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회는 비상 나팔을 일제히 불라ㅡ시급히 총력전 태세를 갖추라
처음부터 우리가 crop circle(크롭 서클 혹은 미스터리 서클-Mystery Circle-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방대한 면젹의 곡물이 일정 방향으로 눕혀져 공중에서 보아야 전체적으로서 완벽한 기하학적 무늬가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페루 나즈카-Nazka-평원에 나타나 있는 무늬와 같은 것으로서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보아야 그 윤곽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공통)을 대할 때 이를 만드는 악령들이 인간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꿍꿍이가 있을 것을 간파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요즘은 그런 코드화한 문자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아래 비디오에 나오듯이,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가 그것을 코드 전환하여 알파벳에 맞추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바, "Beware the bearers of false gifts and their broken promises. Much pain but still time. There is good out there. We oppose deception."으로 되어 있는 이 문장들을 필자가 해석하기로는, "영생의 선물을 준다는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거짓된 것이어서 오늘날까지 전쟁과 악의 창궐을 막지 못해 너희가 고통을 당해 왔던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니 더 이상 여기에 속지 말라. 그러나 때 늦지는 않다. 우주 공간 저너머의 우리 외계인들은 선한 존재들이니 우리가 구원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처럼 속이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된다.
그리고 이 비디오는 고대로부터 남겨져 옴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건축물(영국의 스톤 헨지, 이집트의 피라밋 등이 모두 오늘날의 대규모 속임수를 위해 미리부터 준비해 온 악령들의 사전 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이 나타내는 일정한 수치가 있어 이것들이 한결같이 가리키고 있는 것이 "goddess of all creation"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도 하고 있는데, "창조주 여신(女神)"으로서 다시 말하면 현대에 와서 스스로를 창조신으로 가장하는 사탄의 본격적인 행보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크롭 서클의 완벽한 기하학적 문양도 이 수치대로 정확히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소위 보수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또 과거 어느 정도 그런 실적도 나타냈던 교파가 이제는 세칭 "외계인"을 인정하는 것으로 완전히 돌아서 악령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놀랄 것은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은 예외없이 모두가 넘어가게 되어 있으니까.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따라서 소위 "외계인"을 믿고 있는 실정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부간 확정을 못하고 엉거주춤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 시점이면 교회마다 성명서를 내든가 기타 방법을 통해 이 소위 "외계인'에 속아 넘어가는 세상을 향하여 경고를 발하고 이 마지막 남은 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지체 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것인데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디오도 마치 창조신의 음성을 듣고 선하고 거룩한 창조신을 대하듯이 경건한 음악을 흘려 보내고 있는 것을 보라. 마치 구세주를 맞이하는 것처럼 이 비디오에 나오는 모든 연구가(크롭 서클에 대한)들 모두가 그런 분위기다. 자연계에 속한 인생들은 이들 초자연계에 속한 악령들의 초능력을 당할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재삼, 재사 강조한다. 그들이 선한 척하고 나서면 그들을 악하다고 할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백이면 백 모두 이 악령들을 반박할 근거를 마련할 능력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든 그 어떤 학문이든 지식을 자랑하는 이들일수록 악령들의 이런 고차원의 지식에는 반드시 현혹되어 넘어가게 되어 있다. 왜냐면 자기가 최고 지식인이라는 자부심에서 그 맛에 살아 왔으니까 자기보다 더한 지식인 앞에서는 맥을 못추듯이 자기 지식을 압도하는 지식의 논리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학문적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계시에 의한 지식'(딤후 3:7) 가운데 있어야 쉽사리 요동치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항상 부지런히 탐독해두라는 것인데 이 경고를 모두 흘려 듣고 있다.
이렇게 악령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성경의 하나님을 배척하고 오직 이 외계인의 속임수에 넘어가 창조신을 알게 되었다고 흥분하고 있는 이들은 그런 것을 거짓된 것이라 경고하는 우리들에 대해 당연히 적대적 위치에 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를 "그 수가 몇이 되든지" 다 싹 쓸 듯이 죽이게 될 때(계 13:15),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요 16:2)라고 여겨 교회를 말살시키게 될 것이다.
고로 이 시점에 대비하여 모든 교회는 북한이나 과거 중국이나 소련 체제에서의 교회처럼 세포(cell) 교회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악령들과의 전쟁이 영적인 것이고 육체적이지 않다는 차이는 있으나 싸우는 방법은 같은 것이니 하나의 전투 대형(隊形)을 유지하기에는 그 결속력과 기동성(민첩성), 침투력에서 세포 교회처럼 이상적인 것은 없다. 초대 교회가 바로 그런 유형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따지고 또 따져라, 왜, 왜, 왜ㅡ이것이 성경이 던져주는 도전장이다
"지하교회"란 말은 어폐가 있다. 초대교회 형태를 벗어나, 이 세상이 마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 것처럼 교회당 건물을 보란 듯이 크게 짓고 하나님의 교회랍시고 위세를 과시하던 지금까지의 무지한 교회 운영을 기준하여 하는 말이기에 그렇다. 마지막 아담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핍박 받는 것으로 시종일관하게 되어 있는 교회의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세속적 표현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초대 교회 형태"라고 고쳐 불러야 마땅하다. 아니라면 "세포(cell) 교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포"라는 의미는 핵 분열하듯이 12명을 적정 단위로 하고 그 이상으로 불어나면 반으로 다시 쪼개어 6명 선에서 출발, 계속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불려 나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매일 모이고(매일 모이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고 적절하게 신축성 있게 운영하면 될 것이니 개인 사정을 따라 불가피하게 빠지는 날이 있을 것이므로) 일주 한번은 기백명이든 천명이든 전체가 한 번에 모여(건물이 없을 때는 하루쯤 임차해도 무방할 터) 대집회를 여는 구상도 좋은 것이다. 어쨌든 틀에 박힌 것에 집착하여 화석화(化石化)하는 것을 막도록 힘쓸 일이다. 생명체는 환경에 순응하여 적절히 변화하는 것이 특색이다. 그런 변화가 없으면 목석과 비교해 나을 것이 무엇이랴.
앞 글에서 악령들이 속일 때 "기독교는 지금까지 인류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다. 현재에도 평화와 안녕의 질서를 지키지 못했으니 어찌 미래의 영생의 약속인들 제대로 지킬 것이냐" 식으로 무지한 인생들에게 접근한다 했거니와, 실상 이런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은데, 인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악령들이 이런 식으로 성경을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러, "내가 바로 구원자다" 하고 나설 준비로써 그런 생각을 광범위하게 인생들의 뇌리 속에 미리 각인시켜 놓았다 함이 옳은 분석일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안녕과 복락을 약속한 일이 없다. 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니, "악인에게 평안이 없다"고 성경이 처음부터 선언한 것처럼, 악인 즉 자아중심으로 나가는 인간이든 영물이든 단 하나라도 있을 때 그 사회는 안녕과 질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하나가 들어 얼마든지 전체 사회를 온통 흐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 하나가 들어 전체 인간을 죽음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고통 속에(한 몸으로서의 체제이므로) 빠뜨린(롬 8:22) 현재의 예를 들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상태에서의 안녕과 평안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강제와 간섭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악인 혹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때요 그런 장소(무대)로서의 세상인 것이다. 생명의 핵심이 사랑이 되어 있는 속성상 절대로 강제적 수단으로 평안과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자진 자발적인 자유인으로서의 선택에 의해 그래서 의와 선(그 총합이 바로 한 몸 체제에서의 삶)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수하는 이들로써 구성된 사회라야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이 구현되는 것.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승승장구하고 득세할 수밖에 구조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의인(선인)은 밀리고 부대끼고 박대를 당하는 것이 필연으로 되어 있다. 성경은 이를 다시 필수적인 것으로 가르친다. 이유는 생명 가운데 있는 의인이 구원의 대상자의 죽음에 동참하여 하나가 되어야만 그의 죽음이 의인의 생명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항구불변의 삶의 법칙(이는 또한 구원의 법칙이니 곧 머리와 몸으로서의 한 몸됨의 이치)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친히 본을 보여주신 바다.
적 그리스도의 거짓된 속임수의 수작은 그런 소위 "외계인"의 메시지 전달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이 강제력에 의한 통일, 통할이다. 그런 강제적인 것은 위의 설명처럼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로 이 영원한 삶의 법칙을 애호하여 준수하는 하나님의 의인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건져내는 갸륵하고 숭고한 작업에서 모든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에 악령들이나 악인들의 위협이나 회유가 먹혀 들 수가 없다.
성경 내용의 합리성은 가장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총동원되어 있는 것임을 항상 명심할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시니까 그런 것이다. 모든 법칙의 창조자이시니까 그런 것이다. 법칙에 모순이나 자가당착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칙일 수 없다.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그리고 알려고도 않은 채 "무조건 믿는 것이 대수다' 하고 무식하게 가르쳐 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서글픈 실상이었다. 여기서 한시 바삐 탈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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