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8일 금요일

21세기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접점



"만물이 창조자로 말미암아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골 1:16) 곧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는 것으로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 이를 우리는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히 11:3). 때문에 인생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모든 일을 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아야"(고후 5:7) 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는 것"들을 판단하려 하니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즉 자연계에 국한되는 관찰만을 전부라 착각하니 동전의 일면밖에 인식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 그 나머지 다른 면은 완전히 덮어 둔 채 한 면만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모든 수단을 다해 전문가가 되어 있으나 다른 일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그 지식이 산 지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 돌로 작용하는 것은 필연적 운명이다.

성경은 이와 같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양립된 세계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자연)과학자들보다 앞서도 한참 앞서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눈에 보이는 일면만을 고집하는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면까지 인식하여 이를 주장하는 이들이 과연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헛소리 하는 미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양면만을 다 보는 이들은 또 이 일면만을 보고 고집하는 이들이 헛소리하는 가련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제3자가 볼 때 둘이 다 똑같다고 하겠는가? 분명히 그 중에 하나는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하겠는가. 상식인이라면 판단을 후자 쪽으로 할 것이다. 즉 양면을 다 보는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면 그 "보이는 않는 것"의 증거를 대라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요구야말로 어폐가 있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는 것으로써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라는 말인가. 이것이 자연계 즉 보이는 것의 한계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 생애의 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의 원리 아니, 둘 모두가 등장하게 되는 필연성이 확인된다. 둘이 함께, "보이지 않는 것"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인데, 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마름질하고 재단하고 저울질하고 "너는 여기서 여기까지이고 그 이상은 안된다" 하고 "너는 이로써만 한정되어 있다"는 식으로 인생을 사로잡아 꽉 움켜쥐고 있는 존재가 사람 자신일 리는 없지 않은가.

이렇듯이'인간을 주재, 주장하는 존재를 창조자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별문제인데 인간인 이상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성경이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를 처음부터 밝혀, "인생의 걷는 걸음이 걷는 자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상 더욱 그렇다(렘 10:23). 모든 인류를 그 생존의 때와 장소를 따라 한정하셨다 또는 미리 정하셨다 한 것이다(행 17:26). 이 사실이 가시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 인간 생애의 법칙(3운법칙)인 것이다. "너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만 살아라", 그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만 네 활개를 펼 수 있고 이 때를 넘기면 더 이상 움직이면 안된다" 이렇게 정해진 대로 인간사 그리고 우주의 만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바벨론 왕 궁전 벽에 한 손이 나타나 쓴 글씨를 문득 보고는 창자가 녹는 듯이 되어버린 벨사살 왕 앞에 선 다니엘이 밝힌 사실이 그것이다.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단 5:23)이심을 밝힌 것. 신지식, 첨단 정보에 목말라 하는 당시의 문명인들이었던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바울 사도가 밝힌 사실 역시 동일하다. "우리가 그(창조자 하나님)를 힘입어 살며 기동(起動, 움직임)하며 존재한다"(행 17:28)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이 지어졌는데"(히 11:3) 이 역시 우리를 기준으로 하여 착각할 것이 아니니, 우리는 그냥 말 한 마디로 "돈 나오라 뚝딱, 밥 나와라 뚝딱" 식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말씀이 일단 발해지시면 즉 "빛이 있으라" 한번 말씀을 하시면 자연계의 모든 것이 빛이 존재하게 되는 쪽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기간이 당장인지 세월을 두고 소위 "진화"를 통해 진척된 것인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았으니 우리가 함부로 말함으로써 가감할 필요는 없는 것.

"뭍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등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이루는" 과정에서 물고기가 새로, 새가 네 발 가진 짐승으로, 또 인간으로 변천해 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족적(발자취)이 화석으로 남아 있을 확률은 100퍼센트다. 우리가 분명히 알거니와 "6일 창조'의 그 "1일" 단위는 우리가 아는 대로의 365일 24시간의 1일이 아닌 것이니 왜냐면 사계절이 정해지기도 전에 이미 하루 이틀 세어 가기 시작한 때문이다. '

단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런 진화의 과정에 의한 창조는 이미 "7일"로써 완전히 마감되었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창조론적 진화론이니 진화론적 창조론이니 하는 말부터가 역시 어폐가 있다. 오직 인간의 신 창조만이 지금 진행 중일 따름이다. 처음 초자연게 초능력의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범죄하여 현재와 같은 비극의 자연계 존재가 되어 있어 이런 망가진 인간을 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는(첫 사람 아담의 역할은 폐기되었으므로) 재 출생을 통해 새로 창조하심이다. 이 인간의 새 창조로써 새 하늘과 쌔 땅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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