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사람의 아들"/사람의 세상과는 완전 결별해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구원ㅡ신천신지로 진입














지금까지 "기독교" 교리의 가장 큰 맹점(盲點)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독교"(성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는
에덴낙원이 초자연계고 아담이 영생하는 자로 창조되었음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영계가 아닌 자연계 동산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담은 자연계 존재로 에덴낙원에서 쫓겨나 천년 가까디 산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들께 한 가지 수수께끼를 던지겠습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이 무엇을 목표로 합니까? 영생?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신다"(요 3:16).
마틴 루터는 이 한 구절만 있어도 성경으로서는 충분하다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는 죽음이고(롬 6:3)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부터 죄인으로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죽는다"고 경고하셨음에도 아담이 어기고 죄를 지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때문에 죄가 오고 그 결과가 죽음입니다(롬 5:12).

그러면 수수께끼는ㅡ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이는 영생 못하는데,
이는 ①죄 용서를 못받아서입니까 아니면
②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영생 못하도록 창조한 결과입니까
즉 초자연계 몸이 아닌 자연계 몸으로 창조하신 까닭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둘 다"라고 하면 정답이 아닙니다.
그리 되면 성경과는 무관한 대답이 되므로 무의미하게 됩니다.

①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하나님이 영생 못하는
한시적 생명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인데 뭘 그러냐 할 것이요,
②라고 하면 성경이 분명히 죄 때문에 그렇다고 못박았는데
그 의미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당장 공박이 들어올 것입니다.
이런 가당치도 않은 딜렘마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위에서 전제한 것처럼 아담이 자연계 존재였다고 착각한 데에서
즉 에덴낙원이 초자연계였다고 제대로 성경 해석을 못한데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첫 단추 잘못 끼우니 나머지 단추도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이제는 단추를 다 채웠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조리 다 풀고 다시 새로 단추를 끼워 가세요.
"대신 죽음", "로마서 7장은 바울의 개인 체험" 등 모두 버리세요.

지금도 늦지는 않으니 성경대로 바로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성경 해석"에서부터 탈피해야 구원됩니다.
이유는, 사탄의 속임수는 그 "역사와 전통"보다 더 오래이기 때문.

에덴낙원이 영적 세계라는 것을 알지 못한 허물이 큽니다.
그러고도 어찌 감히 "성경을 안다"고 해왔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ABC도 몰랐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종국적으로 자기 영혼을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해석에 관한 유일한 권위는 성경 자체입니다.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이같이 큰 구원"ㅡ소홀히 취급하면 닥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히 2:3)









24시간 그리스도(對稱 아담) 의식이 "온전한 사람" 되는 비결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고결함을 추구함도 아니고 
이상형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평범한 삶의 유지를 말합니다.
이런 온전함을 대단한 무엇처럼 여기는 것은 
아담 범죄 후 우리 인생이 워낙 죄에 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비로소 대칭 아담 안에서 사람 같이 살아보는 
첫 행보를 내디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대칭 아담 안에 있게 되었다는 것은 
고아/孤兒되었다가 이제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뿐입니다.  
"엄마 품속의 아기"를 이상하게 여긴다면 
만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곧 성자/聖子를  
"아버지의 품속"(요 1:18)에 계신다고 했으니 
우리도 따라 이해하는 것인데 흠될 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