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6일 화요일
속아 산 세상ㅡ 다시 여전히 속으면서 자멸 행위를 하려는가 (1)
세상이여, 나는 분명히 "속아 왔다!"고 말했다. 무엇에 속아 왔는가. 그대들이 부정(否定)해 온 "신(神)"에 의해 속아 왔다. 그대들은 "신"이라고 하면 창조자밖에 모르는데, 바로 그대들의 코 앞에서 숨쉬고 있는 신이다. 그러하고도 신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고 신을 무조건 부정해 왔으니 얼마나 비참하냐. 지금도 절대 다수가 이 속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신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판이니 알 리가 없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럼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에 대하여 "속고 있다"고 말하는 나는 무엇인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3위1체의 원리 및 3운법칙(인간 생애를 철통같이 주관하고 있는 3갈래로 된 법칙)의 권위로써 이 말을 하고 있다. 인간 생애를 주장하고 있는 이 3갈래의 법칙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한 역사가 없다. 안 적이 없었다. 바로 그 권위로써 말하는 것이다. 본인 자신에게 어떤 권위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 것이다. 3운법칙과 3위1체의 원리 자체의 권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본인은 어디까지나 대행자 곧 대신 말하는 자일 뿐이다. 어느 누구든 이 법칙을 발표하는 자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개똥이든 쇠똥이든 철수든 누구든 '한 인간'이 발표하게 되어 있다. 바로 그런 '한 인간'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리키는 달이 중요한 것이니 달을 보라는 뜻이다. 달은 어느 누구의 손가락이든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손가락이 대수가 아니요 달을 보는 것이 대수다. 이제는 그 누구든 자기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되는 것이다.
달은 처음 그 달을 가리킨 사람만의 소유물일 수 없다. 처음부터 달은 있었고 그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뿐이다. 고로 지금부터는 그 어느 누구든지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을 들어 그 쪽을 향하면 되도록 돼 있다. 어린 아이라도 할 수 있고 바보라도 할 수 있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온 세상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권위'를 말한 것이지, 3운법칙이나 3위1체의 원리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온 세상이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속아 왔고 속고 있고 속을 것이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속고 있다고 항거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말하면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데도 믿지는 않고 그대로 여전히 계속 속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인데, 실상 이상할 것도 없으니 속는 자에게 속이는 자는 불가항력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 신을 능가하는 존재의 권위로써만 이 속이는 악신(惡神)을 이길 수 있는 까닭이다. 슬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런 악한 신(영)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러나 현실이다. 이 무서운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몫이다.
한 가지 예로 인간이 이 신(초자연계 존재)들 위에 군림하는 자로 창조된 사실이 이 속이는 자에 의해 숨겨져 온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유대인들도 이런 사실은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록상 찾아볼 수 없어 처음부터 없는 사실이라고 하여 믿지 않는 것이다. 왜 이들마저도 몰랐는가 하면 그런 것을 아는 지식이 대수가 아니라 방금 말한 대로 인간이 초자연계 존재로 복귀하여 그 영광을 다시 누리는 것이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결 문제로서 이 이상 가는 현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날까지 유보된 것은 당연하다. 이 근본 문제를 풀면서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아담"(고전 15:45)께서는 세상에 나타나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밝히셨다. 물론 방금 지적한 사실도 알리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지막 아담이심을 믿지 않은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 말씀을 믿을 리 없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유대인 사회에서 에덴낙원의 뱀이 용이고 사탄이요, 첫 사람 아담이 초자연계 존재였고, 에덴 동산이 이 자연계가 아니라 초자연계였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학자"들은 유대인도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스럽다고 하여 어리석게도 이런 생각 자체를 아예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지 않고 인간의 지식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이 항상 이와 같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짓거리만 영원히 계속하는 것뿐이다.
이리하여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있었던 제자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았던 초대교회는 이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 명확한 증거를 바울 사도의 '롬 5:12'(범죄하지 않았다면 아담이 지금도 살고 있었을 것이요 자연계 몸으로는 지금까지 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므로)나 요한 사도의 '계 12:9', '계 20:2'(용을 창세기의 그 "옛 뱀"이라고 지적하고 있기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 사도 생전에도 "그리스도를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따르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갈 1:6)고 했을 정도인즉, 그리스도의 말씀에 착념치 않으면 지체없이 사탄의 어두움의 보자기는 즉시 즉각 덮어 씌어지는 판인즉 올바른 말씀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신속했던" 것이니 우리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런 실상이 알려지는 것이 이 세상 신 사탄에게 덕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신속하게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비틀어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틀어 놓은 것이니 그런 일은 사탄에게 식은 죽먹기다. 그리고 말씀을 버리는 자 또는 외면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는 하나님의 원리원칙 지키심이 철저하기 때문이요 이를 사탄은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는 후대 사람들이 소위 "교부(敎父)"들의 글에 없다 하여 철저히 외면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 에덴 동산은 자연계에 속한 일부 동산이요 아담은 자연계 몸으로 있다가 범죄하여 "죽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요, 더군다나 당장 고꾸라져 죽지 않고 천년 가까이 살았다고 하여,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아담이 "죽지 않았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정도가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는데 거기에 무슨 산 믿음이 생기겠는가. 이런 것이 "속아 사는 세상"의 실상인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에덴 동산이 자연계인 줄 믿고 있고 아담이 자연계 몸으로 살다가 죽은 것이라 믿고 있고 에덴 동산이 지구 어디엔가 있거나 또는 노아의 대홍수 당시 매몰되었다고 믿고 있고, 믿어야 하는 것은 믿지 않고 이 세상 신이 펴놓은 거짓말과 속임수는 철저히 믿어주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가슴 섬뜩해지는 일이 아닌가. 얼마나 사탄에게 매여 있고 그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 지경, 이 정도라는 말인가.
소위 성경을 믿는다는 기독교계가 이러할진대 성경도 하나님조차도 믿지 않는 기타 세상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소크라테스는 인생의 가장 큰 현안 문제 해결로서 "자신을 알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 뜻이다. 속고 있는 나 자신, 속고 있는 세상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신(고후 4:4)을 가리켜 성경은 "온 천하를 속이는 자"(계 12:9)라고 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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