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9일 일요일

속아 산 세상, 속고 있는 세상 인생들 (4)



오늘날 성경과 어긋나는 모든 기이한 현상, 초능력, 별의 별 것들이 다 나타나도 한 마디로 악령들의 짓거리로 치부해버리면 아주 간단하다. 마음 편하고 신경 쓰거나 휘둘릴 이유가 없다. 정보 전달 매체가 발달하여(이는 이 마지막 때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한 정지 작업) 악령들이 벌이는 갖가지 초능력이 "youtube" 등 각종 동영상(물론 사리 분별력 없는 하릴없는 인생들에 의한 사진/동영상 조작도 숱하지만)을 통해 순식간에 세상에 유포되는 시대다. 적 그리스도가 자기 선전을 할 수 있는 최대의 발판이 이와 같이 이미 닦아져 있는 것. 그런즉 모든 요란스러운 것들이 기승을 부림은 인생들의 넋을 빼놓으려는 악령들의 획책이라 단정, 일소에 부치고 오직 우리는 그런 모든 속임수의 혼란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일 일이다.

영물들이 온갖 초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나 우리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밖에 인식될 것이 없다. 성경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신적(神的) 권위로 착각,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경이 그 자체로 비쳐지겠지만.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것이 악령의 소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성경으로 지적해주고 우리의 생명이신 마지막 아담으로써 다시 나고 새로 창조되는 유일한 사람 사는 길만 전달하기 위해 노심초사 기도하여 인도하심을 받은 대로 말씀을 전달할 일이다. 그런 악령의 초능력이 나타나는 비디오의 예를 하나 들면, "elf"(꼬마 요정 또는 요정ㅡfairy, goblin 등)라는 것이 있어 서양 동화에 가끔 나오는데 옛적부터 그런 것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 오늘날 확인됨을 알 수 있다.

아래 비디오에서, elf가 두 번 나타나는 것(1차 나타날 때는 반신, 2차로 나타날 때는 그보다 더 약하게)을 볼 수 있는데, 필자가 왜 이 비디오를 조작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보는가 하면, 2차로 나타나는 직후 번쩍 하는 섬광(약하기는 하지만)을 순식간에 내비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섬광은 인간의 조작일 수가 없다. 조작하는 자가 그런 것을 삽입해 넣을 정도로 악령들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사안이 워낙 보통의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악한 악령(귀신이 아닌)과 관련된 일이므로 이런 영들은 이런 섬광 즉 번쩍 하는 빛과 대개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귀신이 요술이 아니고 악령의 변신술에 해당된다. 

바로 아래의 동영상에 나타나고 있다. elf와 마찬가지로 merman(남자), mermaid(여)라는 것도 옛부터 인어(人魚)라 하여 나타난 모양이나(오늘에 와서는 동영상을 통해 더 극성을 부리는 듯) 모두 인생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악령들의 짓거리인즉 일소에 부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악령들은 그런 인체-동물(물고기) 로봇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룩한 천사들이 나타내는 각종 기적과 동일한 초능력이니(같은 영물들로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악령"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어 뚤뚤 말아 내동댕이쳐 버리면 간단히 끝난다. 인간도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단계인데 악령이야 더욱 정교한 것을 만들고도 남는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k5x6CSOIaM

https://www.youtube.com/watch?v=4edinafjGQo

인간의 죽음을 희석시키려는 악령들의 음모요 흉계 중에 인간 형태의 소위 "외계인"의 사체(死體)를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나타내려는 꿍꿍이가 무엇이냐 하면,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의 그러한 존재들도 죽는 판인데 인간의 죽음이라고 해서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냐 하는 따위다. 즉 범죄로 인간 사망이 왔다는 성경적 사실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인체 로봇이지 인간이 아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아 태어나는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이중 구조임을 명심할 일이다. 인체 로봇은 영혼이 없는 자연계 짐승과 같은 단지 육체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 것이다. 영물을 "신"(고후 4:4)이라고 했듯이 창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초능력이 가능하다고 처음부터 인정하고 일괄 치부해버리면 간단한 일이다. 각종 괴이 현상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초능력이라고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하나님은 자연계와 초자연계라는 양 세계를 만드셨고 각 세계에 소속된 피조물을 만드셨음을 알아야 하며, 초자연계 소속의 피조물은 자연계에 속한 우리가 보기에는  초능력의 일을 식은 죽 먹듯이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 과거 구약시대에 나타내어진 각종 기적도 거룩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뜻을 좇아 행한 것임과,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허락 아래(살후 2:11,12) 자행되고 있고 장차 더욱 그러할 악령들의 모든 초능력이 과거 천사들이 행한 것 이상으로 나타나지더라도(왜냐면 거짓 것이 포함되므로, 거짓말이 당장에는 드러나지 않고 얼마든 부풀어지는 것처럼 거짓 기적 역시 그러하므로) 결단코 놀랄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고도 당장이라도 그런 기적이 나타나면 거기 완전히 넘어갈 이들이 많을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는지 아닌지 알게 된다고 확언해주신 것처럼(요 7:17),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살전 4:1/엡 5:10/고전 7:32) 마음이 없는 데에서 이런 모든 혼동스러움은 기인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없으므로, 바울이 충성된 종으로서 교회를 위해 절절한 심정으로 "나와 같이 혼자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고전 7:40)는 충고를 받들어 동일한 충정을 설교 교단에서 피력하는 일도 없고 스스로 마음에 두는 자도 없는 오늘의 현실이니, 바로 이 모든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사랑이 없는)은 이제부터는 가차없이 도태당하게 마련인즉 크게 각성할 일이다. 물론 성경은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또 결혼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남녀 불문하고 "나의 동정(virginity)을 내 스스로 지킬 수 있는가" 여부는 자문자답해보아야 옳고 또 지킬 수 있으면 지키도록 피차간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이런 것이 지금까지 사문화(死文化)되어 온 것이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없이 무조건 인간은 결혼해야만 한다는 한 가지 관념 외에는 없었으니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32)는 마음의 실종이 문제임을 지금 지적하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임박한 환난"(:26)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사랑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고 생명은 사랑이 핵심이므로(둘이 하나됨 즉 한 몸됨에서 최대의 행복이 보장되어) 사랑하지 않는 자 즉 자아중심을 회개하여 버리지 않는 한 생명 아닌 멸망이 영원히 자기 몫에 태일 수밖에 없는 것. 주님 사랑이 아닌 세상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모순되는 일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 사랑을 믿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영생 및 행복과는 격리)의 상태에 동참하시어 그래서 하나됨을 통해 나를 다시 살리시려(행복하게 영원히 살도록)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이 아닌가. 그 이상으로 큰 사랑은 없다(요 15:13).

그러면 되었지 그 이상으로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무반응인가. "너만 날 사랑해라, 나는 사랑 않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마다 않겠지만, 나는 너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한다면 그런 파렴치가 어디 있는가.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가고 있다. 소위 "믿는다"는 사람들까지. 상식 차원에서 이해할 일이건만 이 상식을 무시한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사랑만 받겠단다. 머리만 사랑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몸(머리와 몸)의 이치에서 이 사랑 없음은 반드시 몸의 다른 지체와도 연관된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에덴낙원에서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이다. 이것까지도 상식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단순 명료한 것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리고 무식해도 다 이해할 수 있고 "말씀으로", "믿음으로"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이해 못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그 사랑을 거부할 따름이다. 자아중심이기 때문. 네 혼자만 일방적으로 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자아중심의 한정 없는 욕심이다.

욕심이 자아중심인 것이다. 자기가 머리요 몸이요 우주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창조자라는 뜻이다. 이런 황당한 사고방식으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 때문이다. 나를 비우고 버림으로 자기 부인을 하면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고집이요 교만 때문이다. 사탄은 시험하는 자가 아무도 없어도 그리 된 것과 마찬가지다. 고로 시험해서 내가 넘어가는 것이라기보다 내 스스로 그런 마음이 되어 그 시험에 동조하는 것도 동시에 작용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도 진리를 알기 위해서도 읽지만(믿음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경우) 성경을 사랑하기 때문에 즉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지금까지 알지 못한 것을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함도 말씀 사랑으로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성경과 친숙하지 않은 탓이다. 세상 사랑,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한 것이다. 범을 피하려다가 만나는 것이 곰이다. 이것이 세상이다.

생명 곧 사람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가도 죽음, 저기 가도 죽음, 만나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단지 생명으로 착각하는 것뿐이다. 살고자 하여 피하여 가도 거기 버티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 사탄이요 저기 가도 버티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신인 마귀뿐이다. 이것이 "이 세상의 신", "임금"(성경에서 명시하는 대로)이 마귀라는 의미다.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직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그들을 호령하고 명령할 수 있다. 이렇게 사탄을 질타할(마 16:23/4:10) 수 있는 위치는 사탄의 영역인 이 세상 부귀 권세의 자리가(눅 4:5-7) 아니다. 십자가의 남은 고난 중에 계신(그 몸된 교회를 통해) 마지막 아담의 위치에서다.

이 차이를 혼동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이 너무나 많다. 왜냐면 하나님 편에 서야 그들을 제압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인생들과 함께 하나되심으로써 고난 중에 계시기 때문이다. 머리되시는 하나님이 그러하시니 그 몸된 모든 피조물이 당연히 그러하다(롬 8:22). 거룩한 천사들도 악령들도 모두 그러하다. 오직 눈이 가려진 인생들만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실상에 대한 무지로 인해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뿐이다. 회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 피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니,  목적이 그것이므로 온갖 죄를 지으면서까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 이들 거의 대부분이 이 살고자 함, 세상 사랑에 마음이 가 있다. 로마 7장과 대조적인 고전 7장을 보라. 물건을 매입해도 매입하지 않은 것같이 세상 물건을 써도 다 쓰지 못하는 것같이 아내/남편이 있어도 없는 것같이 하는 데에서는 세상을 하나의 실체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대하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실체는 다음 차례로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지금은 아니다.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도 생명으로 나타나는 것도 지금은 아니다. 맛만 보는 것뿐이다. 본격적으로 그 실체를 생명이면 생명, 죽음이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먹고 마시는 때가 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3위1체의 원리가 가르치는 a(갑), b(을) 양자(兩者)의 도치성(倒置性)이다. 상반되는 성질끼리의 하나로서의 조화 통일이다. 

이와 같이 a(甲)만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b(乙)로 뒤바꿔지는 것이 c(丙)이다. 즉 하나됨이니 이런 하나됨이 없으면 '이 세상' 다음에 '오는 세상'이 올 리가 없다. 왜냐면 하나로서의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처음에는 생명이었고 죽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처음에는 a 곧 영생뿐이었으나 죽음이 중간에 생긴(범죄로 인해) 것이니 이것이 b이다. 그래서 a가 있으니 b가 있고 b가 있으니 a가 있게 됨으로 인하여 양면 세계로 영원히 대립되는 것(c)이다. 곧 3위1체 원리의 인과율이다. 불교는 인과율로써 환생, 윤회를 설명하려 하나, 현세 즉 일체의 만물 만상이 결과인데도 그 원인을 부정하니 처음부터 첫 단추 잘못 끼운 것임이 드러나고 따라서 거짓이요 이 거짓의 배후가 사탄의 속임수임을 오늘날 만천하에 드러나지고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우리가 DPA pix 등 악령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악령들과 그들의 초능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추호도 동요하지 말라는 데에 있다.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 온갖 해답이 있는 줄 모르고 기문(奇聞)괴담(怪談)에 현혹되고 있는 것이다. 초자연계 존재들을 다스리는 초자연계 존재였던 인간(아담)이 범죄의 결과로서 서열이 거꾸로 되어 악령들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나와 이웃하는 것은 인간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들 곧 악령들과 귀신(네피림의 죽은 넋)들이니 이들과 더불어 몸을 맞대다시피 하여 이 짧은 세월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자유인으로서가 아닌 일방적 노예로서의 종살이다.

거룩한 천사들은 악령들처럼 이 세상에 나돌아다니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만 "오르락내리락"(요 1:51) 분주히 전광석화로(번개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래 비디오에 보면 천사라고 하면서 둘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창밖 평평한 지붕 위를 그 중 하나가 거닐고 있는데 완전히 나체의 여자이고 다른 하나는 긴 나팔 같은 것을 입에 물었는지 오른손에 들었는지 잠시 허공에 서성이는 형상이다. 그러다가 몇 초만에 함께 사라지는데 사람의 조작으로 이런 현상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koFUHXnEmQ

인생은 다음 둘 중 하나로서 ①악령들과는 피 터지게 싸워야(히 12:4) 하는 것이며 ②아니라면 그 장중에 완전히 사로잡혀 꼼짝없이 오갈 데 없이 그들의 의중에 놀아나는 한낱 꼭두각시임을 통절히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 의지'는 있어도 절대로 '자유'는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과 마지막 아담을 믿고 안믿을 자유는 있으나 마지막 아담 안에 있지 않는 한에는 그 어떤 자유도 존재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인간들 중에는 네피림(악령들이 퍼뜨린 인간 별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변장한 악령들도 무수히 섞여 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인간으로 변신하여 나돌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는 데에 있다. 물론 동물로도 변신하여 사람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모든 일에 능수 능란하니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들의 수중에 인간이 놀아난다는 말이 가능하랴. 이를 제압하는 것은 오직 마지막 아담(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밖에 없으니 이를 매순간 실감하는 다시 말해 "성령 충만"(엡 5:18), 말씀 충만한 그리스도 사람의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처럼 성령(마지막 아담) 충만한 감독(장로), 집사, 성인(聖人, saints)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했다고 했을 때의 "성령"은 물론 아버지의 영이시고 그리스도께서 "성령 충만하셨다"는 표현 역시 아버지의 영을 가리킴인 것. 그리스도의 영께서도 물론 "성령"으로 호칭되시나 이런 경우에는 아들과 함께 하나로 계시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

"내가 네 행위를 알거니와 네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칠 것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네게 충고하니와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을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계 3:15-22).

이것 아니면 저것이요 저것 아니면 이것이지 어중간한 어정쩡한 것은 이제는 용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반드시 마귀에게 사로잡힐 것이요 그렇지 않으려거든 성령 충만할 것이다. 그리스도 충만은 그리스도를 항상 의식함이니 사랑은 항상 생각함이기 때문이다. 재차 강조하거니와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으로 그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의식(자기 위주 즉 자아중심)이 아닌 그리스도 의식(그리스도 위주, 중심)이다. 두 의식이 함께 공존하지는 못한다. 3위1체 원리에서 갑은 을의식, 을은 갑의식으로 분류되는 까닭이다. 이는 당연하니 갑은 을을 위함으로써 을은 갑을 위함으로써 둘은 불가분의 하나를 이루어 있는 까닭이다.


"더러운 귀신"이라 하신 것은 그 근본이 더럽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양성(兩性) 교접에서 생겨난 것이면 "더럽다"고 하실 리 없다. 악해서라면 "악하다"는 뜻으로 "악령"이라 하시면 되는 일이므로 "더럽다"고는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정해진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이니 깨끗하므로 더럽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더럽다"고 하셨으므로 욕심에 의해 불법적으로 저지른 악행에 의해 생겨난 존재이기에 그러하다. 인간의 정상적인 남녀 성행위에서 오는 유출물 또는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자식들을 모세 율법에 "부정(不淨)하다" 하셨으니 같은 이유다.

여아(女兒)는 남아보다 곱절이나 부정하다 하신 것을 보면 그리고 주검(corpse)을 부정하다 하신 것을 보아도, 초자연계 몸으로서 생산된 자녀라면 이런 표현이 없었을 것이나 범죄 결과 자연계에 속한 육체가 되면서 생산되는 자식들이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로 이 경우에만 인간이 낳은 자녀가 부정하다 하셨지 그 외 여하한 경우에도(인간의 영이든 육체든) 이를 가리켜 "더럽다"고 하시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계의 초능력은 세상이 온갖 구실과 핑계를 대며 믿지 않더니 이제 와서 악령들의 초능력은 믿기 바쁘게 될 전망이다. 같은 영물들의 초능력이니, 성경의 여러 기적들은 거룩한 천사들이 나타내었고 지금 와서 소위 "외계인 운운" 하면서 나타내는 것과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은 악령들의 소행이다. 인간을 속이기 위한 것인데다 가장해서 나타내니 더 "요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 규모가 크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더 엄청난 대대적인 "기적 행함"이 된다. 그러므로 기적 그 자체만으로써 평가하거나 판단하게 되어 있는 시대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초능력은 말 그대로 초자연계에 속한 능력으로서 자연계에 속한 인간의 문명 발달이나 "진화"의 소산이 아니다. 자연계에 속한 것은 억만년을 가더라도 초자연계에 속한 초능력은 나타내지 못한다. 초능력은 초자연계에 속한 것이다. 3위1체의 원리가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대립(대칭, 상칭) 원리로 갈라놓는 것을 중요하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소위 "외계인 운운" 하면서 나타내는 악령들의 기만술은 초자연계에 속한 초능력 즉 성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기적의 영역이다.

"기적, 이적, 표적"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또 자연계에 속한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보여졌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하는 것이 그 초능력의 특징 중 하나로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다. 레이더에 잡혀졌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같은 초능력인 것이다. 초능력은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순식간에 넘나들면서 그런 조화를 부린다. 자연계에 한정된 힘은 그런 변화를 부리지 못한다. 이 차이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소위 "외계인"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 3위1체의 원리다. 자연계에 속한 존재는 절대로 초자연계 존재로 스스로 변환될 수 없다. 그러나 초자연게 존재는 얼마든 마음 먹으면 자연계 존재가 될 수 있다. 자연계의 존재가 진화하면 그런 초자연계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악령들의 속임수다. 3위1체 원리로 말하면 가능과 불가능의 대칭 체계이므로 그런 주장이 속임수요 거짓말임을 폭로시키는 것이다. 

은하계 저너머 우주 끝까지 가더라도 자연계 일색일 뿐이다. 초자연계는 티끌만치도 포함되지 않는다. 우주가 방대해서 그 전체가 보이지 않아 볼 수 없는 것뿐이지 속성상 보이지 않는 초자연계와는 차원부터가 다르다. 자연계와 초자연계는 완전한 별개의 세계다. 자연계 인간이 초자연계 존재가 될 수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창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연계 존재로 창조하셨다가 영생하는 존재 즉 초자연계 인간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은 창조 행위가 되신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엄청난 모순이 되는 것이니 왜냐면 창조가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끝났다 선언하시고 이미 만족스러워 "보시기에 좋았다"로 결론 났기 때문이다. 이런 창조의 연속은 구원도 구속도 될 수 없고 더더군다나 "은혜"는 더욱 될 수 없게 된다. 왜냐면 처음에 인간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불찰로 밖에는 해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초자연계 존재였다는 결론밖에 없다. 먹지 말라 주의를 주신 선약과를 먹음으로써 범죄하여 자연계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애초의 그 초자연계 속성의 초능력 육체가 되어 영생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 창조를 통해서만 되는 일이니, 진화하여 되는 일이 아니다. 초자연계인 에덴낙원의 동식물이, 6일 창조에서와 같은 하루 이틀 세어 간 것과 같이 창조된 것은(제3일에 식물, 제4일에 바다 생물과 날짐승 식으로) 아님과 같다. 왜냐면 창조(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차원에서의 생물의 진화는 제6일째로서 완결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료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새 창조(재 출생에 의한)는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그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영접하는 자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더 이상 "진화"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진화를 갖다 붙이는 것은 인생들을 농락하는 악령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3위1체의 원리는,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가름하여 자연계는 초자연계를 넘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초자연계만은, '가능성과 불가능성', '강함과 약함' 등과 같은 정반대되는 성질로 나누어져 있음과 같은 의미로서 자연계와 대칭(대립, 양립)되어 있으므로, 초자연계 존재는 자연계 존재로 얼마든 스스로를 변환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계 존재는 절대로 불가능함을 앞에서도 지적했다. 인간이 오늘날 구원 받아 영생하게 되는 것은 처음에 초자연계 육체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초자연계 존재가 될 수 없고 영생도 따라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령들이 스스로를 변장시켜 또는 인체 등 각종 생체 로봇을 만들어 활용함으로써 인생들을 속이고 있는 소위 "외계인"의 초능력은 초자연계에 속하기 때문에 가능한즉 그들은 당연히 초자연계 존재들이요 따라서 그런 초자연계 존재들이 자연계에 속한 우주 어느 성단(星團)에서 왔고 거기가 그들의 "본거지 운운" 하며 능글맞게 너스레 떨며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연극에 불과할 뿐임이 드러나니 소가 웃을 일이다. 바울 사도는 3층천에 갔다 왔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그 3층천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어쨌든 거기는 초자연계인 것이다.

3위1체의 원리는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자연계 존재로 자처하면서 자연계인 천체에서 왔다는 등의 말을 감히 입밖에 내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이 거짓이요 악령들 자신의 변장으로 가능해지는 대규모 속임수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우주 교신, 운운" 하는 것도 무지한 인생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소설이요 농락일 뿐이다. "crop circle" 비디오에 보면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소위 "기(氣)"를 쐰다고 하여 벌렁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진실을 모르니까 대담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악령들이 거기에다 사람에게 해로운 무엇을 뿜거나 풀어놓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인간을 해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 즉 영원 멸망에 있을 뿐이다. 오직 문제는 그 악령들의 말을 듣고 진실처럼 착각하는 데에 있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멸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에덴낙원이 영계 곧 초자연계였다는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드러난다. 이러한 실상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소행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속절없이 그 초능력에 혹하여 넘어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자연계 동식물의 대칭 구도로 초자연계의 동식물도 만드신 사실을 알아야 함이니, 식물(선악과 나무, 생명나무 등)이 그러하니 동물(각종 영물로서의 천사나 악령)도 그러하며, 인간은 양세계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자로서 양 세계에 속해야 하는 필연성에서 그 자체적 구조가 그런 대칭형으로서의 이중성을 띠고 있는 바 곧 영혼과 육체이다.

초차연계 존재는 초자연계에서 나오는 법. 다시 말해 에덴낙원이 바로 그런 영물들(천사든 악령이든)의 본거지인 것이다. 그러나 악령들은 천사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다시는 그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영구 추방된 것이다. 그러니 그 소위 "외계인들"의 연원지로서 초자연계를 말하기는 불가능하고(말한다고 해도 인생이 초자연계에 대해서는 깜깜 무지가 되도록 그동안 닦달해 왔으므로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즉 이런 점에서는 악령들 자신도 자승자박인 셈) 그래서 부득불 자연계에 불과한 우주 어느 곳이라는 둥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점이 그들 자신의 기만 행위를 스스로 폭로시키는 결과의 모순점이 된다.

바로 이러한 모순을 가차없이 노정시키고 있는 것이 이상 설명대로의 3위1체의 원리이다. 즉 초자연계 존재는 초자연계가 그 근원으로서 성경에 말하는 "하늘"이요("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늘 나라", "하늘의 하나님"-창 24:3 등ㅡ물론 천공[天空]이라는 말에도 쓰이기는 하지만) 자연계 존재는 자연계에 속한 이 우주가 그 근본 바탕이다. 고로 인간을 속이는 악령들이 소위 "외계인"들을 자연계 초월의 초능력을 행사하는 자들로 설정하면서도 자연계일 뿐인 이 우주 어느 곳을 그들의 세계로 지정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소가 웃을" 넌센스라 한 것이다.

3위1체의 원리로써 다루어지는 갑, 을, 병 3각(tripod) 구도에서 갑과 을은 절대로 혼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이 하나라는(갑과 을로서의 엄정 엄격한 둘이지만 하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갑도 을도 아닌 병으로써만 자신을 나타내는) 3자 구도에서만 만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재(混在)하여 섞일 수는 있어도 그 둘이 융합(혼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악령 사탄은 이렇게 황당무계의 되지도 않은 이치로 인간을 속이려 하는 것이니 무조건 초능력 앞에서는 인간이 쪽을 못쓴다는 약점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초능력 앞에서는 인간의 이지도 지성도 거의 불가항력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직 이상 설명한 것과 같은 3위1체 원리의 이치를 따라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경우에만 이러한 대대적인 속임수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초자연계 존재가 자연계에 속한 육체의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초자연계 역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것과 아무리 가까운 지척에 있다 해도 속성상 보이지 않는 것과의 구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식적 판단도 초능력으로 눈을 흐려 놓을 때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그 뜻이다. 단 참고할 것은, 동물의 눈에는 이러한 불가시적 초자연계 존재가 카메라 렌즈의 눈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런 불가시적 존재는, 그들 스스로를 인간에게 나타내 보이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조정해야만 비로소 인간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볼 수가 없다. 정상적인 자연계 육체인 동물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에 ufo가 나타날 때 말이나 개 등 동물은 보고 그 정체를 육감으로 아는 까닭에 거의 발광 수준에 이를 정도로 비명을 지르거나 날뛰기까지 하나, 인간은 원래가 자연계에 속한 것이 아니고 초자연계 육체로 있다가 범죄로 이 자연계 몸으로 환원(애초에는 자연계에 속한 흙으로 조성되었다가 초자연계인 에덴낙원에 들어가 초자연계 몸으로 변환되었으므로)되어 버린 까닭에 동물들의 감식력(초자연계 존재를 인식하는)만도 못한 것이다. 왜냐면 정상으로부터 비정상으로 전락한 때문이다. 인체가 병들면 그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과 같은 이치다. 


자연계 존재가 진화하여 초자연계 존재 또는초능력을 나타내게 된다고 하는 것이 악령들의 주장인데, 이런 망상 또는 거짓말을 3위1체의 원리가 분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양 세계는 존재해 왔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과 관계에서 어느 것이 먼저냐 할 때 자연계를 먼저 만드시고 에덴낙원이 창설되었으나, 이 에덴낙원 자체로 말하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에덴의 동편에 동산을 지으신 것이므로 서로 교차하게 된다.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는 동시성과 양면성에 따른다. 창조된 순서는 자연계적 요소가 먼저이나 창조의 바탕이 되어 있는 본질에서는 초자연계가 먼저다. 그래서 초자연계인 에덴낙원에 들어감으로써 자연계 육체의 인간은 초자연계 존재가 된다. 이미 영혼은 초자연계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실종자가 매년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 악령들은 3운법칙에 의해 죽음으로 종결될 시점에 와 있는 사람들을 이와 같이 납치해 가서 인체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오래 전 대구의 개구리 소년들 실종 사건도 이 악령들의 유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3운법칙상 똑같은 해에 사망하기로 작정되어 있는 소년들끼리 그렇게 모여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 인간은 톱니바퀴처럼 한 치 오차 없이 돌아가는 정밀한 우주 그 자체라 하는 것이다. 아니 우주보다도 더 엄정한 치밀성으로 운용되는 것이 인간 세계의 우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