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금요일

21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르네상스 (수정 보완)








주님의 날

첫 사람 아담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한번도 인간 세상을 다스려본 적이 없었다. 사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따름으로써 사탄의 추종자가 되어, 사탄이 아담 위에 올라 섬으로 인해 인간 세계의 지배자(임금) 그래서 이 세상 신(神)이 된 것이다. 고로 범죄 전의 아담의 자리에 위치해 계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그 역할을 당연히 맡아 하시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정 기간(계시록은 이를 "천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게 되신다. 천국에 들어가는 이들마다 원칙적으로 일정량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고후 1:5/빌 3:10/벧전 4:13) 것이 사실이나(장시간 기도에 임하여 성령 안에서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고난의 일종) 그 중에 특별히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을 그 몸된 교회를 위해 자기 몸에 채운"(골 1:24)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때 다스리는 자가 된다. 그런 영광의 자리를 탐하여 고난 받으려는 이들도 없겠지만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런 자아중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지 않는다. 그런 것에는 관계 없이 오직 사랑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섬길 일이다. 상벌(賞罰)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의 소관사도 관심사도 아니다. 

고로 적 그리스도의 등장은 그러한 마지막 아담의 정의로운 통치 시대를 위한 '악인들의 일대 청소 작업'(살후 2:12)이라 할까. 적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마다 "불의를 좋아하는 자"(:12)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날"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질 것이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할 것이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이다"(벧후 3:10-13) 했으니 이 경우 주의 날은 "천년" 통치 기간이 종료되고 마지막 심판을 말함이 분명한데, 그러나 "도적같이 올 것"이라 했으니 예기치 않게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란 뜻이다. 

이런 "도적같이 임한다" 한 것은 바울 사도도,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실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님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다. 저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들에게 이를 것이므로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할 것이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다"(살전 4:16-5:4) 하였다. 

위의 바울의 언급에서 우리 살아남은 자도 공중으로 들어 올림을 받는다고 했으므로 이는 마지막 심판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의 천년 통치 시작을 의미하는 경우다(살후 2:2-12). 그러나 똑같이 "주님의 날"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오래 참으심"을 끝내고 오로지 하나님의 전권을 휘두르시는 때임을 말한다. "그 날"로도 표현되고 있는데 주님께서도 이와 같이 표현하셨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면 예루살렘의 마지막 날과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기술한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주님의 날"에서도 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구원과 관련된 것'을 제하고는 우리가 모든 것을 정확히 해석하고 있다고 자부할 필요는 없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벧후 3:16)고 인정하면 되고 따라서 이것을 억지로 풀려고 할 것은 없는 것이다. 단지 그 요점을 파악하면 되는 것이니 즉 "항상 기도하여 깨어 있는"(눅 21:34-36) 데에 있다.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마멸된 "만유를 회복하시는"(행 3:21) 단계에 있으시므로 마지막 아담께서 비록 첫 사람 아담의 위치에 계시나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전개되었을 상황과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아담이 자연계 육체로 아주 전락하지만 않았다면 영물들처럼 초자연계 몸으로 있으면서 악인과 의인(영물들이 "거룩한 천사"와 악령들로 구분되었듯이)으로 모든 인생들이 분류되었을 것이나 이미 자연계 몸으로 환원되어버린 다음에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양상이 약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되는 초자연계 몸으로 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다스림을 받는 지상의 인생(자연계 몸의)들로 나누어지게 되며, 그러나 지상의 인생들도 노아 당시의 아담 시대의 사람들처럼 모두 천년 정도는 장수하게 된다.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우리의 호기심만 충족할 뿐이므로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주님이 불시에 오실 것이므로 조심하여 깨어 있으라 하셨는데 즉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6) 하신 말씀에서, "이 날"이 적 그리스도가 한창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장악하고 있을 때인가 아니면 그러기 전인가 하는 것인데 후자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적 그리스도가 오는 것과 마지막 아담께서 오시는 것을 같은 '때'로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적 그리스도가 임하여 올 때는 이미 모든 것이 거의 판정이 난 때여서 깨어 있는 자는 그 원수를 이길 것이지만(대개 이 경우 죽임을 당하는 것이 그를 이김인 것)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그에게 복속(服屬)될 것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직접 관련되는 것은 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관련 여부가 핵심이다. 고로 적 그리스도를 이기면 마지막 아담 안에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어 멸망하는 자로 간주되는 운명이다. 

그런즉 적 그리스도가 무대에 출현하게 되면 그것은 마지막 아담께서 곧 세상에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적 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리스도의 재림(강림)을 동일시하게 되는 의미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적 그리스도를 언급하시지 않고 다만 "인자(人子)가 나타나는 날"로만 나타내신 것이다. 주님께서 적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상으로 언급하신 것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영접할 것이다"(요 5:43) 하신 이 한 말씀 정도뿐이다. 자아중심의 속성은 그런 똑같은 자아중심의 속성끼리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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