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7일 목요일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대로의 기독교 교리의 심각한 오류



기독교라고 하면 가장 큰 교단으로서 세력화되어 있는 천주교 그 다음으로는 개신교인데 이를 총칭하는 것으로 세상은 인식하므로 그대로 따라서 여기서도 기독교라 한다. 여기서 "오류"라고 하는 것은 오직 성경상으로 밝혀진 사실을 따라 밝히는 것으로서 성경과 어긋나는 것 중의 가장 두드러진 것을 열거함이다.

★ 천주교도 개신교도 에덴 동산을 자연계에 속한 동산 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초자연계임을 밝힌 것이다.
★ 따라서 아담이 우리와 같은 자연계에 속한 몸으로 있다가 에덴 낙원에서 추방된 것으로 기독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에덴 동산이 초자연계이니까 당연히 초자연계 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 고로 아담 부부가 직면한 죽음은 그런 영원히 사는 초자연계(성경에서는 "초자연"이라는 말 대신 이를 "신령함"으로써 표현) 육체의 삶을 잃고 자연계 존재로 하락한 것을 성경은 밝히고 있는데 반해, 기독교는 이런 사실을 모르니까 단지 "하나님과의 영적(靈的) 단절" 정도로만 애매 모호하게 얼버무려 왔다.

★ 때문에 기독교는 천사나 사탄(마귀, satan)을, 성경 중에 나오는 "그룹"이나 "스랍"으로 표현되고 있는 피조물 중 하나인 그룹이었다고 알고 있는 반면, 성경은 "큰 용, 옛 뱀 곧 마귀"(계 12:9/20:2)로서 창세기에 나오는 그 "뱀"이라고 두 번이나 명시해주고 있다. 기독교는 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간과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건만 그 후 몇 백년 내려오면서 중간에 변질된 결과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방치되어 온 것이다. 그 후로 이에 대한 "재검토", "재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성경을 직접 읽기보다 소위 교부(敎父)들의 글만을 위주로 하여 학문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계시로써만 구원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성경의 경고(고전 2:14/눅 10:22)를 처음부터 완전히 무시한 결과다.

유대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그 수준을 따라서만 성경을 이해하려 한 불찰이다. 유대인의 교리나 인식이 무슨 최고 권위처럼 착각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는 아무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알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그림자에 불과한 그동안까지의 지식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모든 것은 밝혀진 것이다. 에덴낙원이 초자연계라는 사실도 물론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밝히심으로써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가르치심을 수용하지 않는 유대인 사회이니 그들의 믿는 바가 전연 참신한 것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것이 무슨 최고 권위인 것처럼 착각해온 것이다.

이와 같이 기본부터 틀려 버리니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그 나머지 모두가 뒤틀리게 될 것은 물론이다. 소위 "첫 단추 잘못 채움"이다. 그래서 나오게 되는 것이 성경과는 판이한 구원관이다. 즉 아래와 같다.

★ 그 결과 천주교는 마리아를 끌어들였다.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도께 나아간다는 논리다. 마리아는 "마지막 아담"(고전 15:45)께서 그 제자들이 듣는 앞에서 어머니라고도 하시지 않고 "여자"라고만 호칭하셨던 그런 존재다. 요한 사도는 이 사실을 두 번이나 명백히 기술해놓았다.

그리스도 위에 마리아를 얹어 놓았을 때에는 거기서 그 어떤 성경적 구원관도 도출해내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래서 이 한 가지로써 천주교는 완전히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배제한다.

★ 개신교의 그릇된 구원관은 쉽게 말해 "행위"보다 "믿음"에 아주 경도되어 버린 것이다. 행위와 믿음은 서로 양립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당연 귀결로서의 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당연한 믿음의 증거로서의 행위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 그래서 그리스도께 나오기 전의 율법 아래 놓인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울 사도의 설명을 난데없는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이후의 개인적 체험으로 둔갑시켜 가르쳐 온 것이다. 개신교의 모든 교단이 이 점에서는 대동소이하고 개별적으로 그런 오류에 물들어 있지 않은 예는 있으나 극소수다. 고린도전서 7장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와는 정반대인 로마서 7장에 붙들려 매여 있으니 그 결과는 뻔하다. 흐르는 물이 되지 않고 고여 썩은 물이 되는 것이다. 

★ 여기서, "한 번 구원 얻었으니 영원히 구원 얻은 것"(Once saved, always saved)이라는 오류가 다시 파생된다. 그리고 극단적 낭설에 불과한 칼빈주의가 대두된다. 즉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믿도록 정해놓으셨기 때문에 믿게 된다는 가히 '마리아' 수준의 궤변이다. 각자 스스로 자기 의지로 선택하여 믿게 되는 것을 미리 아시는 고로 이 미리 아심을 따라 예정하신다는 성경의 설명을 완전 무시한 것이다. 예정은 이 미리 아신 대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장애를 제거해 주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 간섭이 아니다. 이런 모순점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칼빈의 예정론을 중시해 온 어리석음이다.

회개는 차후부터는 영원히 순종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액면대로 받으시고 성령의 선물을 주심이다.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무조건 그리스도의 속죄 사실만을 근거로 하여 주시는 선물이라고 거의 모든 개신교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약속 이행이 되지 않을 때는 그는 아무리 성령을 받아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는 것이 성경인데도 개신교는 이런 경고(빌 2:12 등)를 강단에서 말하는 법이 없다.

이런 오류가 지배해 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는 데에는 아무 하자가 없었음을 부기해둔다. 이유는 구원 받는 일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는 자"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사랑의 언어만 이해하는 것으로 그 특징을 삼는 것으로서, 이 "사랑"이 모든 지식(그것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불문하고)에 우선하기 때문에 사랑하여 순종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고로 이런 "오류"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런 오류는 이와 같은 사랑으로 접근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악인(자아중심을 회개하지 않으니까 악인)으로 분류하여 걸러내는 역할만을 한 것이고, 구원 받는 일에는 아무 지장이 될 수 없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이 지적해두었으므로 성경을 읽는 이라면 이해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래도 사족을 붙인다면, 창세기의 에덴 낙원이 초자연계라는 사실 등은 아래와 같은 성경의 설명으로써 명백해지는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서 말하면ㅡ

◆ 창세기 기록에서 사람을 흙으로 그 육체를 만드시고 영혼을 조성하시고 하는 등의 일련의 사실은 창조 기간이다. 창조를 하시는 중인데 이미 창조를 완결하신 자연계를 또 다시 만드실 이유가 없는데도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에덴 낙원에서 식물을 조성하시고 동물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 로마서에서 바울은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죽음이 왔다고 했다(롬 5:12). 그렇다면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말인즉 자연계 몸이 지금까지 살 수 있겠는가. 천년 가까이가 최장 기록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지 않는가.
◆ 자연계 식물이 선악을 알게 하고 더더군다나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하게 할 수 있는가. 생명과 나무가 바로 그런 식물이므로 이로써 에덴동산이 초자연계임을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자(人子)이심을 거의 말씀마다 강조하셨듯이, 사람이셨다. 그래서 사람으로서 죽으셨고 부활도 사람으로서 이루셨기 때문에 사람된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희망이 있는 것이거늘, 그리스도의 초자연계 몸의 부활을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되신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의 바울의 지적한 바와도 같은 의미다.
즉 죄 값이 청산된 다음의 부활일진대 범죄 전 상태 다시 말해 죽지 않는 상태로(범죄의 대가로 우리가 죽는 몸이니까) 복귀하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죽지 않는 몸인즉 이 자연계 몸이어서는 안되고 초자연계 몸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다시 말해 죽기 전 아담의 몸이 초자연계 몸이었다는 증거다. 이런 논리적 파악도 제대로 못한다면 어떻게 성경의 다른 대목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려는가.

◆ 뱀이 사람의 말을 한다고 많은 사람이 성경이 동화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꼬아 왔다. 이 모두 치명적인 기독교 교리의 오류가 낳은 부산물이다. 그릇된 해석과 잘못된 이해로써 세상에다 대고 성경을 이렇게 선전해 온 꼴이 되어버렸다. 성경이 두 번씩이나 뱀은 그 용이요 사탄이라 설명한 것을 도무지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은 고집 때문이다.

◆ 창조를 성경대로의 "6일"로 한정해서 이해해 온 오류 또한 크다. 스랍과 그룹 창조에 대해서 왜 성경이 생략해 놓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도 않은 것이다. 천사들을 그룹과 스랍 종류의 피조물과 혼동한 결과다. 왜 물이 처음부터 존재했고('6일' 창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물 속에 뭍이 들어 있었는지 설명하는 것을 성경이 생략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의 하늘과 땅을 가리킴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자연계 환경을 따라 성경은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아담 부부가 "벗었으나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표현도 가능한 것이다. 성경은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 들이면 인간 이성으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단 첨언해 둔다면,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했으니 그 점은 참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친히 약속해 주신 대로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 성경의 가르침을 이같이 무시 또는 그 결과로 무지함으로 일관한 까닭에 이 세상이 악령 사탄의 지배 아래 있다는 성경의 설명도(고후 4:4/요일 5:19) 귀 담아 듣지 않고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니까 무조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재하신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하여 사탄의 인간 조종을 과소 평가해 온 것이다. 때문에 교회당은 웅장 화려하게 지어 올리는 것이 무슨 큰 영광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고 세상 국권(國權) 위에 소위 "신권(神權)"을 올려놓는 것을 당연지사처럼 착각해온 것이다.

◆ 산다는 것 자체부터 몰이해로 일관해온 것이다. 사니까 그저 사는 것으로만 극히 안일하게 또는 유치하게 생각해온 것이다. 성경이 한 몸 체제를 강조하여 머리와 몸의 관계임을 설명하고 있어도(고전 12:26/대하 13:12)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영생 하나에만 욕심스럽게 매달린 결과다.

이 모두 기본 사실부터 바로 챙기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사랑 아닌 지식으로만 달려드는 판이니 제대로 성경 이해에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관, 구원관, 인생관(사는 것이 무엇이냐) 모두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때이다. 더 이상 어두움 속에 갇혀 지낼 일이 아니다. 속임수에 넘어가 있던 소위 '전통'과 '권위'가 무슨 대수랴. "속았다'는 이 한 마디면 족하고 가차없이 버릴 것뿐이다. 

수 천년의 관록이라 해도 우리의 자연계 수명이 너무나 짧아 그렇지 불과 하루 이틀의 단위인 것이다. 바로 이 기준을 따라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하는 것이다. 이상은 대충 큰 것만을 골라 성경과 현 기독교 교리의 차이를 구별해 놓은 것이다. 이런 점만 보아도 대강 실상을 알 수 있으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각자 판단하여 진리를 따라 행해야 할 것이다. 

하기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15세기의 일이다. 그러면 기록상으로는 인간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 때까지만 해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참으로 한심한 얘기가 된다. 이런 세상 일에 대해서도 무지하기가 이 정도라면 하물며 보이지 않는 초자연계(신령한) 일을 말하는 성경에 대한 무지야 말해서 무엇하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친히 계시하심으로써 인간이 알게 된다고 성경이 선언한 것이야 사실이지만(고전 2:12-14),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구원의 말씀이 성경으로 기록되게 하신 이상 필요한 모든 것은 인간에게 숨김 없이 다 나타내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씀하셔도 믿지 않으면 그만이요 더군다나 두드리고 찾고 구하는 자에게 진리가 열려진다고 확언하신 다음에야 무슨 말을 하리요. 

다시 말해 두드리지 않는 한 수천년이 아니라 수만년을 간다 한들 무지몽매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기는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성령으로 계시하여 주심을 바라 성경을 읽는 대신 인간의 말과 글에 의존하여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려는 마당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므로 기됵교 교리가 성경에 상당 부분 어긋나 있는 현실에 당황해하거나 어떤 종류든 회의에 빠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당연지사로 여겨야 할 일이다. 

그리고 신대륙 발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아담 이후 인류가 바다 저너머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게 된 이유가 있으니 다시 말해 지구가 둥글다는 진실에 일찍이 눈뜨지 못했던 것은 사탄 곧 용(龍)이 그렇게 인간의 인식이 그 정도로만 되도록 한정시켜 놓았다 해도 하자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바다는 용이 그 몸을 숨기면서 즉 인간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유일의 무대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무지와 미신 속에서 한동안 가두어 두었다는 설명이 된다. "미신"이란 것은 바다에는 무서운 용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믿어 감히 바다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는 사실을 말함이다. 용의 실체는 사실이나 사탄이 아닌 별개의 기괴한 생물이 살았다는 것으로 믿게 만들었으므로 "미신"이라 한 것이다.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 사건 참조

그러나 알고보면 그런 용에 관한 것이나 또는 귀신을 섬기고 귀신의 조종을 받고 행해지는 무속과 같은 것이 이제는 "미신"으로 취급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니 그 정체가 실제로 파악되고 있는 까닭이다. 즉 악령들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용도 이제는 그 정체가 드러내어지고 있는 터라(사탄 자신은 또 어떤 거짓말과 속임수로 이 사실을 얼버무려 변명을 만들어낼지 모르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시대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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