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2일 목요일

통합 복음 (8) ㅡ 주님의 수난(受難)/나의 역사적 죽음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마 26:36)(요 18:1)(눅 22:39)(막 14:32)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가셔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랐는데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거기 동산이 있어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셨다. (요 18:2) 거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님을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눅 22:40)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시고 (마 26:37)(막 14:33)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 때 심히 놀라시며 고민하고 슬퍼하셔서 (마 26:38)(막 14:34) 이에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눅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으시고 ((마 26:39) 조금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막 14:35)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눅 22:42)(막 14:36) 말씀하시기를, "(아바, 아버지)내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할만 하시거든)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니 이 잔을 제게서 옮겨 주십시오(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저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아버지의 원대로 해주십시오)" 하시니 (눅 22:43) 사자(使者,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도왔다. (눅 22:44)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다.

(눅 22:45)(막 14:37)(마 26:40)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눅 22:46)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막 14:38) 마음에는 원이나 육신이 약하다" 하셨다.

(마 26:42)(막 14:39) 다시 두번째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여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 만일 제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제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시고 (마 26:43)(막 14:40) 다시 오셔서 보시니 그들이 자는데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었다. 그들이 예수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했다.

(마 26:44)(막 14:41)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세 번째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됐다. 때가 왔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려가고 있다. (막 14:42)(마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이가 가까이 왔다".

파송된 큰 군중들이

(마 26:47)(눅 22:47)(막 14:43) 말씀하실 때에 한 군중이 오는데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이가 ((요 18:3)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무리들과 군대를 데리고 등(燈)과 횃불과 무기(武器)를 들고) 그리로 오는데 파견된 군중들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요 18:4) 예수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요 18:5)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라" 하므로 말씀하셨다. "내가 그다" 하셨다.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요 18: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다"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면서 땅에 엎드러지므로, (요 18: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라" 하므로 (요 18: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에게 '내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요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마 26:48)(막 14:44) 예수님을 파는 이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말하기를, "내가 입 맞추는 이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으므로 (막 14:45)(눅 22:48)(마 26:49) 이에 그들 앞서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며 "'랍비'(선생님), 안녕하시옵니까? "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다'야, 네가 입 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마 26:50)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막 14:46) 이에 그들이 와서 곧 예수님께 손을 대어 잡으므로 (눅 22:49) 좌우가 그 된 일을 보고 여쭙기를, "주님, 우리가 검으로 칠까요?" 하고 (눅 22:50)(막 14:47)(마 26:51) 예수님과 함께 곁에 섰는 이들 중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치니 그 오른편 귀가 떨어졌다.((요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눅 22:51)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 (요 18:11)(마 26:52) 예수님께서 '베드로'더러 말씀하셨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검을 가지는 이는 모두 검으로 망한다.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營ㅡlegion)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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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註-숫자까지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영(營)"으로 나타내셨으니 영역(英譯)으로 "legion"이 되는데 이는 고대 로마식 군단(軍團)의 표준대로 하면 300-700 명의 기병을 포함 3,000-6,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어 간단히 말해 충분한 전투 태세를 완벽하게 갖춘 일단의 병력을 "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보겠다. 육체인 인간이라 전체를 합쳐도 천사 하나를 당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악령의 군단을 대상으로 하여 말씀하신 것일까. 또 조물주 하나님께서 어찌 피조물처럼 그런 숫자에 구애되시겠는가. 단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으로서 사람의 예를 따라 말씀하신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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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55)(눅 22:52)(막 14:48)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수비대)의 장교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나 너희가 나를 잡지 않았다(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마 26:56)(눅 22:53)(막 14:49).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성경을) 이루려 함이다" 하셨다.

(요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니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막 14: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따라오다가 군중들에게 잡히니 (막 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요 18:13)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丈人)으로서 (요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이였다. (원래 '유대'인의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으나 로마 속국(屬國)이 되면서 강제로 '안나스'를 퇴임시키고 그 사위 '가야바'를 세운 까닭에 '유대'인은 '안나스'와 '가야바'를 둘 다 대제사장으로 대우했다-註).

(요 18:19)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 제자들과 그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요 18: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다.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나의 하던 말을 안다".

(요 18:22) 이 말씀을 하시니 곁에 섰는 하인배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치며 말했다. "네 감히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기냐?". (요 18:2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말을 잘못했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잘했으면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요 18:24) '안나스'가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다.

날이 새니

(눅 22:66) 날이 새는데 (막 14:53)(마 26:57)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예수님을 그 공회(公會)로 끌어들여) (마 26:59)(막 14:55)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를 칠 증언을 찾되 얻지 못하니(거짓 증언을 찾으나 얻지 못하니) (막 14:56) 이는 예수님을 쳐서 거짓 증언하는 이가 많으나 ((마 26: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그 증언이 서로 합하지 못함이었다.

(막 14: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후에 두 사람이 와서) 예수님을 헐뜯는 거짓 증언으로 말하기를, (마 26:61)(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을 것이라'('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였다" 하되 (막 14:59) 오히려 그 증언도 서로 합하지 않았다.

(마 26:62)(막 14: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님께 묻기를,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언이 어떠하냐?" 하되 (마 26:63)(막 14:61)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니 대제사장이 다시 말하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우리에게 말하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냐?".

(눅 22:67) 이에 대답하셨다.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않을 것이요 (눅 22: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눅 22:6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 후로는(이 후에) 인자가 (능력의 우편에) 하나님(능력자)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다)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눅 22:70)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찬송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냐? " (마 26:64)(막 14:62) 이에 대답하셨다.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다(네가 말하였다)(내가 그다)". "(마 26:65)(막 14:63)(눅 22:71)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그가 불경스러운 말을 했으니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막 14:64) 보라! 너희가 지금 이 불경스러운 말을 직접 그 입에서 들었다. (마 26:66) 너희 생각이 어떠냐?". 그들이 다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단죄하고 대답하기를, "그는 사형에 해당된다" 하였다.

조롱하고 때리며

(마 26:67)(눅 22:63)(막 14:65) 그를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눈을(얼굴을) 가리우고 그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눅 22:64)(마 26:68) 조롱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메시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하인배들은 손바닥으로 쳤다) (눅 22: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였다.

닭이 곧 울다

(아래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고 한 이 제자가 요한이므로 요한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대제사장 앞으로 끌려가서 당하신 자초지종을 계속하여 지켜 본 증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증언을 기초로 이 때에 일어난 일을 편집했다-註).

(눅 22:54) 예수님을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때 (요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마 26:58)(막 14:54) 그 결국을 보려고 멀찍이 예수님을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요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으므로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요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므로 그가 말하기를, "아니다" 하였다.

(요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인들이 뜰 가운데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었다. (눅 22:55) (서서 쬐다가 모두) 함께 앉으므로 '베드로'도 그 가운데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쬤다. (마 26:69)(막 14:66) '베드로'가 바깥 뜰(아래 뜰)에 앉았더니 (눅 22:56)(막 14:67) 대제사장의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아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너도 '갈릴리' 사람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하니 (눅 22:57)(마 26: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말하기를 "여자여,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겠다" 하며 (막 14:68) 앞뜰로 나갔다.(이상이 첫번째 부인으로서 요한과 마태(및 마가, 누가)의 기록에 약간 차이가 난다-註).

(마 26: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눅 22:58)(마 26:73)(막 14:69) 조금 후에 곁에 섰던 다른 여종이(사람들이) 그를 보고 거기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하며 (더러는 '베드로'더러) "너도 참으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니 (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요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기를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아, 나는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눅 22:59) 한 시간쯤 있다가 ((마 26:73)(막 14:70)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말했다((요 18:26) 이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가 귀를 베어 버린 사람의 일가(一家)였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않았느냐?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다". (눅 22:60)(마 26:74)(막 14:71)(요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고 방금 말할 때에 (막 14:72) 닭이 곧 두번째 울었다.

(눅 22:61)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오늘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하심이 생각나서 (눅 22:62)(마 26:75)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

'유다'의 자살

(마 27:3) 때에 예수님을 판 '유다'가 예수님의 단죄(斷罪)되심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 27:4)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감당하라" 하므로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聖所)에 던져 넣고 물러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평소 능력을 나타내시던 예수님이시므로 잡혀 가도 어떤 기적을 통해서든 해를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유다는 생각했던 것 같다-註).

(마 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말하기를,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고(聖殿倉庫)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마 27:7) 의논한 후 그것으로 토기(土器)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마 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는다.

(마 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으니 기록되기를, "그들이 그 정가(定價-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이 은 30은 노예를 속량하는 속전-출 21:32)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定價)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마 27: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님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다"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중 궐(缺)이 난 12 사도 중 한 사람을 채우기 위해 제비 뽑을 때 '베드로'가 아래와 같이 말했으므로 참고 삼아 여기 수록한다-註). (행 1:16)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을 잡는 자들에게 길 인도를 해 준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이는 마땅하다. (행 1:20) 즉 시편에 기록하기를,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이가 없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행 1: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數)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었다. (행 1:18) 이 사람이 불의(不義)의 삯(代價)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왔으므로 (행 1: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이 곳 말로 그 밭을 일컬어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다".

'빌라도'에게 끌고 가다

(막 15:1) 즉시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과 율법학자들 곧 온 공회(公會)가 더불어 (마 27:1)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Pilatus)에게 넘겨 주어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눅 23:1) 군중들이 다 일어나 (요 18:28)(마 27:2) 예수님을 결박하여 '가야바'에게서 '빌라도'의 재판정(裁判廷)으로 끌고 가니 (아직) 새벽이었다.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고자 하여 법정에는 들어가지 않았다('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및 이방인에게 속한 곳을 부정(不淨)하다 하였으므로-註). (요 18: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그들에게 나가 말하기를,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했다.

(눅 23:2)(요 18:30) 그들이 고소하면서 대답하기를, "이 사람이 악행(惡行)하는 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각하께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케자르'(Caesar)에게 세(稅)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王) 곧 그리스도(메시아)라 합니다" 하니 (요 18:31) '빌라도'가 말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습니다". (요 18:32) 이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다(십자가 처형은 로마 식이었고 '유대'인들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는데, 성경이 주님의 죽으심을 가리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갈 3:13/신 21:23) 하였기 때문. 죽을 죄를 지으면 그 죽은 시체를 나무에 단다고 했으니(신 21:22),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 모두가 "죽을 죄를 지어 죽는" 모습을 취하시는 것이므로, 그 대목이 주님께 대한 예언이라 하는 것-註).

(마 27: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습니다" 하였다.

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3)(막 15:2) 이에 '빌라도'가 다시 법정에 들어가 예수님을 불렀다. (눅 23:3)(마 27:11)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4)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이는 네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해 네게 한 말이냐?".

(요 18:35) '빌라도'가 대답하기를,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부하)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했을 것이다. 현재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 18:37) '빌라도'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해 났으며 이를 위해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다. 무릇 진리에 속한 이는 내 소리를 듣는다". (요 18:38) '빌라도'가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막 15:3)(마 27:12) 이 때 예수님께 대하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 소리가 들리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므로 (막 15:4)(마 27:13) '빌라도'가 또 물었다.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공격하여 고소하는가 보라. 네게 대해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나 (막 15:5)(마 27:14) 예수님께서 다시는 아무 말씀도(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심히 기이하게 여겼다.

(눅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 하니 (눅 23:5) 군중들이 더욱 힘 주어 말하기를,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합니다" 하였다. (눅 23:6) '빌라도'가 듣고 묻기를,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며 (눅 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마침 그 때 '헤롯'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심히 기뻐해

(눅 23:8)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기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였다. (눅 23:9) 이에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눅 23:10)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였다. (눅 23:11) '헤롯'이 예수님을 업신여겨 그 군병들과 함께 조롱하며 빛이 나는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눅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가 되어 있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눅 23:13) 총독이 다시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나가서 말하기를 (눅 23:14) "너희가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이 사람을 내게 끌어 왔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査實)하였으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나는 아무 죄도 그에게서 찾지 못했다. (눅 23: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그를 도로 돌려보냈다. 보라! 그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아니다. (눅 23: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다". (눅 23:17){없음}(어떤 사본에,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주었다"라고 되어 있음).

'바라바'

(마 27:15)(막 15:6) 명절을 당하면 백성이 구하는 대로(군중들의 소원대로) 총독이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는데 (막 15:8) 군중들이 나아가 전례대로 해주기를 구하므로 그 때에 (막 15:7)(눅 23:19)(마 27:16) 성중에서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인하여 포박되어 옥에 갇힌 자 중 하나가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였다.

(요 18:39)(마 27:17)(막 15:9)(마 27:21) (그러므로 총독이 말하기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메시아)라 하는 예수냐?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마 27:18)(막 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猜忌)로 예수님을 넘겨준 줄 앎이었다.

(마 27:20)(막 15:11)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군중들을 권하여(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고 예수님을 멸하자 하도록 시켰으므로 (요 18:40)(눅 23:18) 군중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말했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놓아주십시오!".

(마 27:22)(막 15: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러면 그리스도(메시아)라 하는(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막 15:13) 그들이 모두 다시 소리 지르기를,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마 27:23) (눅 23:20) '빌라도'가 말하기를, "어찌 된 것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지르기를,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하였다.

(막 15:14) '빌라도'는 예수님을 방면하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나 (눅 23:21) 그들은 소리 질러 말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주십시오! 십자가에 못박게 하십시오!".

(요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였다. (요 19:2) 군대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자주(紫朱) 색(이는 부귀를 상징하는 색이나 이 경우 조롱하는 의미-註) 옷을 입히고 (요 19:3)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강을 누리시라" 하며 손바닥으로 때렸다.

(요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기를,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는 것은,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다" 하였다. (요 19:5) 이에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줏빛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 사람이다" 하니 (요 19:6) 대제사장들과 하인배들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 질러 말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십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다". (요 19:7)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입니다".

(요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요 19:9) 다시 법정에 들어가 예수님께 말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온 것이오?" 하나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므로 (요 19:10) '빌라도'가 말했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오? 내가 당신을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오?". (요 19:1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을 것이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요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쓰면서 (눅 23:22) 세 번째 (나아와) 말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했으니 때려서 놓겠다". (눅 23:23) 그러나 '유대'인들이 큰 소리를 질러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므로 그들의 소리가 이겼으니, 말하기를 "이 사람을 놓으면 '케자르(Caesar)'의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이는 '케자르'에 대한 반역입니다" 했기 때문이다.

(요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끌고 나와 "박석"(Pavementㅡ포장한 바닥, 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裁判) 자리에 앉았다. (요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아침 6시였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보라! 너희 왕이다!". (요 19:15) 무리가 소리 질렀다. "없애 버리십시오! 없애 버리십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십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했다. "'케자르'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마 27:24) 이에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감당하라". (마 27:25) 백성이 다 대답했다. "그 피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지기를 원합니다".

(막 15:15)(요 19:16)(눅 23:24) 군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언도(言渡)를 내리고 (눅 23:25)(마 27:26) 그들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그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했다.

(마 27:27)(막 15:16) 이에 총독의 군대가 예수님을 끌고 재판정 안으로 들어가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 모든 부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 27:28) 그의 옷을 벗기고 붉은 옷)((막 15:17) 자색 옷)을 입히며 (마 27:29)(막 15:18)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절하며 조롱하여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시라" 하며 (막 15:19) (마 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다. (마 27:31)(막 15:20) 조롱을 다한 후 붉은 옷(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십자가를 지워

(눅 23:26)(마 27:32) 예수님을 끌고 갈 때에 (요 19:17)(막 15:22)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마 27:33)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으로 나가셨다.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Cyrene-오늘날 아프리까 리비아 수도인 트리폴리, 신약시대에 거기 '유대'인들이 많아 가 살았음)'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 것을 잡아 그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워 예수님을 따르게 하였다.

(눅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므로 (눅 23:28) 예수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할 것이다.

(눅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할 것이다. (눅 23:31) 푸른 나무에도 이 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눅 23:32) 또 다른 두 악행한 죄수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님과 함께 끌려 갔다.

십자가에 못 박고

(눅 23:33) '골고다'(해골)라 하는 곳에 이르러 (마 27:34)(막 15:23) 쓸개 탄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했으나 받지 아니하셨다(예수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셨다)(이것은 일종의 진통제로서 십자가 형의 죄수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자비였다-註).

(요 19:18)(마 27:38)(막 15:27) 그들이 거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다른 두 사람(강도 둘)(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고 예수님은 가운데였다. (막 15:25) 때가 제 3시였다('유대'인의 시간은 우리와 6시간 차이다. 고로 오전 9시를 말한다. 그러나 '요한'만은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 계산법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날과 같다-註). (막 15:28){없음}(어떤 사본에, "'불법자와 함께 인정함을 받았다' 한 성경이 응하였다"(사 53:12-註).

(마 27:37)(눅 23:38)(막 15:26)(요 19:19) '빌라도'가 죄 패를 써서 그 머리 위 십자가 위에 붙일 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유대'인의 왕)이라 기록하니 (요 19:20) 예수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었다.(요 19: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달라 하니 (요 19:22) '빌라도'가 대답하기를 "나의 쓸 것을 썼다" 하였다.

"이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눅 23:34)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입니다".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막 15:29)(마 27:39)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여 말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마 27:40)(막 15:3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눅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마 27:41)(막 15:31) 그와 같이 (관원(官員)들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도 함께 조롱하여 비웃어 서로 말하기를, "그가 남을 구원했으니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메시아)이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 (마 27:42)(막 15:32) 그가 남은 구원했어도 자신은 구원할 수 없구나. 그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메시아)이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마 27: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면 이 때 구원하실 것이다. 자기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다" 하고, (눅 23:36) 군인들도 조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눅 23:37) 말하기를,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거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였다. (마 27:44)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예수님을 욕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그러나 '누가'는 '마태' 및 '마가'와는 달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註).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메시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나, (눅 23:40) 다른 하나가 그 사람을 꾸짖어 말했다. "네가 동일한 단죄(斷罪, 定罪)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않느냐? (눅 23:41) 우리는 우리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인즉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분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눅 23:42) 그리고 말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저를 생각해 주십시오". (눅 23:43)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옷을 취하여

(요 19:23)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거두어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꿰맨 솔기 없이-註)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므로 (요 19:24)(막 15:24) 그 옷을 나눌 때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군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습니다"(시22:18-註)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다. (마 27:35)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 27:36) 거기 앉아 지켰다.

"네 모친이시다"

(요 19:25)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그 모친의 여형제(his mother's sister,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여자"라고 부르시는데 우리말 "이모"라는 번역은 온당치 않다. 아무리 "모친"이라고 일관되게 마리아를 지칭하고 있는 성경이지만 부득이 한 표현일 뿐이라 그 경우에만 사용할 것이지 확대시켜 나가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註)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요 19:26) 예수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라! 아들이다" 하시고 (요 19:27) 또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이시다" 하시니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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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註-앞에서도 이미 지적했지만 존대어 경칭어가 유난히 발달한 우리 어법에 비추면, 마리아더러 "여자"라고 하셨으니 "모친"의 개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의미로 이해해야 하므로, 굳이 존칭어를 쓰실 이유가 없다고 여겨 보통 여자들을 대하신 것처럼 표현했다. 의도적으로 마리아를 "여자"라 부르신 까닭은 어머니라 호칭하면 대칭적인 의미로 아버지를 연상하게 되는 까닭이니 그리스도께는 어느 경우로든 "모친"은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서는, 역시 재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지금과 같이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하여 신성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성이 워낙 부패하여 모세까지도 그 시신을 위하고 섬길까 해서 감추신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사단은 모세의 시신을 그와 같이 악용하려 한 것이다(유 1:9).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날 마리아를 위하고 있으니 인간의 이지(理智)를 농락하고 있는 악령 사단의 능력(아니 그보다도 자연계에 속해버린 인간 육체의 비극적인 제한성 즉 원래의 이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새삼스럽게 놀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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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45)(막 15:33)(눅 23:44) 때가 제6시쯤 되어(정오를 가리킴-註)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오후 3시)까지 계속하더니 (마 27:46)(막 15:34) 제9시 즈음에 예수님께서 크게 외치셨다(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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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註-그 때 당시의 많은 사람들처럼 멀찍이 서서 보지 말고 '마리아'와 요한과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이들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십자가 상의 주님을 올려다 보던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서 주님을 뵙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다. 나를 위해 나의 죽음을 죽으시는 나와 함께 죽으시는 모습이 아니신가. 새벽 이른 시간부터 죄인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수모를 견디시고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장 6시간을 주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이 나를 위해 이루 형용할 길 없는 고통을 당해 주신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죽으심인데 어찌 멀찌감치 서서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리요!

마가와 '요한'의 "시간"

앞에 잠시 언급한 대로, '요한'(요 19:14)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마지막 재판을 받은 때를 "제 6시"라 소개하고 '마가'(막 14:25)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제 3시"라 기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마가'의 기록과 '요한'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는 것 같으나 이는 간단히 답할 수 있다. '마가'와 '요한'이 서로 다른 시간 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두 가지 시간 계산법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 사용하는 시간 계산법(우리나라 시간과 6시간 정도 차이), 다른 하나는 로마식이다(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하는 오늘날과 같음). 당시 로마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이런 두 가지 시간 계산법이 혼용되었으나 당시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어 혼동은 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음양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에 견줄 수 있을까.

'요한'은 로마 시간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시간에 의하면 주님은 오전 6시에 빌라도에게 최종 판결을 받으셨고(요 19:14-16) 그 후 골고다까지 끌려 가시어 거기서 지체되는 데에 약 3시간이 소요되었고(눅 23:26-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로마 시간으로 오전 9시였다(우리의 시간과 같음). 로마 시간 오전 9시는 '유대' 시간으로 "제 3시"였다. 마태, 마가, 누가 모두 제6시에서 9시까지 해가 빛을 잃었다고 기록했으나 '요한'은 그런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로마 황제 "디베리우스 치세시의 하늘에 괴변(怪變)"

로마 황제 "디베리우스(Tiberius) 치세시에 3시간이나 해가 빛을 잃은" 사실이 기록에 남아 전해온다고 '로마 흥망사'에서 '기본'(Gibbon)이 밝히고 있다. 당시 로마의 시인(詩人)들과 역사가들이 이 놀라운 초자연적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고 '기본'은 전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이 때의 3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밤낮 사흘"

일반적으로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의 날짜 세는 관습에 따라 금, 토, 일 3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나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하신 말씀대로라면 이는 착오이다. 즉 "밤과 낮"으로 분명히 명시하신 그런 의미로서의 "사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라 여기는 것도 "안식일 전 날"이라는 말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주 토요일 안식일만 아니라 또 다른 안식일이 있다는 것이니 즉 유월절로써 시작되는 1주간 즉 7일(이것을 "무교절"이라 한다) 중 그 첫날 역시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앞에서도 언급했다.

다시 말해 주간 첫날 즉 일요일이 아닌, 유월절을 포함한 무교절로서의 1주간 그 첫날은 그것이 그 주의 무슨 요일(曜日)이 되든 무조건 안식일이다(출 12:16/레 23:7/민 28:16-18). 그래서 편의상 이를 "유월절 안식일"이라 한다. 고로 "안식일 전날"이라 한 것은 이 '유월절 안식일' 전날이고 '일반 안식일'(토요일) 전날(금요일)이 아닌 점에 유의할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의 안식일이 '일반 안식일'(토요일)인지, 아니면 '유월절 안식일'(그 해의 유태력 7월 15일 목요일)이었는지를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으니, 곧 요한이 지적한 대로(요 19:14)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었던 것이다. 고로 '유월절 안식일'의 전날로서 그 해에는 '유월절 안식일'이 목요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바로 수요일이 된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일상적인 시간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이 아니라 밤이 되기 전에 식사를 하신 것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월절 양을 잡던 그 시간 즉 14일 "해질 때에"(출 12:6)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동안 바쳐졌던 모든 유월절 양들은 모두 상징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진짜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시간에 "바쳐지셨던" 것이다.

'유대'인의 유월절 양에 관한 모든 것은 주님께 관한 예표(豫表)였다. 곧 흠 없으신 어린 양이셨고(출 12:5), '유대'력(曆)으로 7월 10일에 "취택"(출 12:3)되셨다. 왜냐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6일 전(요 12:1) 즉 목요일의 6일 전인 금요일 '여리고'에서 '베다니'로 왔으므로 토요일 다시 말해 그 달 10일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고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베다니'로 온 다음날(요 12:12,13) 즉 토요일이다. '유대'력으로는 7월 10일이 된다.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주님을 은 30을 받고 팔게 된 날도 같은 날이다(마 26:15,16/막 14:3-11). 주님께서 붙들리신 것은 나환자 '시몬'의 집에서의 만찬 후였으니 만찬은 금요일 오후 즉 해 질 무렵, 혹은 해 진 후 토요일('유대'력) 이른 때였으므로 그 만찬 후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을 찾아가 모의를 한 날은 '유대'력 7월 10일이다.

"은(銀) 30"의 의미

이 "은 30"은 그 날 죽일 희생 양 즉 예수님께 대한 가격을 정한 것이 되어 이 가격으로 율법을 따라 양(羊)을 사게 되는 그런 의미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희생 양"을 죽이는 대제사장에게 그렇게 넘겨지신 것이 바로 그 때로서 '유대'력 10일에 이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부지중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그들은 그 "희생 양"을 구약에서 예언한 정확히 그대로 값 매김을 한 것이다(마 26:15/슥 11:12).

그리고 돌아가셨을 때 예언 그대로 뼈는 하나도 부러뜨려지지 않고 보존되었다(요 19:36/출 12:46/민 9:12/시 34:20). 또 '유대'력 7월 14일 늦은 시간 즉 해질녘 곧 15일의 시작 직전에 돌아가셨다(출 12:6). 주님께서 '유월절 안식일' 직전에 돌아가심으로써 성경의 예언은 세세한 부분에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금요일이라면 이상과 같은 성경 예언은 여러 모로 어긋나게 된다. "사흘 낮과 밤을 땅 속에서 지내신 그리스도"라는 그의 글에서 토레이(R.A.Torrey) 박사가 내린 결론이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주후 30년 곧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그 해 유월절은 달(月)이 만월인 4윌 6일 목요일이었다. 그 날이 금요일이라고 믿어 왔던 연대학자들은 주후 30년의 유월절이 목요일이었다는 사실에 당황하여 십자가 고난이 주후 33년에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아도 그 해 역시 만월은 목요일이었던 것이다.

"유월절 예비일"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대로 주님께서 '유월절'이 아닌 '유월절 예비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사흘 낮과 밤을 무덤에 계셨을 당시 '유월절 예비일'이 수요일이었고 유월절 안식일은 목요일이었으며 주님의 부활은 금요일 다음의 토요일 안식 후 그 주 첫날인 일요일이 된다.

주님께서는 수요일 해질녘에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72시간 즉 사흘 낮과 밤이 종료되는 그 주 첫 날의 시작(토요일 해질녘) 이후에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여자들이 새벽 일찍 무덤에 가니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돌을 굴러내어 그 위에 앉았다 했는데(마 28:1-7), 천사가 돌을 굴린 것은 여자들을 위해서이고 나중에 제자들도 와서 확인하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 무덤 자체는 이미 비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그 전에 벌써 부활하셔서 무덤 밖에 계신 것이다.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즉 초자연계 육체이므로 나중에 제자들이 문을 잠갔어도 들어오신 것처럼 돌 문이야 그대로 막혀 있든 말았든 즉 굴러 치워져 있든 않든 아무 상관 없이 무덤에서 나가 계신 것이다.

여인들의 날 수 계산

주님의 부활이 안식 후 첫날이라 했는데 그 새벽 일찍 여인들이 무덤으로 달려간 것이다. 유월절 안식 후 그 다음날 가지 않고 제7일 안식일 다음날까지 기다린 것은 주님께서 "내가 밤과 낮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살아나실 줄 믿고 갔다면 그 시신에 사용하기로 한 약품은 무엇인가. 다시 살아나시는데 그 약품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나 당시의 그들은 확신이 아니라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주님의 무덤을 찾을 때의 심정은 예의 차원에서라도 그런 것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생전의 말씀 중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여태껏 없었으니 어찌 되었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으로 그러나 동시에 그 반대가 될 경우도 함께 생각해서 그런 물품을 준비하여 무덤으로 간 것이다.

하여간 여자들은 정확히 그 "사흘 밤 사흘 낮"이란 날 수를 세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무덤이 빈 것을 보고 누가 시신을 훔쳐가지 않았나 의심했는데 이것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신에 쓸 약품을 준비해온 것과 같은 심리상태다. 날 수는 세고 있었어도 확신은 서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나 '나인'성(城) 과부의 아들의 예는 다른 사람 죽은 것을 살리신 경우이고 주님 죽으신 것은 능히 그들에게 잡히시지 않아도 되지만 자진해서 잡히심으로써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므로 그렇게 친히 살아나실까 하는 의구심이 들만도 했다. 여인들이 날 수를 세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수요일이 정확하다는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이기도 하다. 여인들이 가면서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굴려줄꼬" 한 것은 금요일에는 가지 않았고 지금 가는 길이 초행이었음이 분명해진다.

* 위의 글 즉 "밤낮 사흘", "은(銀) 30의 의미", "유월절 예비일", "여인들의 날 수 계산" 항목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내용은 필자의 글이 아니고 토레이 박사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고 한 어느 인터넷 기사(記事)에서 그대로 옮긴 것임을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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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마르다"

(요 19:28) 이 후에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목마르다"(시편 22:15-註).

"다 이루었다"

(마 27:47)(막 15:35) 거기 섰던 사람 중 어떤 이들이 듣고 말하기를, "보라!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 27:48)(막 15:36)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으므로 해융(스폰지)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우슬초(牛膝草, hyssop)(부정(不淨)을 없애는데 그 가지를 썼던 것으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갔던 듯하며 100~120 cm의 갈대와 같은 줄기로 되어 있음-율법을 따라 희생 제물의 피와 함께 물을 뿌릴 때 사용되어졌음, 히 9:19 참조. 이 우슬초 사용에 대한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있다-註)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고 (마 27:49) 그 남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내려 주나) 보자" 하였다.

(요 19:30)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눅 23:46) 그리고 큰 소리로 불러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머리를 숙이시고 운명하셨다(영혼이 돌아가셨다).((마 27:50)(막 15:37) 예수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큰 소리를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셨다)(누가만이 이 "벽력 같은 큰 소리"로 외치신 말씀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註).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겨져

(마 27:51)(눅 23:4)(막 15:38) 이에 성소(聖所) 휘장(curtain)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한가운데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2) 무덤들이 열리면서 자던 성도(聖徒, saints)의 몸이 많이 일어나 무덤에서 나와 (마 27:53) 예수님 부활 후 거룩한 도시(the holy city-사람이 밀집해 사는 곳)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였다. ("예수님 부활 후"-"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까 이제는 마지막 아담과 하나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게 되어 있는 일반적 사실을 들어 강조하느라 이렇게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부활하신 당일 그렇게 된 것을 가리킴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전자 쪽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듯. 왜냐면 휘장이 찢어져 우리가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설명과 동시에 "나타내 보였다" 했으니, 당시는 아직 주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이었고 부활하신 시점을 가리키기에는 이른 때였으므로-註).

백부장(centurion)이 그 된 일을 보고

(마 27:54)(막 15:39) 예수님을 향해 섰던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며 심히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였다.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義人)이었다").

예수님을 섬기며 '갈릴리'로부터 따라 온 많은 여자

(눅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군중들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마 27:55)(막 15:41) 예수님을 섬기며 '갈릴리'로부터 따라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 27:56)(막 15:40)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작은 '야고보')와 '요셉'('요세')의 모친 '마리아',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모친도 있었다. (또 '살로메'가 있었다).(눅 23:49) 이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이들이요 또 이 외에도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과 예수님의 아는 이들이 많이 있어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았다.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요 19:31) 이 날은 예비일로서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신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 19:32)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요 19:33) 예수님께 이르러는 이미 운명한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고 (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왔다.

(요 19:35) 이를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니 그 증언이 진실되다.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진실인 줄 알아 여러분으로 믿게 하려 함이다. (요 19: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여지지 아니할 것이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다. (요 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이를 볼 것이다" 하였다(슥 12:10-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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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註-'요한'이 여기서 "피와 물이 나왔다" 하고 이를 목격한 것을 중대한 증거로서 "증언한다" 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셨을 때의 그 몸이 초자연계 즉 신령한 육체이셨기 때문에 그렇게 부활하심을 보고 당시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수님께서 단지 일시적으로 인간의 육체로 화신(化身)하셨을 뿐 참으로 사람의 육체는 아니시지 않았나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은 아니시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가 쓴 편지에서도 이를 확인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이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이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시다. 증언하는 바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로서,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다"(요일 5:5-8)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심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가리켜, 전자는 "물과 피"로써 후자는 "성령"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영은 하나님으로서 성령이시고 그 육체는 인간의 육체로서 물과 피로 구성되었음을 자기 눈으로 목격하고 확인하였다는 바로 그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온전히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히 사람이시라는 사실은 우리가 새로 창조되는 일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니, 온전한 사람이 아니시면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될 수 없고(따라서 구원이 불가능해지고) 온전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나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그와 같이 새 피조물로 만드실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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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무덤이 있어

(막 15:42)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일반 안식일'이 아니라 '유월절 안식일'의 예비일이니 혼동하지 말 것-註)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요 19:38)(눅 23:50) '유대'인의 동네인 '아리마대' 사람 부자(富者) '요셉'이 존귀한 공회의원으로서{그들의 결의와 행사를 옳다 하지 않았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눅 23:51) 예수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드러내지 않다가 이 일 후에 (눅 23:52)(마 27:58)(막 15:43) 당돌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 하였다.

(막 15:44)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운명하였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막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 주므로 이에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요 19:39) 일찍 예수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으므로 (막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이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눅 23:53)(마 27:59)(요 19:40) 내려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香品)과 함께 정갈한 세마포(細麻布)로 쌌다.

(요 19:4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이 있어 (요 19:42)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님을 (마 27:60) 거기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

(마 27: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말하기를, (마 27:63) "주님(Lord),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 말하기를, '내가 사흘 후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으니 (마 27:64) 그러므로 분부하여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십시오. 그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해 가고 백성에게 말하기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심할까 합니다" 하므로 (마 27:65) '빌라도'가 말하기를,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였다. (마 27:66) 그들이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印封)하고 무덤을 굳게 하였다.

(막 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모친 '마리아'가(다른 '마리아'가)((눅 23:55)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와 그 무덤과 시신(예수님)을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마 27:61) 무덤을 향해 앉았다가 (눅 23: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으므로 (눅 23:56) 돌아가 향품과 향유(香油)를 준비했다.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는 쉬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나의 죽음"이라 표제를 단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내게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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