물로 영원히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냄으로써 사업이 형통한다면 그것은 그 정도라도 내는 데에 의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 하신 말씀이 응했기 때문이라 하겠지요.
그리스도 친히 나의 소유가
되어 계십니다. 그러면 말 다 한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나와의
주종 관계는 이렇게 주인 친히 그 본을 보이심으로써 종된
내가 따르게 하심이니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리
심신 허약자라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이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입니다. 만국 공용어입니다. 이 사랑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여기에 구원의 이치가 다 설명되는
까닭에 일자 무식자, 어린 아이라도 듣고 믿으면 구원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비진리를 가름하는 중요 척도 중의 하나가
되므로 이 점 다시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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