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제자들을 보내심
(누가복음서에서만은 이후 달리
70인을 보내심을 기록하고 있고 또 내용이 거의 동일하므로
여기에 한데 합쳐 놓았음).
(마 9:35) 예수님께서 모든 도시와
촌에 두루 다니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마 9:36)
군중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정처없이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
9:37)(눅 10:2) 이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군은 적으니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 주십시오' 하고 구하라" 하셨다.
(눅 9:1)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막 6:7) (마 10:1)(마 10:5) 둘씩 둘씩 보내시며
모든 더러운 귀신을 제어(制御)하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눅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병든 이들을 고치게 하시려고 내어 보내시며(막
6:8) 명하여 말씀하셨다.
(눅 9:3)(마 10:10)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돈이나 물건을 넣어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걸쳐 둘러매는
것)의 돈이나((마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막 6:9) 신만 신고 두 벌 옷이나 신도
가지지 말라(누가와 마태는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註). 너희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기를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 10:8) 병든
이를 고치며 죽은 이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막 6:10) 또 말씀하셨다. (마 10:11)
"아무 도시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이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 머물라. (눅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함이다.
(눅 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눅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눅 10:4)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눅 9:4) 어디서든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서 유(留)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마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눅 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기를 '이 집에 평안이 있으라' 하라). (마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빌어 준)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눅 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막 6:11) 어느 곳에서든지 (눅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마 10:14)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눅 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도시에서 나가 (그 거리로 나와서)
거기서 (그 도시에서) 떠날 때에 발 아래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눅 10:11) 그리고 말하기를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마 10:15)(눅
10:12)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그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도시보다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 10:16)(눅 10:3) 가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눅 10: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이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다".
(마 11:1)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셨다. (이 말씀 외에도 미래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잡히시기 6일 전에
역시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 대목에
가서 거기 모든 내용을 한데 모아 집중적으로 음미하기로
함-註).
기름을 발라 병을 고침
(막 6:12) 제자들이 나가서 (눅 9:6)
각 촌에 두루 다니며 '회개하라' 전파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고 (막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 (여기서의 "복음" 즉 희소식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이므로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길이 열려졌다 등의 내용임에 주목-註)
사도들이 돌아옴
(눅 9:10) 사도들이 돌아와 (막 6:30)
예수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낱낱이 보고하므로, (막 6:31)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었다. 따로 데리시고 '벳새다'라는 도시로 떠나 가셨으나
(눅 9:11) 군중들이 알고 따라왔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셨다.
(막 6: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가실 때 (막 6:33)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알고는 모든 도시로부터 그들보다 먼저 도보로 그 곳에
달려갔다.
'세례 요한'의 죽음
(막 6:14) 이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자 (눅 9:7)(마 14:1) 그 때 분봉왕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해하니,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눅 9:8)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막 6:15) 또 어떤 이는 '이 사람이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고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했기 때문이다. (눅 9:9)(막 6:16) '헤롯'이(마
14:2) 그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구인고.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한다"
하며 보고 싶어 하였다.
(막 6:17) 전에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가로채어 데리고 살므로 이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사람을 보내어 (마 14:3)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막 6:18)(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기를 "동생의 아내(제수)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다. (막 6: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해도 하지 못한 것은 (막 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었고 (마 14:5) 민중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 함이었다.
(막 6:21)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마 14:6) 생일을 당하여 신하들과 천부장(千夫長ㅡ1,000명의
병력을 거느리는 지휘관)들과 '갈릴리'의 유명 인사들로 더불어
잔치할 때 (막 6:22) '헤로디아'의 딸이 직접 들어와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하였다. 왕이
그 여아(女兒)에게 (마 14:7) "무엇이든 네 원하는 것을
구하라, 내가 주겠다" 하고 (막 6:23) 다시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겠다" 하므로 (막
6:24)(마 14:8) 그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구할까요?" 하니 그 어미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 하라"고 했다.
(막 6:25) 여아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제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니 (막 6:26)(마 14:9)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거절할 수 없어 (막 6:27)(마
14:10) 왕이 곧 호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가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막 6:28)(마 14:11)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므로 여아는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었다. (막 6:29)(마 14:12)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님께 알렸다.
여자와 아이 외의 5,000 명 먹이심
(마 14:13)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요 6:1)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어 따로 빈들에 이르시자 군중들이 듣고
여러 도시로부터 걸어서 따라 왔으니 (요 6:2)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봄이었다. (요 6:3)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요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通過節, Passover)이 가까웠다. (마 14:14)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요 6:5) 눈을 들어 큰 군중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막 6:34)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셔서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고 그 중의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마 14:15) 저녁이 되어 (막 6:35) 때가
저물어가므로 ((눅 9:12) 날이 저물어가니) 제자들이(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쭈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어가니 군중들을 보내어 (막 6:36) 촌과 마을로 두루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사먹게 해 주십시오. 우리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마 14:16)(막 6:37)(눅 9:13)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리고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셨다. (요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 '데나리온'(당시 유통된 화폐 단위)의 떡이 부족하겠습니다.
저희가 가서 200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일까요? ".
(막 6:38) 이에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요 6:8)(마 14:17)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알아보고 예수님께
여쭙기를 (요 6:9) "여기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않고는 안되겠습니다". (눅 9:14) 이는 남자만도 5,000 명쯤
됨이었다. (유대인의 셈법에서는 남자만을 다루고 여자는
제외시켰음-註).
(마 14:18)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막 6:39) 제자들을 명하셔서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요
6:10) 그 곳에 잔디가 많음이었다. (마 14:19) 군중들을 명하여
(막 6:40) 떼를 지어 혹 100씩, 혹 50씩 앉으라 하셨다.
(눅 9: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잔디 위에 앉히자 (막 6:41)(눅 9:16)(요 6:11)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셔서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원대로 나누어 주시니 (마
14:20)(막 6:42)(눅 9:17) 다 배불리 먹고 (요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요 6:13) 이에
거두니, (막 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 6:44) (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다.
(요 6:14)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였다. (요 6:1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모셔놓고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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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註-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5,000명이나
되는 큰 군중을 먹이시는 큰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셔서 제자들의
신앙고백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으니 예수님과 함께 하면 세상에 적수가 없고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군중들은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이런 장미 빛 그림으로 한 세상
만난 듯한 환상을 품지 말도록 주님은 경고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
세상이니 필연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도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실상을 충분히 알고 주님의 말씀을 온천하에
주저하지 말고 전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세상에서 목숨을 잃으면 얻고 사랑하면 잃는다"는
말씀을 연거푸 하시는 장면으로 나온다. 이런 말씀을 거듭거듭
강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세례 요한'도 사람이 의롭게(올바르게)
살아야 함을 담대하게 전하다가 목숨을 잃었듯이 세상을
악하다고 증언하는데 세상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세상이 그 악함을 인정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나아와 구원받을
수가 없는데 어찌 악하다고 증언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당연히 세상의 미움과 핍박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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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요 6:16) 저무니 (막 6:45)(마 14:22)
예수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자기가 군중들을 보내는
동안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막 6:46)
군중들을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마 14:23)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요
6:17)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아니하셨더니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數里)나 떠나서 큰 바람이 불어 거슬리므로
(요 6:18) 파도가 일어나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였다.
(막 6:47)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님은 홀로 저물도록 거기 뭍에 계시다가 (막 6:48) 바람이
거슬러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마 14:25) 밤
4경(更 -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 새벽 3~6시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으나 그냥 지나가려 하시니 (요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10여리쯤 가다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마 14:26) 놀라 유령이라
하며 ((막 6:49) 유령인가 하여) 무서워 소리 지르니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님을 보고서 놀란 것이다.
(마 14:27) 이에 예수님께서 즉시
더불어 말씀하시기를, (요 6:20)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므로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를 명하셔서 물 위로 오라 하십시오!"
하니 (마 14:29) "오라" 하시므로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다가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 질렀다. (마 14:31)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다.
(막 6:51) 그들에게 가시어 (마 14:32)
배에 (베드로와) 함께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므로 (요 6:21)
이에 기뻐하며 배로 영접하였으나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랐으니 (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해졌음이다.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하며(경배하며-註)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였다. 배는 곧 그들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 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군중들이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다가 (요 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님의 축복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었다} (요 6:24) 군중들이 거기 예수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
즉 (요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선생님),
어느 때에 여기 오셨습니까?" 하니 (요 6:26)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기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印) 치신 사람이다". (이 문답은 예수님과 군중이 가버나움
회당에 이르기 전후해서 진행된 것-註).
(요 6:28) 이에 그들이 묻기를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요 6: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요 6:30) 그들이 묻기를, "그러면
저희들이 보고서 선생님을 믿게 하실 그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요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양식, bread)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모세'가 광야 길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갈 때 사람들이 먹을 음식으로서 하늘로부터
내려진 것)를 먹었습니다".
(요 6:32)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내린
떡(양식, bread: 이후로는 "양식"으로 통일함-註)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내리시는 참
양식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이니 (요 6:33) 하나님의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요 6:34)
그들이 말했다. "주님, 이 양식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요 6:3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양식이니 내게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이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요 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말하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한다' 하였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이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이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할 것이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요 6: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양식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말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
(요 6:43)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끄시지 않으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요 6: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으니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다. (요 6:47) 진정,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이는
영생을 가졌으니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양식이다.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황야)에서 '만나'(註-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 아래 광야를 통해 복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던
나그네 길에서 하늘로부터 과자 같이 생긴 먹을 것이 날마다
내려 와 이스라엘 사람들로 먹게 하셨던 것을 "만나"라
함)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양식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다.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양식이니 사람이 이 양식을
먹으면 영생할 것이다. 나의 줄 양식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肉)이다".
(요 6: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meat)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drink)이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居)하는(to abide) 것이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므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
것이다. (요 6:58) 이는 하늘로서 내려온 양식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양식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다".
(요 6:5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다. (요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니 (요 6:61)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요 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요 6:63) 살리는 것은 영(靈)이니 육(肉)은 무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요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이들이 있다" 하시니, 이는 믿지 아니하는
이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었다.
(요 6:65) 또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다". (요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
(요 6:67)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데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요 6:69) 저희가 주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신
줄 믿고 알았습니다". (요 6:7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다". (요 6:71) 이 말씀은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니 그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님을 팔 자였다. (요 7:1) 이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었다.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막 6:53)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막 6:54) 배에서 내리니 그곳 사람들이 곧
예수님이신 줄 알고 (마 14:34)(마 14:35)(막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이를 데리고
왔고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이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와 (막 6:56) 아무 데나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市場)에 두고 (마 14:36)
다만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허락하시기를 간청하였고
손을 대는 이는 다 나음을(성함을) 얻었다.
장로들의 전통적 관습
(마 15:1) 그 때에 (막 7:1) '바리새'파
사람들과 또 율법학자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께
모여 있다가 (막 7:2) 그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 먹는 것을 보았다. (막 7:3) {'바리새'파 사람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적 관습을 지켜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막 7: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켜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pitchers, 물주전자)과 놋그릇을
씻는 등이었다}. (막 7:5) 이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마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적 관습을 준행치 않고 범하여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막 7:6)(마 15:3) 이에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관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 15:7) '이사야'가 너희 위선(僞善)에 대해 잘 예언하였다.
(마 15:8) 기록하기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다. (막 7:7)(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하였다. (막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관습은 지킨다. 너희가 너희 관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린다".
(막 7:9)(막 7:10) 또 말씀하셨다.
"'모세'는 ((마 15:4)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이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는데 (막 7:11)(마 15:5) 너희는 말하기를 '사람이(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해 주기를 허락치 아니하여 ((마 15: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막 7:13) 너희의 전통적 관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
(막 7:14)(마 15:10) 군중들을 다시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5)(마 15:11)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입에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막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막 7:17) 군중들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마 15: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십니까?". (마
15:13)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심은 것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그냥 두어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이들이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하시므로, (마 15:15)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이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주십시오."
(막 7:18)(마 15:1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까지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마 15:17) 무엇이든
밖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므로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 7: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다. 그러므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다. (막 7:20)(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막 7:21)(마 15:19)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
간음, 도둑질, 살인, 거짓 증언, 훼방하는 것, (막 7:22)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교만과 광패(狂悖ㅡ말이나 행동이
몰상식하고 도의에 어긋남)니 (막 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마 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
('누가'는 예수님 친히 손을 씻지
않으셨다고 기록하였으므로 여기 한데 모아 수록한다-註)
(눅 11: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파 사람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눅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파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므로 (눅 11:3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눅 11:40) 어리석은
사람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눅
11:41) 오직 안에 담긴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라(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to give alms of such things as you have(to give
alms of what is inside), to give what is inside (the dish) to the poor),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할 것이다".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
(막 7:24)(마 15:21)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거기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었다.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곧 그 지역에서 나와 소리 질러 말하기를,
"주님, '다윗'의 자손되시는 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하였다.
(마 15:23)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기를,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니 (그 청을 들어 주어) 보내시지요".
(마 15:24)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하시는데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님께 절하며 그 발 아래
엎드려 말하기를,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였다.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마태'는 '가나안'사람이라 했음-註)이요
'수로보니게(Syro-Phenician)'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막 7:27)(마 15:26) 이에 대답하셨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해야 할 것이니 자녀의 떡을
집어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막 7:28)(마 15:27)
여자가 대답했다. "주님, 옳습니다마는 상(床) 아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막 7:29)(마 15:28)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다. 이 말을 하였으니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하시니 (막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아 귀신이
나가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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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註-'이스라엘' 자체가 선민(選民)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일제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 대표적으로 한 민족을 일으키심으로
(믿음 있는 '아브라함'이란 개인을 택하심으로써) 그들로
말미암아 장차 모든 인류에게 공통이 될 '하나님을 알고'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메시아)를 영접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의 표본으로 세우시고자 함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을 차별하심이 아니라,
메시아(그리스도)께서는 오시게 되어 있는데 미리부터 이에
대비하여 인간들을 교육시켜야 하지만 모든 민족이 하나같이
다 타락해 버린 까닭에 그래서 이 사전(事前) 교육의 필요성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대표적으로 다루시려고 택하신 것.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장차 임하게 되는 그리스도 시대의
교회의 표상(表象)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구약을 읽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여기에도 있다(딤후 3:15,16/롬 15:4/벧후 1:21/3:16). 교회에 주시는 경고와 교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브라함의 자손들마저
손쓸 겨를도 없이 급격히 타락해 갔으니 사람의 심성(心性-렘
17:9)을 알 만하다 하겠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증손 12형제
가운데 다른 열 지파(支派)는 모두 타락하여 사라져 버리고
겨우 남은 것이 두 지파 즉 유다와 벤야민 족속들로서 이들을
가리켜 '유대'민족이라 하는 것이다. 고로 그와 같은 사전
교육 차원에서 대표적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가운데 '유대'
민족만이라도 끝까지 남음으로써, 인류에게 약속하신 메시아께서
마침내 오실 때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것이다.
고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신 것이다.
'유대'민족의 존재는 그러므로 메시아(그리스도)를 메시아로서
온 세상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여정과 과정은 교회를 표상하는 것이므로
오늘까지도 구약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되고 있다(딤후
3:15). 그런 맥락에서 '유대'민족이 거의 2,000년간 나라 없이
오늘날까지 열국으로부터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건재해온
것은 세상의 안목으로 보면 기적 그 자체로서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대한 실증(實證)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성경의 진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증거로서의 가치는 한결같다.
만일 오늘날 '유대'민족이 없어져 버렸고 오직 성경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다면, 그렇잖아도 앞에서의 지적처럼 하나님을 신속히
떠나고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 심성인데 성경인들
제대로 믿으려 하겠는가. 무조건 사실에 없는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성경 전체를 폄훼하게 되지 않겠는가. '유대'민족이 그 증거로서
현재 잔존해 있어도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은
인생들이니, 그런 경우 더욱 더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전체 인류를
위해 이런 구실을 담당해 왔던 그 의미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하겠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열망하시는 것은 물론이나,
특별히 '유대'민족이라 해서 타 민족에 비해 차별 대우를
하심은 없으니 만일 그렇게 하시면 이는 하나님의 원리원칙과
공평공정하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을 차별하실 리 없다(롬 2:11).
'하나님 구원'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의미는 성경의 하나님을 알고 '죄'를 깨닫는 바탕 위에서만
그 절박한 필요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가 바로 이 사실을 가리킴인 것이다. 그래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로 내보내실 때도 바로 그런 뜻에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음이다.
당시는 아직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이었으므로 모세 율법 아래 있는 질서를 따라
취하신 자세이셨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 이상과 같은
'이스라엘'의 영적(靈的) 교육 과정을 따르는 모든 이방인에게
차별없이 '그리스도 구원의 능력'은 유효한 것이다. 이방인을
"개"로 빗대신 것은, 우리 구원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 그 아들들이 됨으로써 한 가족을 형성하는 것임을 나타내심이니,
구원 받음과 받지 못함의 엄청난 차이를 또한 말씀하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받지 못함의
차이다. 마치 신(神-벧후 1:4)과 육체의 차이와 같고 사람과
동물의 차이와 같음이다. 결국 그 여인은 자기의 믿음으로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스라엘'과 아무 차별이 없게 되지
않았던가. 누구든지 이와 같이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임하는 것이요 이전과 같은 그런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엡 2:13,14)).
이는 사람을 만드셨을 때의 그
애초 창조하신 목적을 나타내심이다. 자연계에 이미
동물들이 있는데도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사람 값을 못하면 동물과 다름없는 것이며 아무리 사람을
가까이하는 짐승(개)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범죄하여 죽은 자가 되고 자아중심이 되어 의와
선을 행함이 없을 때는 짐승과 같지 사람답지는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교회(그리스도 오신 후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 의미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전달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에게 주시는 교회의 머리로서의
말씀이신 것이다. 모든 세상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 것이다.
그런 유대인 중에서도 제자들에게만 풀어 말씀하시고 그
외의 일반인에게는 비유로써 말씀하신 이유도 마찬가지다.
즉 교회 중에서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분되는 것. 전자는 제자들(12사도를 포함한)에게
한정되고 후자는 비유 말씀밖에 듣지 못한 일반 대중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결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처음부터
미리 택하셔서 구원 얻고 못얻도록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미리
택하심은 미리 아시는 것을 바탕으로 되는 것) 자기 스스로
"불의를 좋아하고"(살후 2:12)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함"(히 1:9)이 없을 때는 도리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이 악을 행하고
선을 행함으로 나누어 명백히 하신 것이(요 5:29) 그 때문이다.
즉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함이(요일
2:29/요삼 1:11/고전 15:34/롬 2:7,10) 없을
때는 구원과는 전혀 무관한 것(롬 2:7). 이 사실을 강조한 것인데,
이와 같이 선행을 강조하고 악행을 경고하신 사실을 두고(마
7:21/25:45) 온 세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도리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이미 모세 율법을
통해 말씀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중복해서 말씀하실
필요가 없을뿐더러 "모세는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말한다"
하신 대로 모세 율법은 그림자의 성격으로 그 윤곽만을 말한
것이고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이시니 온전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심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
상대가 아니라 교회 상대이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믿고
인정하여 그 모든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 교회이니,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말씀이 임하실 까닭이 없다.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pearls)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하신 것이다. 이 대목의 "개"도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에서 말씀하신 "개"와 같은 뜻이다. 그런즉 4복음서만
제대로 이해하면 구원의 도리는 온전히 완벽하게 전달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 서신들과 기타는 보완 설명이다. 보강해서
설명하는 정도이다.
세상 사람 가운데 교회로 구성되는
인원 수도 비교해 따지면 소수에 속하지만 교회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또한 소수에 속한다. 어느 정도의
소수인가 하면,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광야 교회"(행
7:38)라고 지목한 모세 인도하의 당시 이스라엘을 기준할 때,
그 60만 장정(군대로 나가 싸울 수 있는) 중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둘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상징성으로 보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의
기회는 만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 있으나(딤전
2:4/벧후 3:9) 처음부터 성경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살후 3:2)이라 한 대로 극히 제한된
숫자에 한하는 것임을 밝힌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적은 무리("little flock")"라 호칭하신
것이다. 또한 생명에 이르는 길과 문은 좁아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는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하셨다.
이는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서 하시는 말씀이시니 각자의 분발만이
기대될 뿐이지, 그 때문에 즉 구원 얻는 자가 제한되어 있다
해서 낙담하거나 위축될 일은 아니다. 가령 현재의 내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하나님은 아시나 나는 모르지만 그러나
이렇게 나를 아시는 하나님의 지식(미리 아심, foreknowledge)도
내 스스로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즉 모든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유 의지의 의미다.
그래서 "항상 복종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는 경고만이
이 세상에서는 항상 유효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 종교처럼
인간이 힘과 노력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니 이 경고는
오직 구원 받은 자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능력이 나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베푸심으로
가능해지기 때문.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고
내게 전지전능이 힘이 되어 주셔도 내 스스로 이를 버리거나
등한히 한다면 나는 잃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히 2:3).
그러므로 시험하는 자(사단)의
시험하는 무대로서의 세상에서 한번 구원 받았다고 해서
태무심으로 그냥 세상 삶에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무서운
자살행위는 없다. 이것이 즉 세상 삶을 사랑하는(요 12:25)
것이 사단의 시험의 3가지 침입로(侵入路, route-눅 4:3-13) 중
하나요 동시에 주무기(主武器)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한시적 인간 목숨을 가리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정의하신 데에서 확연히 이 사실은 드러난다(눅 13:1-5).
사는 것이 아니므로 "억울하게
죽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유대인이
빌라도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일로 혹자가 예수님께
고한 것도 그 죽음이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1). 이에 대한 하나님 즉 주님의 명확한 대답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망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 현 시점의 이 세상이요 인생이
지니는 전부의 의미, 단 하나의 의미이다. 이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로 말하면 영원 세상과도
맞먹는 것이니 왜냐면 바로 이 세상에서 각자는 자기의
영원한 운명 즉 사느냐 죽느냐를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를 주신 이상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각 사람에게 충분히 주신 이성과 지성을
동원하여 오직 자기 스스로 합당하고 올바르다고 여기는
바를 따라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정하신 것이다. 자기
운명은 스스로가 정한다-얼마나 합리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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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먹고 어눌한 이를 고치심
(마 15:29)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
(막 7:31)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마 15:30) 큰 군중이 (막 7:32)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그 발
앞에 두므로 고쳐 주시는데, 한 귀 먹고 어눌한 이를 데리고
와 안수해 주시기를 간구하므로 (막 7:33)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군중을 떠나셔서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막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었다. (막 7:35) 이에 그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
(막 7: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셔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나 경계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막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며, "그가 다
잘 하였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였다. ((마 15: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해지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을 군중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4,000 명을 먹이심
(막 8:1) 그 즈음에 또 큰 군중이
있어 먹을 것이 없으므로 (마 15:32)(막 8: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군중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니 먹을 것이 없다. (막 8: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것이다.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다". (마 15:33)(막 8:4) 제자들이
말하기를 "이 광야에서 우리가 어디서 이런 군중들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겠습니까?". (막 8:5)(마 15: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물으시니, 말하기를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습니다" 하였다.
(제자들은 그 전에 예수님께서 남자만도 5,000명을 먹이신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니 우리가 여기서 큰 경고를 얻는
것은, 우리 자신 그와 같이 잘 잊어버리고 명심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註).
(막 8:6)(마 15:35)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명하셔서 땅에 앉게 하시고 (마 15:36) 떡 일곱 개를 가지셔서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군중들 앞에 놓았다. (막 8: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으므로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셔서 이것도 그 앞에 놓게 하시니 (막
8:8)(마 15: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 8:9)(마 15:38)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약 4,000 명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마 15:39)(막
8: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달마누다'('마가단')
지방으로 가셨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다시 "표적'을
구한다-막 8:11,12).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
(마 16:5)(막 8:14)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 떡 가져가기를 잊었으니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었다. (막 8:15) 그 때에 예수님께서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삼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 16:6)(마 16:7)(막
8: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다"
하니 (막 8:17)(마 16:8)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 16:9)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리도 둔하냐? (막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치 못하느냐?
(막 8:19) 내가 떡 다섯 개로 5,000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기억치 못하느냐?" 말하기를,
"열 둘입니다".
(막 8:20)(마 16:10) "또 일곱 개를
4,000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말하기를, "일곱입니다". (마 16:11)(막 8:2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줄 깨달았다.
눈에 침을 뱉으시며 고치심
(막 8:22) '벳새다'에 이르니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손대시기(안수(按手))를
구하므로 (막 8:23) 예수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막 8:24) 우러러 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봅니다". (막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자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분명히 보게 되므로
(막 8:26)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셨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마 16:13)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막 8:28) 여러 마을로 가시다가
(눅 9:18) 따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더니 노중(路中)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를(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눅 9:19)(마 16:14) 말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합니다". (마 16:15)(막 8:29)
또 물으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눅 9:20)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메시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 16:17)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血肉)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말하지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명부(冥府ㅡ사망, 무덤,
저승)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줄 것이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8:18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막 8:30)(눅 9:21)(마 16: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셔서 자기가 그리스도(메시아)인 것을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사람이 그리스도이신
줄 알게 되면 그렇잖아도 군중이 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판이므로
우리 위한 죽으심을 이루시기에 지장이 되는 까닭-註) (눅
9:22)(막 8:31)(마 16:21) 이 때로부터 그리스도(메시아) 예수님께서
"자기가(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버린 바가 되시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되 (막 8: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諫, 어른이나 임금께
잘못을 고치도록 말함)하여 말하기를(흠정영역(KJV)에서는
"rebuked"라 되어 있는데 이는 나무라듯 하는 강력한
어조였음을 의미하는 바, 베드로 딴에는 예수님께서 패배주의로
약하게 나오신다고 판단했기 때문-註), "주님, 그리 마십시오.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마 16:23) (막 8:33) 예수님께서 돌이키셔서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하시고 (막 8:34) 이에 군중들과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마 16:24)(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일이다. (막 8:35)(눅 9:24)(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구원할) 것이다.
(막 8:36)(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눅 9:25)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막 8:38)(눅 9:26)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마 16:27)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을 것이다".
(막 9:1)(눅 9:27)(마 16:28)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는 것을(the kingdom of God coming with power)) (인자가 그 왕권(王權)을
가지고 오는 것을(the Son of man coming in his kingdom)) 볼 자들도
있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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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註-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확실한
자체 증명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미리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할 수 있음"을 선언하셨으니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그러하리라는 의미이시다. 거짓말로
지어낸 것으로써 어떤 종교 교리를 삼아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면 반드시 이 세상에서의 세력화를 꾀하게 되어 있고
선전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 거짓말쟁이의 목적은 조만간에
온 세상이 그런 종교화가 되어 그 종교 천하를 만드는 것에
있다고 자랑삼아 말하게 될 것이야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소수이어서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부끄러워할"
정도임을 이와 같이 친히 하신 말씀으로 소개했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런 말씀을 친히 하시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천하의 거짓말쟁이도 이런
내용의 말은 감히 지어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제자가
선생보다 크지 못하니 나를 핍박하였으므로 너희도 반드시
핍박하게(세상이 너희를 미워함으로써) 되어 있다"는
말씀 역시 같은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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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희어져 광채가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8일쯤
되어 ((막 9:2)(마 17:1) 6일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눅 9:29) 기도하실 때에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셔서 용모가
변하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그 옷이 희어져 빛과 같이
광채가 나 (막 9:3) 세상에서 빨래하는 이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다.
(마 17:3)(막 9:4)(눅 9:30) 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문득 나타나 두 사람이 예수님으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면서 (눅 9:31)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때 (눅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던 중 아주 깨어 예수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다가 (눅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막 9:5) (마 17:4)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쭙기를, "주님('랍비'(선생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으니 주님께서 원하시면 제가(우리가)
여기 초막(草幕) 셋을 하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습니다(지으십시다)"
하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였다.(막 9:6) 이는
그들이 심히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었다.
(막 9:7)(마 17:5)(눅 9:34) 마침 이
말 할 즈음에 홀연히 빛난(bright)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므로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눅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므로 (마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는데,
(눅 9:36) 소리가 그치고 (마 17:7) 예수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셨다.
(마 17:8) 제자들이 (막 9:8) 문득
둘러보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과 자기들뿐이었다.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막 9:9)(마 17:9) 그들이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님께서 경계하시며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 (막 9:10) 제자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막 9:11)(마 17:10) 이에
예수님께 여쭙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할 것이라' 합니까?".
'엘리야'
(마 17:11)(막 9:12)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일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다' 하였느냐? (마 17:12)(막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임의로 대우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시니 (마 17:13)
그 때에야 제자들이 '세례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깨달았다.
거품을 내고
(눅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 오시니
(막 9:14) 큰 군중이 둘러 있는 중에 제자들이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는데 (막 9:15) 온 군중이 곧 예수님을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였다. (막 9:16) 예수님께서 물으시기를
"너희가 그들과 변론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막 9:17) 군중 가운데 (마 17:14)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예수님께
와 꿇어 엎드려 말하기를,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제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습니다. (눅 9:38) 선생님! 간청합니다.
주님! 제 아들을 돌아보아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는 제 외아들입니다. (마 17:15) 그가 간질(癎疾, epilepsy)로
심히 고생하여 (눅 9:39) 귀신이 어디서든 그를 잡으면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거꾸러져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흘리게
하여 이를 갈게 하고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납니다.(마
17:16)(막 9:18)(눅 9:40) 제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바라고 데려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눅 9:41)(마 17:17)(막 9:19)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패역(悖逆, perverse)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눅 9:42)(막 9:20)
이에 데리고 올 때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곧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므로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렸다.
(막 9:21) 예수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기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말하기를
"어릴 때부터입니다. (막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자주
불과 물에 던져 넘어지므로 파리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도와주십시오".
(막 9:23)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하시니 (막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
질러 말했다(흠정영역에는 "눈물을 흘리며"(with tears)"라는
말이 있음-註) "제가 믿습니다! 저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하였다.
(막 9:25) 예수님께서 군중이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마 17:18)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벙어리되고 귀 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 (막 9: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자,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막
9:27)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섰다.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비에게 내어주시니 (눅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워하고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하게
여겼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막 9:28)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마 17:19)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기를, "저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능히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마 17:20) 말씀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다". (눅 17:5) 사도들이 주님께
여쭙기를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하니 (눅
17: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할 수 있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할 것이다". ((마
17:20)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해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막 9:29) 또 말씀하셨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다". (마
17:21) {없음}(그러나 흠정영역(KJV)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라고 되어 있음-註).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막 9:30)(눅 9:43)(마 17:22)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때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막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3일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는 연고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눅 9: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하시나 (막 9:32)(눅 9:45)(마 17:23)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기만 하고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요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함이었다.
성전세(聖殿稅)
(마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半)
'세겔'(당시 유통된 화폐 단위, 성전(聖殿)의 유지 보수를
위해 전 '유대'인들로부터 거두던 세금)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너희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 17:25) 말하기를,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關稅)와 정세(定稅)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마 17:26) '베드로'가 말하기를 "타인에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稅)
납부를 면할 것이다.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셨다.
누가 크냐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눅 9:47) 예수님께서 그 마음의
변론을 아시고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가 노중(路中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나 (막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기를,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막
9:35) 예수님께서 앉으셔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시고 (막 9:36)(마
18:2) 어린 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자기 곁에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막 9:37)(눅 9:48)(마
18:3)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이다".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마태는 어린 아이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중복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여기에 한데 모았다-註) (마 19:13)(눅 18:15)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안수하심과 기도하심을 ((막 10:13)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이들(어린 아기)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보고 꾸짖으니(마 19:14)(막 10:14)(눅 18:16), 예수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다. (막 10:15)(눅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이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시고 (막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셔서 축복하시고 (마 19:15) 거기서 떠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마 18:5)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다". (막 9: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메시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결단코 상(보답)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실족케 하는 이에게 화 있다
(마 18:6)(막 9:42)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小子, 아이)( (눅 17:2) 작은 자("little ones"))
중 하나를 실족(失足, 넘어지게 함)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둥글게
만든 돌을 굴려서 곡식을 찧게 되어 있는 바 큰 매의 돌로서
이 연자매는 말이나 소가 끌어서 돌리게 되어 있음. 매란
것은 두 짝 또는 두 개의 육중한 돌을 맞부딪쳐 그 무거운
힘으로 곡식을 찧게 되어 있는 기구를 말함-註)이 그 목에
달린 채 깊은 바다에 빠뜨려짐이 낫다.
(마 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다. (눅 17:1)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
양 100 마리가 있는데
(마 18:11) {없음}(어떤 사본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 함이다"라고 되어 있음)
(마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100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을 헤매고 있는 그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 18:13)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찾으면
길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 한 마리를 더 기뻐할
것이다. (마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 18:15)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6)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언케 하라.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불신자에 해당되는 의미)과 세리(죄인에 해당되는
의미)와 같이 여기라.
두 사람/두 세 사람
(마 18:18)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8:19)
참으로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실 것이다. (마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 (마
16:19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음).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말하기를,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겠습니까? 일곱 번까지 하겠습니까?" (마 18: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말하거니와,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한다' 하거든 용서하라.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마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臣僕)들과
회계(會計)하려 하는 어떤 임금과 같다. (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당시 유통된 화폐 단위로 하루 품 삯의 90,000배가
금 1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니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왕)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니 (마 18:27)
그 종의 주인(왕)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1'데나리온'은 하루 품 삯에 해당하는 당시 유통된
화폐 단위) 빚진 자기 동료 하나를 만나 붙들어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빚을 갚으라' 하니 (마 18: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기를, "참아 주시오. 갚겠소' 하나 (마 18:30) 허락하지
않고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므로 (마 18: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왕)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했다.
(마 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기를,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으니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에 가두었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막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赦,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막 11:26) {없음}(어떤 사본에, "너희가 용서치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용서치 아니하실 것이다"가
있음).
아내를 내버리는 것
(이미 산상보훈에서 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마태는 소개하고 있으나 연거푸 말씀하신
것으로 다시 기록하고 있으므로 여기 한 군데로 모아보았음-註).
(마 5:31) "또 기록되기를,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 5:32)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눅 16:18)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이도 간음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이에게 (무릇 버려진 여자에게) 장가 드는 이도 간음함이다".
(마 19:1)(막 10: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역에 이르시니 (마 19:2) 큰 군중이 다시 모여 들므로 예수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고 다시 전례(前例)대로 가르치셨다.
(마 19:3)(막 10:2)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막 10:3)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막 10:4)(마
19:7) 그들이 말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습니다". (마 19: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막
10:5)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마 19:8)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막 10:6) 창조시로부터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 19:5)(막 10:7)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막 10:8)그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9:6) 따라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막 10: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막 10: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여쭈니, (막 10:11)(마 19:9)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이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막 10: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다".
(마 19:10) 제자들이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
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 19:1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 것이다. (마 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鼓子, a eunuch)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이는 받으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위하는 자
(눅 9:49)(막 9:38) '요한'이 예수님께
여쭙기를, "주님(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습니다". (눅 9:5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사람이 없다. (막 9:40) 너희를(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우리를) 위하는 자다" 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요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草幕節ㅡ9,10월경)이
가까우므로 (요 7:3) 그 형제(아우)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형님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시지요. (요 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지요" 하니 (요 7:5) 이는 그 형제(아우)들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이었다.
(요 7: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언함이다. (요
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은 올라가지 아니하겠다". (요 7: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
'갈릴리'로부터의 '예루살렘' 3차
방문
(요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셨다. (요
7: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요 7:12) 예수님께 대하여 군중들 중에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군중을 미혹하게 한다" 하나 (요 7:13)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이가 없었다.
"불을 명하여"
(눅 9:51) 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실
기약이 차 가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2) 사자(使者)들을 앞서 보내시니 그들이 가서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는데 (눅
9:5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자 (눅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말했다. "주님, 저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그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십니까?" (눅 9:55)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어떤 사본에는, "너희가 지금
어떤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나는
사람을 멸망시키려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음-註)(눅 9: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셨다.
70인을 세우셔서
(눅 10:1) 이후에 주님께서 달리
70인(어떤 사본에는 72인)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 10:2) 말씀하셨다. (이 때 하신
말씀들은 앞서 12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미 하신 말씀과 똑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니 12사도들을 보내실
때 하신 말씀을 참고하실 것-註).
70인이 기뻐 돌아와
(눅 10:17) 70인이 기뻐 돌아와 말했다.
"주님, 주님의 이름에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합디다".
(눅 10: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scorpion)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
(눅 10:21)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셔서((마 11:25) 화답(和答)하여) 말씀하셨다. "천지의
주재(主宰)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마
11:26)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마 11:27)(눅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계시(啓示, revelation)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
(눅 10:23) 이에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눅 10: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했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했으나 듣지 못했다". (다른 경우
즉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만 그 비유를 풀어 해석하실
때도 즉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아니 되었다"(마 13:11)와 같은 말씀을 하셨으므로
앞서 소개한 내용을 참작하실 것-註).
선한 '사마리아'인
(눅 10:25) 어떤 율법(律法, 모세의
율법) 학자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눅 10:2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7) 대답하여 말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우리말 번역은 "네 몸"이라
되어 있으나 "네 자신"이 의미가 명확하다)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눅 10: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
(눅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여쭙기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눅 10:3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니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진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가고 (눅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이 지파의 출신이라야 제사장이 되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선택된 계층이다-註)도 그곳에 와서는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다.
(눅 10:33) 어떤 '사마리아'인('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이방인 즉 불신자로 취급되던 계층이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시던 앞의 사건을 참작하실 것-註)이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는 불쌍히 여겨 (눅 10:34)
가까이 가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어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 10:35)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말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 갚겠소이다'
하였으니 (눅 10:36) 네 의견에 이상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7) 그가 대답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끈덕지게 구하는 것을 못이겨서라도"
(눅 11:5) 또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친구,
떡 세 덩이를 빌려 다오. (눅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먹일 것이 없다' 하면 (눅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게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잠자리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 없다' 하겠느냐?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비록 벗됨을 인해서는 일어나
주지 않을지라도 그 끈덕지게 달라는 것을 못이겨서 일어나
그 소용대로 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눅 11:9)(마 7:7) 내가 또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10)(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
(눅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구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마 7:9)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눅 11:12)(마 7:10) 달걀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마 7:11)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화 있을 것이다"
(마 23:23)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가 박하와
회향(운향)과 근채(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눅 11:42) 공의(公義)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린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시 예수님은 구약시대(終結點)와
신약시대(始發點)의 중간에 위치하신 것이다-註)
(눅 11:43) 화 있을 것이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거리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다. (눅 11:44) 너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평토장(平土葬)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한다".
(눅 11:45) 이에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입니다".
(눅 11:46) 이에 대답하셨다. "화 있을 것이다, 또 너희 율법
학자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다. (눅 11:47) 화 있을 것이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다. 그들을 죽인 이도 너희 조상들이다. (눅 11: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고 그들의 일을 옳게 여기고 있다.
(마 23:13)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마 23:14) {없음}(어떤 사본에,
"그들은 과부의 가산(家産)을 삼키며 위선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할 것이다"와 같은 즉 막
12:40, 눅 20:47과 같은 내용이 있음). (마 23:15)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마 23:16) 화 있을 것이다,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聖殿)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 것이라' 한다.
(마 23:17) 어리석고 눈 먼 사람들아,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8) 너희가 또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禮物)로 맹세하면 지킬 것이라' 한다.
(마 23:19) 소경들아,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 23: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 23: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 23: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이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다.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camel)는 삼킨다. (마 23:25)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한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파 사람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마 23:27)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나 안으로는 위선과
불의가 가득하다.
(마 23:29)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말하기를, (마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니 (마 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언함이다.
(마 23: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후예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율법학자(하나님의
모든 계명, 말씀에 정통한 자, scribes)들을 보내면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할 것이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마 23:3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것이
모두 이 세대(世代, a generation).에게 돌아갈 것이다".
(눅 11: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에
말씀하시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것인데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할 것이다' 하셨으니 (눅 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눅 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祭檀)과 성전(聖殿)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대하 24:21,22-註)'의 피까지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할 것이다. (눅
11:52) 화 있을 것이다, 너희 율법 학자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이도
막았다.
(모두 같은 내용의 말씀들이나
기록한 사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는데 이것을 한데
모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따로 음미해도 좋을 것
같아서다-註).
"행위는 본받지 말라 "
(막 12:38)(마 23:1)(눅 20:45) 모든 백성이
듣는 가운데 군중들과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눅 20: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거리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 12:39)(마 23:6) 회당의 상좌(上座)와 잔치의
상석(上席)을 원하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막 12:40)(마
23:7)(눅 20:47) 그들은 과부의 가산(家産)을 삼키며 위선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할 것이다.
(마 23: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
(마 23:5) 그들의 모든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고자 해서 하는 것이니 곧 그 차는 경문(經文, phylactery.
성경의 문구를 기록한 양피지를 넣은 작은 가죽 상자를 '성구함(聖句函)'이라
하는데 이것을 '유대'사람이 율법을 잊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는 이마에, 다른 하나는 왼팔에 잡아매었음-註)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 사람에게 '랍비(선생님)'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한다.
..............................................................................................................................
(21註-유대인들이 율법을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단단히 새겨 두어
철저하게 삶의 규범으로 삼으라는 모세의 지시를 따른 것으로(신
6:4-15) 나중에는 이것이 형식으로 흘러 자기의 경건(우리로
치면 믿음이 좋은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과시하려는 경향을
띠게 됨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책망하신 것이다.
신명기의 관련 내용은 이러하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걸을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이마)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烈祖)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 나무를 얻게 하시어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이집트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다.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들의 신(神)들을 따르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시어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한다(신 6:4-14).
사람은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으로써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시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마 4:4). 자연계의 육체의 생명은
자연법칙을 지킴으로 사는 것과 같다. 예컨대 먹어야 사는
것이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중 하나다. 자연계에 속한 한시적(限時的)
생명은 자연법칙으로써 영위(營爲)되지만 죽음(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이 없어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은 영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아담)의 육체(자연계에 속한)를 지으신
다음 영계에 속한 영혼을 조성하시고 이에 부합되게 영계인
에덴 낙원을 창설하신 것이다.
그러면 자연계가 아닌 영계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그 영생을 지속시킬 수 있는 법칙이
필요한 것이다. 자연계의 생명은 단순히 자연법칙을 지키면
되지만(예를 들어 독이 있는 버섯은 먹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무슨 식물이든 먹을 만한 것을 먹어야 식용이 되고 약용이
된다는) 영생에서는 영원히 사는 법칙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자연계에 속한 생명의 운영 체제를
보면 사람과 닮은 동물을 예로 삼을 때 머리와 몸의 체제임을
알 수 있다. 몸(의 각 지체)은 머리가 있음으로써 그 지시를
따라 행동하게 되고 머리는 몸이 있음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 상호 의존적이라 결코 독자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런 이치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이 머리와 몸이 있는 육체로(자연계에 속한) 창조되었기에
그 영원한 생명의 방법 역시 이를 따름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모든 영적 피조물 즉 영생하게 되어 있는 인간 및 영물(천사)의
각 개체는 그 몸을 이룬 지체가 되어 있는 체제다. 이런 한
몸으로서의 삶의 구조는 모두가 행복되게 그리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차등 없이
똑같은 수준에서 모두가 행복해지고 평등해진다는 것은,
이런 체제에서는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이것이
"자기 부인") 몸은 머리 위해 머리는 몸을 위해 그리고
각 지체는 머리를 위하면서 동시에 자기 이웃을 위하기 때문이다.
즉 서로가 섬기고 섬김을 받는
즉 상대를 위하고 상대에게서 위함을 받는 구조이므로
아무리 그 조직에서 말단 중의 말단이라도 머리 자신이
그에게 사랑으로 종 노릇하므로(위하며 섬기므로) 진정한 평등이
여기에 있음이다. 머리부터가 그러하니 다른 지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몸의 꼬리 혹은 발가락의 발톱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머리를 자기 아래 두고 있으므로 이 한
몸 체제에서는 자기가 최고로 섬겨지고 있음이다. 그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다.
머리와 꼬리라는 구별은 단지 '구실(역할)의
차이' 또는 분담(分擔)일 뿐이다. '우열(優劣)의 차이'가
아닌 것이다. 인간들(우리 각자)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다 바쳐 죽어 주신(이는 완전히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신
것을 의미-갈 2:20) 사실이 그 확증이다(롬 5:8/요일 3:16). 그러니
완전하고도 진정한 '평등'이라는 것이고, 또 진정한 '자유'라
함은 이런 조직체를 이룸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이므로
모두가 이 방법을 좋아하고 사랑하여 적극적으로 기쁘게
자진자발적으로 자기 부인에 나서기 때문이다.
개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실증(實證)해 주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다. 고로 이 이상 가는 사랑이 없고(요 15:13),
하나님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 누구도 없는 것이니,
그 무엇이든 누구든 하나님 이상으로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마 10:37). 그러므로 성인(成人)이 되어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 아내/남편을 기쁘게 해 주려는
것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경고는 지당한 것이다(고전 7: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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