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0일 일요일

말없이 선 봉우리야 네가 무엇을 우리에게 묵시(默示)하느냐-"둘이 하나됨의 축복"이로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나와의 '둘이 하나됨'의 이치가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의 이론처럼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ㅡ
실제 상황이 됨으로써 일상 삶으로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고는 일체가 무의미.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가 성령께서 임하시던 당일 우리의 성령 받음 즉
구원 받음을 가리켜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뵈웠음이여" 한(행 2:25) 
다윗의 성령 감동으로 말한 대목을 지적한 것은 아주 핵심을 짚은 것이다.
구원 받음은 그리스도와 매일 매시 말 그대로 함께 둘이 하나되어 사는 삶을
가리킴이니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심은 우리가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살전 5:10)이라 한 그대로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아중심으로 흐르기 쉽고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되지 못한다.
구원 받은 증거는 그리스도와 둘이 하나됨을 인하여 자기 부인으로 일관하고
따라서 머리를 모신 한 몸의 지체된 삶으로서 매일 자기 십자가 짐에 있음을
명심할 일이니 머리와 몸의 둘이 하나됨은 모든 지체된 이웃과 하나되는 의미로서
바로 이 이치를 따라 사람들을 구원해내고자 이 세상에 고난 받으며 남아 있음이다.
고난 받음으로써 사람들 구원해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 세상 몸 둘 이유가 없다.
우리의 삶은 범죄하기 전 아담의 초자연계 몸으로 누렸던 삶을 의미함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여전히 이 구차스럽고 초라하고 연약한 자연계 몸이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성경은 "우리가 죽었다"(골 3:3) 하였다. 

죽었으니까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가 된다(:3).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똑바로 걷는 우리의 정자세는 "죽은 자"로서의 위치다.
이 "죽은 자"로서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는 '산 자'라는 증거인 것이다. 
때문에 세상 삶의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죽은 것"(딤전 5:6)이라 정의했다. 
이 죽은 자의 자세ㅡ이것이 날마다 사형장으로 나아가는 사형수의 모습 곧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런 모습으로 앞서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의미다.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니고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하셨으니 명심할 일이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간다" 경고하신 뜻이다.

말씀 전달한 선지자 노릇, 귀신 쫓아내고 능력 행하는 등 아무리 화려한 경력이 있어도
이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는 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명심할 일이다(마 7:21-23).
오죽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다"(눅 13:24) 하셨을까!
이는 천국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런 현실을 적시하심이다.
왜냐면 "어렵다, 누가 가능하겠느냐" 하고 제자들이 놀라마지 않았을 때
"사람은 할 수 없되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눅 18:27)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둘의 하나됨이니 나는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힘쓰는 것이요 
나로서는 오직 "힘씀"(13:24)에 있지 그 힘쓴 결과로 이루어내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관심사이다. 주님의 몫이다. 작대기의 이끝은 나의 몫, 저끝은 주님 몫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항상 복종하기(빌 2:12)로 힘쓰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나 자신의 구원을 이룸"(:12)도 작대기의 이끝과 저끝으로 나누어지는 역할 분담이니
내가 이루기를 힘쓰면 주님도 함께 움직여주시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힘쓰는 정도까지 역할 분담해 주시는 것이 사랑과 구원의 양면성.
때문에 내가 주님 부인하면 주님도 부득불 나를 부인하실 수밖에 없게 된다(마 10:33).
말의 핵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힘쓰는 데에만(고후 5:9/고전 7:32)
주력(注力)을 하라는 것이니 그것이 오직 나의 할 일인 것이다.
그 결과 여부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왜냐면 내가 주님과 둘이 하나되어 있기 때문.

그래서 이 둘이 하나되어 있는 관계 다시 말해 나는 주님 보고 주님은 나를 보시고
나는 주님을 위해서만 모든 삶의 기력, 정력을 다하고 
주님은 오직 나만을(당신 자신을 위하심 없이) 위해 그렇게 하시는 사실을
상징적인 그림으로 나타내어 항상 마음 가운데 각인시킬 것이 없는가 하여
찾다가 발견하여 올려놓은 것이니 부디 우리 모두 그리스도 의식
(Christ-consciousness)으로 일관되게 이생의 나그네 길 달음질에 임할진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들이 수고함으로(둘로서의 적절한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임이니
혹시 저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는 것이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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