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8일 금요일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이르지 못하는 이가 많아(행동에 옮겨야 산 지식)-딤후 3:7




3위1체 원리나 3운법칙(인간 生涯의 법칙)은 이 자연계와 대칭꼴로서의 초자연계가 반드시 있고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또한 있어 그 모든 원인의 제1원이신 창조자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니 인류에게 전달하시는 메시지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말씀이 성경의 형태로 내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줌에 있다.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 확실함이 보장돼 있음은 물론이다.

고로 성경에 악마 용이 있어 인간 세계를 직접 지배하고 그 수하 악령들이 인생들을 철통 같이 조종하고 그리고 불법적으로 파생시킨 인간과 악마의 튀기(잡종)인 "네피림"의 혼백들 즉 귀신이 소위 "전생(轉生), 윤회"를 통해 그 후대들을 연달아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하여 이 세상이 이러한 귀신의 천하가 되어 있음을 알리는 사실이 DPA(Devils' Practical Appearances), NSO(Nephilim Soul Orb) 등으로 증명된 것이다. 내피림이 생긴 연유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질러진 데에 있는 것도 사실이나 이와 같이 효율적인 인간 통제와 조종을 위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가 네피림인지 알게 되어 있지는 않다. 워낙 속임수에 능통한 자라 네피림이 아닌 사람을 공연히 뒤집어 씌워 증오의 대상이 되게 할 것이 뻔하므로 그런 것을 아는 인식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하시지 않았다.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 올리려 할 때 사무엘을 가장한 귀신들이 점쟁이의 눈에 띄었다고 성경이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에는 복수가 아니지만 영역에는 "귀신들"이라고 했다.

사무엘이라면 단수이지 여럿일 턱이 없는 것이다. 즉 귀신들의 짓거리임을 성경은 일언반구의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밝힌 것이다. youtube에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속지 말 일이다. 때가 오면 어쨌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이 마귀의 무리라고 뒤집어 씌워지기는 마찬가지나 이런 일로 속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네피림 족의 소위 "윤회"가 가능하냐, 그야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처럼 NSO가 자기네끼리의 어떤 정해진 규정에 따라(그러므로 아무나 언제든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닌 듯) 그냥 인간 여자의 태에 들어갔다가 열 달 채우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악령들이 처음에 태어나게 한 자들은 모두 아비들의 직접적인 초능력 그대로 나타나져 엄청나게 장대한 거인으로 나오지만 이렇게 윤회를 통해 난 족속들은 그런 신체적 특징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노아 홍수 이후에도 이런 네피림이 있었음을 이스라엘의 가나안 여정 중에 성경이 언급하여 "인간이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이 보였다" 했으니 이스라엘 족속이 너나 할 것 없이 울며 불며 이제는 다 죽었다 하고 야단법석을 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인간들이요 피조물들인즉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지금까지 베풀어 오신 은혜를 믿어야 하는데 정작 필요한 시점에서 그들은 믿음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 네피림들은 거인들이 작당을 치면서 세상이 그 악에 물들어 너나 없이 홍수에 멸망했던 직후라 그런 네피림이 혼백인 NSO가 일단 태에서 나오면 그 정도의 거인으로 다시 소위 환생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를 거듭할수록 그런 거인으로서의 자취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모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실 때 모든 피조물들에게(creature-우리말 번역은 "만민") 전하라 하신 것이다. 인간 아닌 자(그 영은 네피림의 악령인 자)와 인간(아담으로 말미암은 정상적인 영혼을 지닌 자)을 구별하시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전자는 구원이 없음을 명시하셔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 하신 것이다.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피상적으로만 가를 때 전자는 물이요 후자는 불로 통한다. 그래서 주님도 불꽃 중에 다시 오심을 밝히고 있다(살후 1:7). 천사도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났고(행 7:30), 용이라든가 하는 악령들이 나타날 때에도 때로는 이글거리는 불꽃 중에 나타나 보임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과 악령들이 들어가는 영원한 불은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형벌의 성격이 있으므로 예외다. 어쨌든 이 세상은 말 그대로 악령들의 세계로 오염되어 있다.

이런 세상을 사랑함은, 처음부터 멸망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운명의 네피림과 함께 멸망하겠다는 의사 표시가 되는 것인즉 경고를 받을 일이다. 네피림이 세상에 많이 깔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얼마인지는 알 것도 없고 다만 그렇다는 사실만 인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이 네피림 중 하나가 아닌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네피림의 증거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인즉 자기 마음은 자기가 다스리지 누가 손대는가.

하나님도 손대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고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여 그 뜻대로 행하기로 작정하는 한 그런 기우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 걱정보다 성경에 명한 대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그것만 "힘쓸"(고후 5:9) 일이다. 또 복음을 잘못 배워 지금까지 자기중심으로 악하게 살아 왔더라도 지금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고전 8:3) 되는 것이지 그 이상으로 마음에 둘 일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이 너무도 두려워 한사코 이 사실을 부인하려 든다. 왜냐면 고양이 앞의 쥐들이 되어 있는 실상을 누구나 본능적으로 거부하려 하고 시인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일이 되지는 않는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타조가 기진맥진해 모래 속에 얼굴만 파묻고 사냥꾼이 보이지 않는다고 몇 초 자위(自慰)하는 꼴밖에 되지 않음을 각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고로 이 현실을 한사코 부인할 일이 아니라 이 일방적으로 덮치고 있는 대적(對敵)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 치기이니 양자 택일인즉 한사코 하나님을 찾을 일이요(찾으면 만나리라 약속하시고 "찾으라" 명령하시므로-사 45:19/55:6/암 5:4/마 7:7/골 3:1) 하나님을 아는 정도도 모자라니 한사코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생의 방향을 180도로 바꿀 일이다. 그러면 내 생명 곧 나 자신은 "내 주(主) 하나님과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여"(삼상 25:29) 있을 것이요 타조를 덮치듯이 나를 찾아 사냥꾼처럼 쫓아오던 원수들은 결국 그 종국을 맞아 "물매로 던지듯 던지심을 당할"(삼상 25:29 것이다.

지금 어정거리고 있을 일이 아니고 때가 아닌 것만 명심하면 될 일이다. 이 사실 앞에서 결단, 결정을 않는 것은 자기 생명을 혹한의 찬 겨울 바깥에 내동댕이쳐 두고 있는 것이요 사막 한복판에 내 버려두는 극히 무모한 자살 행위가 된다. 생명이 몇 개나 된다고 이리도 무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도 확신이 안생기면 확신이 생기도록 지금부터 죽자 사자 밤샘을 하고 머리를 싸매서라도 결론을 내릴 일이다. 언제까지 차일피일 하려는가. 인생은 본디(자연계 몸이 된 이후) 내일이 없다.

확실한 것은 오늘 이 시간뿐이다. 이 시간 이후 내가 어찌 될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내게 십 년 세월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십 년은 어영부영 눈 깜짝 할 사이 눈 앞에서 들이닥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이 원수들이 한사코 나를 차일피일하도록 온갖 수단으로써 유인 질을 하고 있는 마당이 뻔한데도 그리도 무관심하다는 말인가. 이러한 나태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멸망의 죽음이 오더라도 누가 나를 동정할 것인가. 자업자득이라 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왜냐면 이러한 확실한 경고를 받고도 내 스스로 나 자신을 방치했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원수 악령들은 끝까지 인생들을 파멸에 몰아넣으려 환장이 되어 있는 무리들이라(왜냐면 그렇게 해야 자기네에게 유리한 국면 전환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ㅡ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것이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인간을 속이는 데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 도가 통해 있는 자들인즉 각종 초자연계 현상(DPA, NSO 등)들을 소위 UFO의 일종이라 선전하게 될 것은 뻔하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도 믿지 않고 UFO도 미신이라 하여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때가 되면 악령들의 속임수가 그들의 목적대로 결실을 이룰 것이니, 그 때 가서는 하나님보다 악령들의 말을 더 믿어 그런 초능력의 현상들이 악령의 가장이요 변장이라는 진실을 외면하고 그 UFO와 관련된 것을 구세주처럼 믿는 여전히 어깃장 놓는 일만 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인간은 절대로 악령의 손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날고 뛰는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 믿어도 오직 그 손 안에서만 놀아날 뿐이다. 달리 도리가 없다. 인간의 오만함이여, 그대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온갖 증거가 오늘날처럼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도 여기에 눈을 주지 않으려 하니 지독하게도 뻣뻣하지 않은가.

이는 지독하게도 어리석다는 말로 통한다. 악령들이 악함도 이런 어리석음의 일종이다. 자기의 논리, 능력 그리고 이성적 판단을 더 믿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자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히 원리원칙대로 하시고 월권 행위나 변칙을 하시지 않는다는 그 믿음만은 어리석게도 이 악령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가시는 한은 자기네 명줄도 잘만 하면 이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일에 그들이 장담하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무기(武器) 때문이다.

즉 세상 사랑 때문에 절대 다수가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니 그렇게만 되면 이 세상은 현상대로 무작정 연속해서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나름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계획은 천사들과의 일대 결전에서 패배함으로 상당 부분 무너져 내렸음을 사탄도 시인하고 있어 지금 잔뜩 분에 부풀어 거의 발광 상태에 있다(계 12:12). 그래도 세상은 평온하다. 기어코 인생들만은 파멸에 몰아 넣겠다는 음산한 결심의 사탄의 속임수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겉보기의 평화와 안일의 속임수가 줄곧 이어지는 것도 아니니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 사건 이후 지금까지 이전에 보지 못하던 대량 학살극이 진행되어 오는 것을 보아도 그 진행 과정은 역력하다.

때는 이렇게 심각하건마는 성경은 빗발 같이 경고를 내리고 있건만 무심한 인생들은 사망의 잠에만 곯아 떨어져 세상 천지 모른다. 세상 술에 곤드레만드레 되어 인사불성이다. 하나같이 세상에 미쳐 있다. 미쳐 있다고 깨우치면 도리어 성을 내고 덤벼 드는 태세다. 왜 단잠을 깨우느냐, 왜 세상 평화와 안녕을 해치느냐,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게 되어 가는데 웬 잠꼬대냐 하고 도리어 잠 깨우는 자를 잠꼬대한다고 큰 소리다. 미쳐도 완전히 미쳐 있음을 되풀이해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미쳤다고 하면 네가 미쳤지 왜 내가 미쳤냐 한다. 노아의 대홍수의 재앙, 소돔 고모라의 불바다의 진노의 경고를 소위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는 이들부터 무시한다. 소돔 고모라의 죄(허울도 좋게 동성 성행위라 이름 지어 부르는)를 "인권 보호"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엄호하고 있는 세상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단단히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실상이다.

"이 세상 살기 좋은 문명 발달"은 자연계 육체에 속하여 한정된 생명의 구차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들이다. 그들 악령들처럼 초자연계에 속한 몸을 입고 나면 이런 것은 구질구질한 어린애 장난감이나 소꿉질 도구밖에 더 되지 않는다. 먼저 초자연계 몸이었던 원래의 영광부터 되찾을 일이니 이런 사탄의 사탕 발림에 혹해서 시간을 허송세월할 일이 절대로 아니다. 모르면 알고자 노력을 하고 깨우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는 자여, 소스라쳐 깨어 일어나라. 잠을 깼으면 사망의 잠을 아직 자고 있는 이들을 두드려 깨우라.

절박해 있는 위험 앞에서 어느 여가에 이것저것 노닥거리고 있을 짬이 있다는 말인가. 부단히 제사장의 기도를 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천하 만방에 알릴 임무를 받는 것이 우리의 구원 받음이다. 그래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신 것이다(요 20:21,22). "자는 자여 어찌 된 일이냐"(욘 1:6), 깨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보다 먼저 수장(水葬)될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한 그대로다(벧전 4:17).


이 블로그의 글 앞에서 각자 자기 인생을 조용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반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 사이트를 홍보하시기를 바라며 그 든든한 배경으로 그들을 위한 제사장의 기도를 끊임 없이 드려주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드리는 합심기도가 요망된다. 특별히 강조하신 말씀으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마 18:20) 하셨고, "너희 중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실 것"(마 18:19)이라 하셨다. 지금 이 시대는 양단간의 결정, 결단을 내릴 때요 그 어느 시대보다 이를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니 그만큼 시계(視界가 넓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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