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
하나님 보촤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라!
그 모습이 내 모습이다. 내 모습으로 그렇게 계신다.
그리고 내 모습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모습이니(갈 2:20)
무릇 산 자는 모름지기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어 나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자신을 내게 주신
영원하신 선물로서 내게 주신 마지막 아담(고후 5:15)
곧 나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니(롬 14:7-9) 이것이 바로 둘의 하나됨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하늘(천국)에서 주님 외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 주님 외에 내가 사모할 자 없습니다"(시 73:25) 한 것.
때문에 "아내/남편을 어찌하면 기쁘게 할꼬"보다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드릴꼬"가
가장 우선적임을 바울 사도는 가르친 것이다(고전 7:32)
이것이 새 창조 다시 출생한 이들의 공통된 정상적 삶이다.
이상 작품의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P.S._Kr%C3%B8yer_-_
Summer_evening_on_Skagen%27s_Beach._Anna_Ancher_and_Marie_Kr%C3%B8yer_walking_together._-_Google_Art_Project.jpg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들이 (함께)수고함으로 좋은 상(성과)을 얻을 것임이다. 혹시 저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는 것이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9-12)
나와 함께 사시는, 함께 일하시는, 함께 싸우시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인님(나는 그 분을 섬기고 그 분께서는 사랑으로 나를 섬기시고 엄마가 아기의 종 노릇을 하는 것처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실까. 바울 사도가 실제 뵙고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그 아름다우시고 우아하시고 늠름하신 모습은 가히 필설로 형용 못한다. 위의 그림(덴마크의 화가 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가 그린 것)은 가장 우아하게 정성들여 그린 작품이나 주님의 모습에는 감히 견줄 수도 없다. 장차 세상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시면(지금은 성령으로 1년 365일 24시간 나와 함께 계시나) 보는 사람마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게 될 것이다(살후 1:1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