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4일 월요일

모든 허구와 거짓을 짓밟아 뭉개버리는, 인류가 일찍 구경 못한 초대형급 거물(巨物)ㅡ3위1체의 원리와 인간 생애의 법칙 (보완)

모든 허구와 거짓을 짓밟아 뭉개버리는, 인류가 일찍 구경 못한 초대형급 거물(巨物)ㅡ3위1체의 원리와 인간 생애의 법칙이 소용돌이 치며 스쳐 지나간 다음에는, 적 그리스도가 인류 역사상 일찌기 구경 못한 기적(초능력)의 최대 장관을 이루면서 무대에 설 것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 인류의 대표이신 마지막 아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등장하시는 클라이맥스가 전개될 전망이다. "허구"라 "거짓"이라 한 것은, 이 세상의 지배자 악령이 단순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조자 하나님은 없다"고 선전해 온 순도 100프로의 속임수를 가리킴이다. 한심한 것은 또 그렇다고 거기 넘어간 인생들이다. 더군다나 "배웠다"고 하는 이른바 지식인층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과 어긋나는 것으로 접근해올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언지하로 퇴짜를 놓고 무시해버리는 것이 지금까지 오면서 얻은 학습 효과이니 이에 유의할 일이다.   

인간 생애를 주장 주관하고 있는 법칙(3운법칙, trini homo, fas homo, fashomo)이 알려졌는데, 이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삶에 있을 수 없다. 이 법칙은 3위1체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3위1체의 도식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어 이것이 3위1체 법칙을 검증한다고 하는 것이다. 또 이러한 이유 때문에 3위1체의 원리는 3운법칙의 확실성과 진실성을 보증,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 검증이다. 자연계 법칙에만 한정되는 자연과학의 모든 법칙과 원리도 이 3위1체의 원리의 지배하에 있다.

이 3위1체의 원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자연법칙에 새로운 조명을 시켜주고 있다. 즉 예를 들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은 모자(母子, 파생시킴과 파생됨) 관계에 있다는 전혀 새로운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둘은 주종(主從), 인과(因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제로 하여 둘 사이를 규명해 나가야 하는 것. 그리고 "양자 얽힘"에서 'down 스핀'과 'up 스핀'의 정반대되는 성질의 반응을 보이는 x미립자와 y미립자의 양자 관계(짝을 이룬) 역시 같은 모자 관계 즉 주종, 인과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3위1체의 원리는 천명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와 영향을 미치는지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물리학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부언하는 것은, 지금부터는 homo sapiens science 즉 "인간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학문이 개설됨으로써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아울러 연구하는 계기를 이룸이 되지 않을까 하기도 하지만ㅡ. 인간 생체에 대해서는 생물학의 전담 분야이고 초자연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유일한 연구 건목이 될 만도 하지만ㅡ. 그러나 그런 학문으로서의 여유마저 허락하지 않을 것은 지금 때가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예언한 바 지식의 급증(단 12:4)과 더불어 지금은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전개되고 있음이다. 악령이 창조주로 가장하여 온갖 초능력을 구사하면서 등장하기가 무섭게 곧이어 마지막 아담께서 그 모든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으로 세상에 다시 임하셔서 그 현란한 자태를 드러내실 것이니, 연구하고 말고도 없이 곧장 모든 것은 실제 상황으로 직진, 돌입하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서 무릇 대칭을 이루고 있는 형상, 현상은 반드시 이러한 모자 관계에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대등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등한 것이라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우주가 운행될 수가 없다. 하나로서의 둘, 둘로서의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탄탄한 구조를 이루어 지금까지 한 치 오차 없이 진행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태가 아무 변동, 변화 없이 지속된다는 말은 아니다. 3운법칙과 3위1체 원리의 모태(母胎)요 산실(産室)이자 모든(자연계와 초자연계를 아우르는) 과학의 총본산인 성경이 이 우주는 헌 옷처럼 되어 장차 새 옷을 갈아입게 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기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3운법칙에 의해 인간 생애를 꼼짝도 못하게 움켜 쥐고 있고 그러한 법칙을 주관하는 3위1체의 원리에 의해 인과, 주종, 대소, 선후(先後)의 이치를 따라 자연계가 있으니 반대 자연계(초자연계)가 있고 만물이라는 결과가 있으니 원인으로서의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확증된 마당에, 그 창조자의 말씀으로 밝혀져 있는 성경이 어찌 모든 과학의 토대가 아니라는 말인가. 자연계의 제반 법칙이 창조 없이 저절로 생겨 날 수 있는가. 그 법칙에 따라 자연계 그리고 그 반대되는 세계가 창조되지 않았던가. 이런 것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니 몰상식하다는 말을 듣게 되어 있다.


성경 창세기 6~9장에  상세히 기록된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단지 설화에 불과하다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유지되지 못한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성경 도처에 인용되고 있는 까닭이다. 고로 수많은 무신론자, 이성주의자, 인본주의자, 과학주의자,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노아의 홍수 사건을 제일 먼저 건드렸다.  성경 내용을 비지성적, 비과학적인 것으로 폄훼할 때 제일 먼저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을 들고 나왔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믿으면 과학적 소양이 없는 무식한 종교 광신자로 취급되었고, 그리하여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 노아 사건에서부터 성경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고, 의심이 싹 트기 시작하자 결국은 모든 성경 내용을 비유 정도로만 해석하다가 마침내는 신앙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 생애의 법칙은 이 노아와 그 방주, 홍수 사실의 진실성을 드디어 훌륭히 입증해낸 것이다. 실상 3운법칙에서 SN 유형은 노아의 생애를 표본으로 한 것이다. 노아는 4,400년 전의 인물이다. 나머지 유형인 FS, OT도 3,300년 전의 모세, 4,200년 전의 아브라함 그리고 JP도 4,000년 전의 요셉의 생애를 기준한 것이다. 본시부터 이들의 이름을 따서 각 유형의 명칭으로 삼으려 했으나, 7/19(Seven Nineteenths), 1/3(One Third), 4/7(Four Sevenths) 등을 기억 나게 좋도록 함이 우선이므로 후자를 택한 것이다.

이와 같이 노아 하나만 그 사실(史實)을 3운법칙으로 증명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시해 모든 고대 인물들 역시 그 진실성이 입증됨에 따라 인간 생애의 법칙은 그 막중한 무게를 더하고 있다. 따라서 3위1체의 원리를 검증하는 3운법칙 곧 인간 생애의 법칙은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만 아니라 그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진실성을 또한 입증할뿐더러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영원불멸성'을 확증하고 있다. 왜냐면 인간 생애의 법칙은 죽는 자들에만 국한되는 그 죽음을 기준하여 산출되는 것이므로, 인간을 위한 희생 제물로 일단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영원히 죽으실 수가 없는 "마지막 아담"(고전 15:45)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기록 자체가, 이러한 부활하신 영원한 그리스도이시므로 그 탄생 날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신 날짜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지를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해 생략해 버리고 있다. 왜냐면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그렇게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계시는 분을 두고 그 고난 받아 죽으신 날짜를 세밀히 기록할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지 그 탄생과 십자가 고난 받으심과 부활의 사실만 밝히면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인간 생애의 법칙은 만유의 법칙(왜냐면 창조자 하나님 친히 그 계시는 모습을 따라 만유를 지으셨고 그 피조물을 유지 존속시키는 바로 그 원리이기 때문)으로서의 3위1체의 원리를 검증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드러내어 입증해주는 것이니 그 의미의 막중함은 이루 형용할 수도 없다.

이 인간 생애의 법칙은 아담을 위시해 모든 인간을 하나하나씩 점검해보지 않고는 그 확실함을 증명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왜냐면 혹시 그 중에 예외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조 자체가 3위1체의 원리를 입증하고 있는 까닭에 그래서 그 짜임새(세 가지 유형을 이루고 있는 수치)의 하나하나가 제각기 나름대로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런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더욱이나 수 천년 간의 간격을 두고 있는 고대인들까지 이 인간 생애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님을 성경 스스로 밝히고 있지 않는가!

그런즉 창조자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 사실을 수용하겠느냐, 말겠느냐. 가부만 말하라. 그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당연 귀결로서의 자기 운명 자기가 결정할 일이다.

성경은 진실된 기록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임이 확증되었다. 이를 믿겠느냐, 말겠느냐. 가든 부든 양자 택일하라. 가 쪽에 서라고 강제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창조자 하나님도 절대 불간섭으로 정하신 바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가 다시 출생하고 새 창조를 받음으로써 애시당초 초자연계의 몸으로 창조되었던 상태로 회복, 복귀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길(방법)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이 마지막 아담을 사랑하겠느냐 말겠느냐, 그 여부만 말하라. 정승 감사라도 제 마다하면 그만이다.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구원 얻는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役事)하는 성질이므로(갈 5:6) 사랑 유무를 묻는 것이다. 사랑하겠느냐, 않겠느냐.

사랑하지 않는 것은 미워함이다. 양자 택일뿐이지 그 중간은 없다. 3위1체의 원리가 이를 가리킨다. 즉 대칭 원리로서,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오늘날 3운법칙은 모든 인류에 대해서 양자 택일만을 강요하고 있다. 불가항력으로 가든 부든 하나만을 택하도록 그리고 반드시 택하도록 요구되는 까닭이다.

가부간에 답하라. 이 질문을 회피하면 곧 나타나게 되어 있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이미 그 경우 가, 부 중에서 부를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단하라, 결단하라.

"사람이 많음이여, 결단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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