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6일 토요일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을 창조하심ㅡ유인원이 진화한 것 아니다
출처(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뉴욕타임즈에서 옮긴 것):
http://www.nytimes.com/2016/03/25/science/researchers-find-fish-that-walks-the-way-land-vertebrates-do.html
Cryptotora thamicola라는 학명의 이 눈 먼 암굴 물고기(cave fish)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암벽의 90도 경사진 데를 네발 짐승처럼 올라가는 것이 태국에서 목격되었다. 그래서 물고기로부터 뭍의 네발 짐승으로 어떻게 "진화"되었느냐 하는 과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라고 자연 과학자들은 흥분하고 있으나,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이 이렇게 되어 있다ㅡ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었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0-29]
그러므로 물고기, 날짐승, 뭍짐승, 사람의 순서다. 다시 말해 물고기로부터 날짐승, 날짐승으로부터 뭍짐승을 만드시고 뭍짐승으로부터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뭍의 짐승 중 원숭이 즉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그러니 이 암굴 고기는 위의 날개 형태의 지느러미라 할까 발 형태라 할까 하는 것은 그대로 있고 아래의 (지느러미) 형태의 것은 발이 되도록 만드신 것이 날짐승이다. 그리고 다시 이 날짐승으로부터 날개마저 발이 되도록 네발 가진 짐승을 만드시니 이 뭍짐승 중에서 직립 보행과 방불한 형태의 고릴라, 침팬지 류를 만드시고 이를 토대로 사람을 만드시기에 이른다. 이렇게 과정을 거쳐 만드시는 것이 무어 그리 이상한가. 창세기에서 말하는 "6일"은 우리가 아는 대로의 365일이 아닌 것임을 그 앞 서술에서 확인된다.
성경이 "6일"이라 한다 해서 우리가 아는 "6일"로 이해하는 것부터가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이다. 그 6일이 도대체 얼마의 기간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4계절이 생기기 이전부터 그런 날(日)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면 족하다. 그것조차 알려고 한다면 과분한 것이니 우리의 처지가 지금 자연계에 속한 하릴없는 육체임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일거에 묵사발로 만들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처음부터 이런 자연계 육체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악령이나 천사와 같은 초자연 육체로 창조되어 있었음을 성경이 밝히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신학자들이 이를 인정했던가? 아니다. 여전히 에덴 동산을 자연계의 한 동산쯤으로 착각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래서 상식적 근거 위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시 무엇을 만드실 때에는(지금도 그러하나 사실상 이제는 현재 진행 중인 사람의 새 창조와 새 하늘, 새 땅 외에는 창조가 끝났지만) 창조이다. 고로 이미 자연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클라이맥스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을 위해 똑같은 자연계 동산을 만드시겠는가. 자연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창설하심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대칭성(짝)으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존재하게 하신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 3위1체 원리인 것이다. 자연계적 사실에만 시야를 국한시키니 항상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 짝이다. 남자와 여자, 짝이다. 인체도 좌, 우 양면으로 짝이다. 사람을 만드실 때도 먼저 좌면 좌, 우면 우 한 쪽을 만드시고 다른 쪽을 맞추는 식으로 만드신 것이라 생각된다. 별들도 제 짝이 있다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러한 짝으로 만물이 되어 있는 것을 밝힌 것이 3위1체 법칙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 사실을 확정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이라 해도 동양의 음양 사상이나 현대 물리학에서의 보어의 상보성 원리 겨우 그 정도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도 이런 사실을 확정적으로 규명해내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끝까지 보어의 주장에 동조하지 못한 것을 보라. 성질이 정반대인데 어떻게 그런 둘이 하나로 조화 일치할 수 있느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 성격에서 보어의 상보성도 음양 이원론도 그 둘의 관계를 제대로 규명해내지 못한 것이다.
즉 이 대칭 국면의 정반대되는 성질의 화합이 하나님 친히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모자(母子) 관계를 형성하고 계심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서 바로 그 계시는 모습을 따라 만유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둘은 대등할 수가 없다. 대등하면 하나로 존립 불가능이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파생됨으로써 비로소 하나일 수가 있는 것이다. 3위1체 원리는 바로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그 핵심이다. 양면성 구조는 이미 음양론으로나 상보성으로나 세상에 알려져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직 이 양자 관계가 원인과 결과, 실체와 형체 등 주종 관계로 있음을 주제로 삼는 것이 3위1체 원리다. 파생시킨 자와 파생된 자와의 관계를 편의상 "모자 관계"라 한다. 양성을 다 포함시켰으므로 듣기에도 수월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만물이 짝으로 되어 있음을 기정사실화할진대 하나를 알면 그 다른 하나에 대해 그 존재 어부를 따지려 할 필요가 없다는 여기에 또한 강조점이 두어지게 된다. 자연 만물이 있으면 초자연계의 존재는 필연이니 이를 증명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요, 자연계와 초자연계라는 짝으로 되어 있는 세계일진대 역시 같은 논리로 이들 결과물과 이 결과를 파생시킨 창조주가 엄존하신다는 것은 물으나마나, 따지나마나, 생각하나마나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연계 지식으로는 만년을 간다 한들 초자연계의 실상을 알 재주가 없다. 우리가 초자연계 육체의 존재로 환원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어 있는 그런 환경이다. 그런즉 초자연계의 초능력을 행사하는 판에 이런 인간을 대상으로 무슨 진화를 가히 들먹일 수 있느냐 그 얘기다. 이래서 3위1체 법칙의 비중이 그토록 크고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립되고 있는 둘 사이의 정반대의 성질, 이것이 바로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양자 얽힘"의 "엎 스핀"과 "다운 스핀"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3운법칙(인간 生涯의 법칙)의 SN유형과 OT유형 간의 3과 19라는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3과 19는 지금 지적하는 이러한 두 정반대되는 성질의 완전한 도치(倒置, inversion)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것이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드신 원숭이를 토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원숭이, 침판지, 고릴라는 그대로 오늘날도 존속해 있고 사람은 사람대로 번식한 것이다. 저런 물고기도 오늘날에도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니, 자다가 봉창 두드림과 같은 일은 이제는 그만 두고 자연과확자들은 영원 세계를 흠모하여 영생의 문을 두드릴 일이다. 진정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6일 창조의 그 하루가 우리가 인식하는 날수로는 얼마의 세월이 소요되었든지 간에 그런 것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으니 그리 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은 보지 못함이 된다. 달을 본다는 말은 "창조는 그래서 완료되었고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성경의 결론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적 사실은 수용하지 않고 진화는 아직도 계속된다고 하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성경 욥기에 "우박 창고, 눈 곳간, 운운" 하는 것을 두고도 말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 표현이 옛날 과학적 지식이 없던 시절 일식, 월식을 가리켜 하늘의 개가 해나 달을 삼켰다가 뱉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런 유치함이 아니냐는 뜻인데 그 자신 그런 똑같은 유치함에 싸여 있는 줄은 모른다.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는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그런 유치함과 똑같은 것이다. 창조주로서의 위치와 그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처지와의 차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무지인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 관련 설명도 인간을 기준하지 않고는 어찌 묘사가 가능하겠는가. 천사와 같은 영물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상이 아닌가. 옛 사람과 현대인의 지식의 차이가 있는데 모든 시대인에게 공통된 이해를 기대한다면 현대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대하는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로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여자가 끼이지 않느냐 하고 항의하는 것과 같다. 항의라도 하면 좋지만 내가 잘 났다는 식으로 그런 표현을 쓰는 성경을 골동품의 가부장제도의 유산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인간의 교만이라 하는 것이다. 이 오만함이 모든 일에서도 그렇지만 인간 구원에 최대의 장애 요인인 것이다. 인간의 의식 구조를 따라 부모 자식을 논하는데 이를 모자 관계라 하겠는가. 어쨌든 인간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담의 대표성을 따라 일관되게 "아버지"와 "아들"로 통일시킴이다. 첫 사람 아담이 인간의 대표가 아닌가. 닮은꼴은 먼저 원형(본형)이 있고나서야 생기는 것이다. 아담의 닮은꼴이라야 만족을 하겠기에 그 닮은꼴을 기왕 만드신 자연계 동물들의 암수 생성법에 따라 만드시니 비로소 남녀가 된 것이요 아담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 위주로 대표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남녀 구분은 영원 세상에서는 사라지는 것이니, 생식을 목표로 한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둘이 하나로 계시는 것처럼 3위1체의 원리를 따라 모든 것을 창조하심이다. 동물과 식물은 짝이요 영물들과 아담이 또한 짝이니 다스림을 받는 자와 다스리는 자와의 관계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성경은 아담 부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고 되어 있다. 아담 부부가 초자연계 몸이 되어 찬란한 광채로 둘러싸인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후 문맥으로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성경은 군소리, 잡소리를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자연계 몸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을 기준하여 서술하다보니 현재는 옷을 입어야 몸을 가리는지라 그래서 "부끄럽다'라는 말을 동원한 것이다. 왜 부끄러운가, 천사(영물)들은 그런 남녀 구분이 없는데 자기네는 하등 세계인 자연계의 동물들이 암수로 나누어져 있듯이 그런 모양새를 띠고 있었음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완전하고 후자는 남과 여로 나누어져 불완전함이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식 작용도 영원히 사라지고 없는 영원 세계에서 천사보다 못한 불완전한 남녀 유별이 지속될 이유가 없다.
"우박 창고", "눈 곳간"이란 표현도 우리 인간은 무엇이든 창고나 곳간에에 쌓아놓고 물건을 쓰듯이 우박도 눈도 필요한 때에 따라 언제나 다함이 없이 내리니 그런 식의 표현밖에 없지 않은가. 즉 "우박이나 눈이 생성되는 과정을 네가 지켜 보았느냐"는 의미로서 거대한 자연계의 경이가 그렇게 표현된 것으로 알면 손가락을 봄이 안되고 정상적으로 달을 봄이 되는 것이다.
한 몸 구조에서 각 지체가 하는 모든 일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 그 지시대로 행함이므로 머리가 그 지체를 통하여 친히 함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으로 묘사된 모든 말씀과 능력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행한 것이다. 천사들은 그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그 이름으로 말에나 일에나 행하는 것이 같은 이유이다. 그리고 머리되시는 이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 이름으로 즉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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