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2일 목요일

통합 복음 (6)







(눅 16:25) '아브라함'이 말했다.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는다. (눅 16:26) 이뿐 아니라, 너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에게 건너가고자 하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눅 16:27) '그러면 아버지(조상님), 간청하오니. '나사로'를 제 아버지의 집에 보내 주십시오. (눅 16:28) 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해서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눅 16:29) '아브라함'이 말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것이다'. (눅 16:30)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아버지(조상님), 만일 죽은 자들로부터 누가 그들에게 간다면 회개할 것입니다'. (눅 16:31) 이에 말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이가 있어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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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註-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느냐"(히 1:9) 아니면 "불의를 좋아하느냐"(살후 2:12) 하는 것으로 가름되어지는 일이지,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가 미약하거나 부족해서 또는 그 증거를 믿을 수가 없어서 혹은 영생이나 영원한 형벌이 입증되지 않아서 못믿는 것이 아님이 여기서 밝혀진다. 그런 모든 것은 회개하지 않는 한낱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을 구했을 때(마 16:1)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눅 11:29)고 하신 것이다. 죽은 부자의 말과 같이, 죽은 자가 살아나 자기가 실제 죽어보고 그 실상을 알려 주는데 누가 믿지 않겠는가 하고 간단히 생각들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에게 회개하기를 명령하시는(행 17:30) 이유 즉 그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죽으셨다는 특정 사실을 믿으라는 것에 앞서, 하나님을 알았으니 그 뜻을 따라 불의를 버리고 이제는 의를 사랑하여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되어 있는 '한 몸의 체제'에서 머리되시는 하나님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받들고 그리하여 함께 지체들이 되어 있는 자기 이웃을 위해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따라서 우리의 구원 얻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가리킨다.

이 순종은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은 마음의 영역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 의지를 확실히 보장 받은 이상 자유로이 마음을 쓸 수 있어 얼마든지 우리 마음을 스스로 변할 수가 있기에, "항상 복종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각자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머리되시는 하나님을 위해서만 오직 살도록 하려 하심이다(고후 5:15/롬 14;7-9).

"두렵고 떠는" 이유는 아담이 선례가 되어 있고 사단 등 악령들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다 처음에는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으나 중간에 그들 스스로 마음을 바꾼 결과로 저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어 있음이다. 그러므로 죽도록 (불의를 따르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고 그 어떤 고난의 대가가 따른다고 해도) 불의를 미워하고, 그래서 죽는 한이 나고 그 어떤 고난을 무릅써서라도 의를 사랑하겠다는 결의가 없는 한 회개는 한 마디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고(고전 2:9/약 2:5/1:12), 성령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행 5:32/히 5:8) 성경은 처음부터 못박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구원인데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하나가 되지 못하므로 구원 자체가 불가능이다. 그리스도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심으로써 그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까닭이다.

참으로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회개하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영생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영생이나(요 3:16)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6:44,65). 친히 하신 말씀대로 "진리를 따르는 자"(3:21)만이 그리스도께 올 수 있다. 진리를 따르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여"(히 1:9) "불의를 좋아하지 않는"(살후 2:12) 것을 말함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 빛을 미워하기"(:19,20) 때문에 그리스도께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이와 같이 믿지 않음을 인하여 "이미 심판을 받은"(:18) 것이라 하셨다. "내가 심판하려고 세상에 왔다"(9:39) 하심과 같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7) 하셨지만 엄정한 양면성이다.

즉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처음 소개한 그대로 '구원자'이심과 동시에 '심판자(재판장)'이시다(눅 3:16,17). 바울은 이 '심판자'이심을 '구원자'라는 측면보다 더 강조했으니 왜냐면 "하나님의 명령"은 "믿으라" 하기 앞서 "회개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행 17:30). 구원자라는 측면은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심판자로서의 의미는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 각각 양 갈래로 해당되는 의미다.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심과 똑같이 "소멸하는 불"(히 12:29)이심과 같은 한결같은 양면성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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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익한 종"

(눅 17:7) 또 말씀하셨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서 앉아서 먹으라' 할 이가 있느냐. (눅 17:8) 도리어 그에게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 17:9) 명한 대로 했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말하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으로서 우리의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 일이다".

문둥병자 열 명

(눅 17: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 17: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눅 17:13)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예수 선생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니 (눅 17:14) 이에 보시고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들이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은 줄 스스로 알았다. (눅 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사례하니 그는 '사마리아'인이었다. (눅 17:17)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이가 없느냐" 하시고 (눅 17:19)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다.

"제3일에 살아날 것이다"

(마 20:17)(막 10:3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였다.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자기의 당할 일을 말씀하시기를, (눅 18:31)(마 20:18)(막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이제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할 것이다. (눅 18:32)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지면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마 20:19)(막 10:34)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침 뱉으며 조롱하며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여 죽일 것이나 (눅 18:33) 그는 3일만에 살아날 것이다" 하시나, (눅 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어졌으므로 그들이 그 말씀하신 바를 알지 못함이었다. ((막 9:30)(눅 9:43)(마 17:22)에도 이상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음-註).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

(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막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 여쭙기를, "선생님, 무엇이든지 저희의 구하는 바를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니) (마 20:21)(막 10:3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원하느냐?". 말하기를, "저의 이 두 아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주님의 좌편에 앉도록 분부해 주십시오". (막 10:37) "주님의 영광 중에서 저희를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마태는 그들의 모친이 와서 그렇게 구했다 하고 마가는 그들 직접 그렇게 구했다고 적고 있다-註).

(마 20:22)(막 10:38)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막 10:39) 그들이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 20:23)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과연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막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다.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다".

(마 20:24)(막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하게 생각하니 (마 20:25)(막 10:4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권력자들이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막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이가 되고 (마 20:27)(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 20:28)(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다". (같은 내용의 말씀을 '누가'는 그 다른 경우를 들어 기록하고 있는 바 제자들이 그런 다툼을 또 벌인 듯한데 아래와 같다-註).

또 누가 크냐 하는 다툼

(눅 22:24) 또한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났으므로 (눅 22:2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시혜자(施惠者-benefactors)라 칭함을 받으나 (눅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으니 너희 중에 큰 이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다. (눅 22:27) 앉아서 먹는 이가 크냐, 섬기는 이가 크냐? 앉아 먹는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이로 너희 중에 있다.

소경 거지 '바디메오'

(눅 18:35)(막 10:46)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한 소경 곧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눅 18:36) 군중들이 지나가는 것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눅 18:37)(막 10:47)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님께서 지나신다" 하므로 (눅 18:38) 외쳐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였다.

(눅 18:39) 앞서 가는 (막 10:48)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나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선생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므로 (눅 18:40)(막 10:49)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 소경을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막 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가까이 달려 나아오므로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눅 18:41)(막 10:51)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말했다. "선생님(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눅 18:42)(막 10:5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아라(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구원하였다)" 하시니 (눅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르므로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삭개오'

(눅 19:1)예수님께서 '여리고' 시내를 지나가실 때 (눅 19:2)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세리(稅吏)들의 간부로서 부자였다. (눅 19:3)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여의치 않자, (눅 19:4) 앞서 달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게 될 뽕나무로 올라가 기다렸다. (눅 19:5)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자 쳐다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숙해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는데 (눅 19:7)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려 말하기를, "그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 하였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주님, 보십시오. 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며 뉘 것을 부당하게 징수한 일이 있으면 그 네 배나 갚으렵니다." (눅 19: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다.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다".

귀인(貴人)이 왕위를 받아

(눅 19:11)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 한 가지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생각했기 때문이다. (눅 19:12) "귀한 신분의 한 사람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눅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당시 '유대'인의 화폐 단위)를 주며 말하기를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였다. (눅 19:14)그런데 그 나라 사람이 그를 미워하여 사람을 뒤로 보내어 말하기를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합니다' 하였다.

(눅 19:15) 그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 은(銀ㅡ'므나'를 가리킴)을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눅 19:16) 그 첫째가 나아와 말했다. '주(인)님, 주님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눅 19:17)'주인이 말했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도시의 권세를 차지하라.' (눅 19:18) 둘째가 와서 말했다. '주님, 주님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습니다.' (눅 19:19) 주인이 그에게도 말했다. '너도 다섯 도시를 차지하라'.

(눅 19:20)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의 한 '므나'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수건으로 싸서 두었습니다. (눅 19:21) 이는 주님께서 엄한 분이신 것을 제가 무서워 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십니다'. (눅 19:22) 주인이 말했다.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는데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 알았더냐. (눅 19: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않았느냐. 그리했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까지 찾았을 것이다.'

(눅 19:24)그리고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사람에게 주라' 하자 (눅 19:25) 그들이 말하기를 '주님,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습니다' 하니 (눅 19:26) 주인이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무릇 있는 사람은 받겠고 없는 사람은 그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다. (눅 19:27) 그리고 나의 왕됨을 원치 않는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다."

한 달란트 받았던 이

(마태는 누가와 약간 달리 '므나' 대신 '달란트' 비유를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바, 이런 비유를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이 드러난다-註). (마 25:14) "(천국은)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5 달란트, 하나에게는 2 달란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마 25:16) 5 달란트 받은 이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5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2 달란트를 받은 이도 그 같이 하여 또 2 달란트를 남겼으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이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는데,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회계할 때 (마 25:20) 5 달란트 받았던 이는 5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님, 제게 5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십시오. 제가 또 5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마 25:21) 주인이 말하기를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길 터인즉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것이다' 하고 (마 25:22) 2 달란트 받았던 이도 와서 말하기를, '주님, 제게 2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십시오. 제가 또 2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말하기를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길 것이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것이다' 하였다.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이도 와서 말하기를, '주님, 당신께서는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제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당신의 것을 받으셨습니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取利, 돈을 빌려 주고 그 변리를 받음)하는 자들에게나 주었다가 내가 돌아오면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었다'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10 달란트 가진 이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이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이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소경 둘

(마 20:29)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군중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마 20:30)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말하기를,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선생님!" 하니 (마 20:31) 군중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나, "더욱 소리 질러 말하기를,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선생님!" 하므로 (마 20:32)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마 20:33)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말하기를, "주님, 저희가 눈 뜨기를 원합니다". (마 20:34)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셔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도 예수님을 따랐다.

부자 청년

(막 10:17)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눅 18:18)(마 19:16) 어떤 관원(관리)이 달려와 꿇어 앉아 물었다. "선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마 19:17) (눅 18:19)(막 10: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다). (눅 18:20)(막 10:19) 네가 계명을 아니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말하기를, "어느 계명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마 19:20) 청년이 말하기를, (눅 18:21)(막 10:20) "선생님, 이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지켰으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막 10:21)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눅 18:22)(마 19:21)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완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寶貨, treasure)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 10:22)(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큰 부자인 고로)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심히 근심하며 갔다. ((눅 18:23)심히 근심하였다).

(눅 18:24) 저를 보시고 ((막 10:23)(마 19:23) 예수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얘들아(children)!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천국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막 10:25)(마 19:24)(눅 18:25)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재산(재물)이 있는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마 19:25)(막 10:26)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서로 말하기를, "그러니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눅 18:26) (눅 18:27)(막 10:24)(마 19:26)(막 10:27)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다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마 19:27)(막 10:28)(눅 18:28)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보시는 대로 저희는 저희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막 10:29)(눅 18:29)(마 19: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이는 (막 10:30)(눅 18:30) 금세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토지를 백배나 (여러 배를)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상속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

(마 19:28)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막 10:31)(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이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이로서 먼저 될 사람이 많다.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 2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하루 품 삯에 해당하는 로마인의 당시 화폐 단위)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마 20:3) 또 제3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으므로 (마 20:4)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네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여러 분에게 상당하게 줄 것이다' 하니 그들이 갔다.

(마 20:5) 제6시와 제9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 20:6) 제11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으므로 (마 20:7) 말했다. "여러 분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소?". 말하기를,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 말하기를, "여러 분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였다('유대'인의 시간 계산법대로 낮을 12시간으로 나누어-註).

(마 20:8)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말하기를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이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사람까지 삯(일당)을 주라' 하니 (마 20:9) 제11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으니 (마 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다가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으므로 (마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 그들을 종일 수고하고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한다' 하였다.

(마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했다. '친구,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당신이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마 20:14) 당신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당신과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다. (마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당신이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된 이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이로서 나중될 것이다". (눅 19:28) 예수님께서 이상 모든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앞서서 가셨다.

유월절 6일 전

(요 12:1) 유월절 6일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었다. (요 12:2) 거기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 중에 있었다.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甘松香ㅡspikenard)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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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註-똑 같은 사건이 '마가'(막 14:3)와 '마태'(마 26:6)의 기록에도 나오는데 여기서 '요한'은 그 주인공이 '마르다'와 자매간인 '마리아'라 하고 '마태'와 '마가'는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요한'은 유월절 6일 전에 일어난 일이라 하고 '마태', '마가'는 2일 전에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 이 둘이 같은 인물이라 한다면 날짜를 '마태' 쪽에서 틀리게 기억했다 할 것이다. 왜냐면 '요한'은 젊기도 하거니와 기억력이 유별나게 뛰어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화산상에서의 주님의 변형 때만 해도 6일 그리고 8일로 서로 엇갈리고 있다).

'마가'는 혹 '마태'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하여 기록할 수도 있다. '요한'은 핀잔을 준 사람이 '가룟'사람 '유다'라 했고 '마태'와 '마가'는 어떤 사람들 또는 제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향품의 평가액을 300데나리온이라 추정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면 각기 다른 여자인가? '마리아'가 먼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흘 후 다른 여자가 '마리아'를 본따 같은 정도의 향품을 사다가 그렇게 했을까?

'마태'와 '마가'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행위를 대대에 기념하게 될 것이라 하셨으나 '요한'의 경우 그런 말씀이 없다. 만일 '마리아'의 경우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요한'은 절대로 그 말씀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대대로 그 여자를 기념하리라 하신 것은 반드시 그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라는 예수님의 의지가 강력히 표명되셨다는 점에서 나중에 요한이 당시 일을 회상하여 기록할 때 감히 그 분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와는 다른 여자가 역시 같은 일을 했다고 결론 짓고, 거기 대한 내용은 이로부터 나흘이 경과한 다음의 사건으로 순서를 매겨 순차적으로 수록하기로 한다. '마리아'의 경우는 평소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가족의 일원으로서 남매간인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큰 은혜를 입었으므로 어찌 보면 사은(謝恩)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 둘째 여인은 그런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지만 이 둘째 여인은 그 취한 행동이 다르다. 발이 아니라 머리에 부어드렸다. 그 정성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할까. 이 여자가 '마리아'든 아니든 어쨌든 마태와 마가는 기록하고 있으나 누가는 빠뜨렸고 요한은 '마리아'가 그렇게 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마가와 마태는 여자의 이름을 누구라고 밝히지 않고 단지 "한 여자" 즉 "웬 여자가 향유를 가지고 들어와서" 하는 투다.

곁들여 하는 말이지만,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그 사실을 빠뜨릴 정도의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 기록이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면 그럴까 하는 판단이 선다. 하기야 '나인'이라는 도시의 과부 아들을 살리신 것은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눅 7:11). 그러므로 대표적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죽은 많은 사람을 살리셨다고도 보아진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다.

이 역시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확실한 자체 증명이다. 거짓말로 꾸며댄 기록이라면 나사로의 기록을 그렇게 다 빼먹을 수 있겠는가. '누가'는 '나인'이란 도시의 과부 독자 살리신 일은 소개하고 있지만, 마태와 마가는 그런 사람 살리신 일은 아예 기록하려고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것 같다. 마태는 열 두 사도 중의 하나로 주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어도 그렇다. 주님 친히 부활하신 마당에, 그런 죽은 사람 살아난 것 일부러 기술해둘 중요성을 별달리 느끼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성경 기록이 거짓말이고 꾸며댄 것이라면, 과연 이럴 수 있겠는가? 거짓말하는 이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거짓말이요 속임수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나 주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렸다는 기적을 말하는 것이나 똑 같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꾸며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경우에는 주님의 부활이 가장 중요하지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입증된 이상 그 이전에 누구, 누구를 살리셨다는 것은 이야기하나 마나, 기록하나 마나가 되어 별 중요성을 느끼지 않는 법이다.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는 이런 점에 (성경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둥 허망한 생각을 말하는 이들은) 특별히 유념하기 바란다.

'누가', '마가', '마태' 중에서 '마태'는 그 모든 역사적 현장에 줄곧 주님을 따라다니며 직접 목도한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마태'가 이 "여자"가 그렇게 향유를 붓는 것을 회상하여 기록할 때는, 당연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여형제라는 것을 아는 터였다면 반드시 그 이름을 밝히거나, 밝히는 과정에서 "아차, 이것을 잊어버렸구나" 하고 '나사로'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부터 틀림없이 기록하여 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름커녕 '나사로'의 일에 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 이 여자는 '마태'가 모르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주님께서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 이 일이 알려져 기념하게 될 것이다" 하셨으니, 이것이 만일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 거짓말을 지어내는 이는 모든 복음서에도 똑 같이 그런 말을 수록해 넣어 진짜로 그렇게 말한 것처럼 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에 비록 그렇게 말씀하셨으나 '마태'는 기억하고 '요한'은 실제 그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린 것이다. 이 잊어 버렸다는 것 자체가 백마디 진실의 변명보다 더 강력한 진실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누가'도 일체 그 사건에 대해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예언적인 성격을 지니신 말씀임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그 모든 것이 진실이요, 거짓말이거나 꾸며댄 것이 아님을 또 한번 증명하는 것이다. 예언이므로 아무는 잊어 버리고 아무는 기억해내는 등 일사불란한 체계성(體系性)은 찾아볼 수 없으나, 어쨌든 '마태'는 그것을 기억하고 썼고 그리고 '마가'는 '마태'의 기록을 보고 참고했는지 아니면 '베드로' 같은 사도들의 증언을 수집해서 했는지는 모르나 역시 그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하되 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여자의 이름을 밝힐 정도가 아니라는 것은 그 여자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듣는 사람인데도 그 이름을 밝히지 못함은 그 여자에 대한 결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는 단지 귀로 흘려 듣는 것이었고 특별히 그 일을 심중에 둔 이는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만일 이것이 거짓말로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 정도의 거창한 의미를 지닌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그런 역할을 할 여자의 이름 하나도 지어내지 못하겠는가.

어쨌든 한 마디로 말해서 증언 그대로이지 그 누구도 이 기록에 대하여 인위적으로 가감하려고 하거나 손대지 않았다는 이 점이 중요하다. 이 모든 기록이 진실이지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거짓말이고 속임수라면 손을 여러 번 보고 꾸미고 닦고 다듬게 되어 있다. 거짓말이 본래 "꾸미는" 것이 아닌가. 고로 이왕 꾸미고 손 대는 것이니 더 잘 꾸미려 하고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니, 천하 없이 머리 좋은 사기꾼도 이런 자기 정체를 감출 수 없고 여과없이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그 여자의 이름이 밝혀지기를 명시하시지 않은 것은 그 행동을 기리시는 것이지 그 개인적인 영예를 중시하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야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이 소상하게 밝혀져 알아질 것이고 굳이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이 드러날 이유는 없는 것. 개인적인 명예가 중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랑이 기특한 것이니, 모든 것은 사랑이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예언의 측면을 들어 말하자면 한 가지가 더 있다. 또 하나의 그 유의할 사실은, '마리아'의 경우에서나 그 다른 여자의 경우에서나 똑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장사 지냄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신 점이다. 묘하게도 '마리아'는 발에 붓고 그 다른 여자는 머리에 향유를 붓는다. 주님 고난 받으신 다음 그 시신을 무덤에 둘 때 여자들이 향품과 향유를 주님께 바르기 위해 가져갔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시신에 바른다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바를 것이 아닌가. 바로 그 향유이다.

'마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님의 발에 부었고 그 다른 여자 역시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부은 것이다. 마치 그렇게 하도록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도를 받는 것처럼 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인간 사랑의 감성(感性)을 대표하는 여자가(그래서 그런 사랑으로 아기를 품 안에서 키우도록 정하신 것이지만) 우리들이 나타내어 마땅할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우리 주님을 장사 지내는 형국을 대표적으로 그 상징 속에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의 기록대로 하면 문맥상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계시면서 '마리아'가 그렇게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마태'와 '마가'의 경우 분명히 '시몬'의 집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300 '데나리온'"이라는 말도 그 다른 여자가 '마리아'에게 가서 물어보고 같은 양과 질의 향료를 사 가지고 왔을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그 후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가 성에서 나와서 다시 그 '베다니' 동네로 오셔서 '시몬'의 집에 묵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로 통할 수 있는 이웃 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마리아는 처음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칼로 씻을 때 "죄 있는 여자"였다(눅 7:37). 그러므로 마리아는 두 번 그렇게 향유를 붓고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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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님을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는가?" 하니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었다. (요 12:7)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 치를 날을 위하여 이를 간직하게 하라. (이 말씀대로 하면 이 여자가 그 때 주님께 부어 드린 향유를 일부 남겨 두어 나중에 주님 고난 받으신 후 무덤으로 여럿이 함께 갈 적에 가지고 간 향유일 듯도 하다-註)(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할 것이다".

(요 12:9) '유대'인의 큰 군중이 예수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었다. (요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요 12: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님을 믿음이었다.

(요 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니 많은 사람이 자기를 정결케 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요 11:56)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기를, "너희 생각에는 어떠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않겠느냐?" 하니 (요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누구든지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다.

'유대'로부터의 '예루살렘' (마지막) 방문

(요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군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기를, "호산나(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 찬송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하였다.

(요 12:14)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마 21: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요 12:15) 기록되기를,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실 것이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다' 하라' 한 그대로였다). (요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다.

(註-아래는 그 인용된 구약 본문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여라.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소리 질러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니 그는 공의(公義,正義)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시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이다"(슥 9:9-"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thy King cometh unto thee: he {is} just, and having salvation; lowly, and riding upon an ass, and upon a colt the foal of an ass").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오시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註). (막 11:1) (마 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눅 19:29) 감람원(園)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눅 19:30)(마 21:2)(막 11:2)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어 있는 것을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곧 볼 것인데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눅 19:31)(마 21:3)(막 1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이 쓰시겠다' 하라(누가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주님이 쓰시겠다'고 말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낼 것이다".

(눅 19:32)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들이) (막 11:4)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어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났으므로 나귀 새끼를 풀려고 하니 (눅 19:33)(막 11:5)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그 임자들이)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했다.

(막 11:6)(눅 19:34)(마 21:6)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하신 대로 하여 "주님께서 쓰시겠다" 대답하니 이에 허락하므로 (눅 19:35)(마 21:7)(막 1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께서 거기 오르시게 하니(겉옷을 그 위에 얹자 예수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눅 19:36) 가실 때에 (마 21:8) 군중들의 대부분은 ((막 11:8)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폈다.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

(눅 19: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데에까지 가까이 오시니 모든 제자들이 떼를 이루어 (막 11:9)(마 21:9) 또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군중들이 그들이 본 바 모든 능하신 일들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소리 질러 말하기를, (눅 19:3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신 분이시여! 찬송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다!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영광이여! (막 11:10) 복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하였다. 
(요 12: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군중들이 증언하였으므로 (요 12:18) 이에 군중들이 이 기적 행하심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온 것이다.

(눅 19:39) 군중 가운데 어떤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생님, 제자들을 좀 나무라셔야 하겠습니다" 하니 (눅 19:40) 이에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1) 가까이 오시자 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눅 19:42) "너 바로 네가, 너의 이 날을 당하여 네 평안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러나 지금 네 눈에 숨겨져 있다. (눅 19:43) 네게 날들이 이르면 네 원수들이 토성(土城)을 쌓고 (눅 19:44)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권고 받는 때를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다".

(마 21:10)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말하기를, "이이가 누구냐?" 하니 (마 21:11) 군중들이 말하기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오신 선지자 예수님이시다!" 하였다. (요 12:19)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보느냐? 너희 꾸미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 하였다.

(막 11: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셨다.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막 11:12)(마 21:18) 이튿날 이른 아침 '베다니'에서 나와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예수님께서 시장하시므로 (막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가 있음을 (마 21:19) 길 가에서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그리로 가셨더니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었다. (막 11:14)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이 때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네게 열매가 맺지) 못할 것이다"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들었다.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 (이 마른 사실을 제자들은 그 시에는 눈 여겨 보지 않았으므로 알지 못했던 것-註).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

(마 21:12)(눅 19:45)(막 11:15)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자,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사고 파는) 모든 이를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table)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막 11:16(마 21:13))(눅 19:46) 아무나 기구(器具)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막 11:17) 이에 가르쳐 말씀하셨다. "기록되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註)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는 도둑들의 소굴(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

(예수님의 이 성전 정화(淨化)는 '갈릴리'로부터의 '예루살렘' 1차 방문 때 있었고(요 2:13), 이 마지막 방문 때 두번째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역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처음과 마지막으로 앞뒤를 갖추어 나타내신 성전 방문에서의 이 성전 정화의 단호하고도 엄하신 주님의 자세는, 우리가 얼마나 우리 몸된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두렵고 떪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보여 주는 경고가 되고 있음이다(고전 3:17)-註).

죽이려고 꾀하나

(눅 19:47) 예수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데 (막 11:18)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듣고 예수님을 어떻게 멸할까 하고 (죽이려고) 꾀하니 예수님을 두려워 함이었다. (눅 19:48) 그러나 군중들이 다 그의 교훈을 기이하게 여기므로 (백성이 다 그에게 귀 기울여 듣기에 열중하여)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했다.

(마 21:14) 소경과 (다리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오므로 고쳐 주시니 (마 21:15)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기이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the Son of David")이시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마 21:16) 예수님께 말하기를, "저들의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을 온전케 하셨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 21:17) 그들을 떠나 성 밖 '베다니'에 가서 거기 유하셨다. (막 11:19) 매양 저물면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갔다.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막 11: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막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쭙기를, "'랍비'(선생님), 보십시오.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습니다" 하므로 (마 21:20) (다른) 제자들도 보고 이상히 여겨 말하기를,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 하니 (마 21:21)(막 11:22)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23)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마 21:22)(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이다(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한 사건을 두고도

(28註-한 사건을 두고도 이 같이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는 기록은 무화과나무와 관련된 사건이 사실이란 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무화과나무뿐만 아니라 기타의 모든 것이 한 사람에 의한 조작에 의해 이런 성경 기록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웅변한다. 이런 기록상의 상이점이 성경 기록의 진실성에 대한 자체증명인 것이다. 여러 증인들의 증언에 의한 객관성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 세상 신(神) 사단이 "조작된 것"이라고 인간에게 속임수를 쓸 것에 대비, 미리부터 이런 조처를 취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한 사람에 의해 체계적으로 저술되고 대대로 전수되어 오도록 하시기보다 여러 계층, 여러 환경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증언을 하게 하시는 방법이다. 그러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간단히 풀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이 역시 그렇게 여러 사람들에 의해 씌어졌고 신약성경 역시 그런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일대기로서의 복음서도 네 가지로 나누어 쓰게 하신 것도 성령의 인도로 되어진 일로 믿는 것이다. 사도들의 서신은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한 사람에 의한 통일성 있는 체계적인 문서로 전수되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마지막이 되었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이 모든 사실은 유감 없이 밝혀져야 하는 마당에 성경 해석도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는 것으로 읽혀져야 하겠다고 믿기에 이런 "통합 복음서" 성격의 글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막 11: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눅 20:1)(마 21:23)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시면서 성전에서 걸어 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막 11:28)(눅 20:2) 말했다. "우리에게 말하시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이런 일을 할 이 권세를 주었는가?".

(막 11:29)(눅 20:3)(마 21:2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을 것이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막 11:30)(눅 20:4)(마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서냐? 내게 대답하라".

(막 11:31)(눅 20: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다. (막 11:32)(눅 20:6) 그러면 '사람에게서'라 할까 해도,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니(인정하니) 백성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므로 백성이 무섭다" 하여 (막 11:33)(마 21:26)(눅 20:7) (마 21:27) 이에 예수님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한다" 하니 (눅 20: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대답하기를, '싫습니다' 했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 같이 말하니 대답하기를, '아버지, 가겠습니다' 하더니 가지 아니했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이라" 대답하자, (영역(KJV,NIV)에서는 맏아들이 간 것으로 되어 있어 이를 따랐음-註)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稅吏)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마 21:32) '요한'이 의(義)의 도(道)("the way of righteousness")로 너희에게 나아오니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으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않았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마 21:33)(눅 20:9)(막 12:1)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거기 포도즙 짜는 틀을 넣을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는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눅 20:10)(마 21:34)(막 12:2) 결실의 때가 가까우므로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마 21:35)(막 12:3)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다(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냈다).

(마 21:36)(막 12:4)(눅 20:11)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므로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므로)(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으므로)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쫓았다(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였다).

(마 21:37)(막 12:5)(눅 20:12)(막 12:6)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 사랑하는 아들이라 (눅 20:13) 포도원 주인이 말하기를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낼 것이니 그들이 혹 그는 공경할 것이다" 하고 최후로 이를 보내었더니, (마 21:38)(막 12:7)(눅 20:14)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기를, '이는 상속자다. 자, 죽이자. 그래서 그의 상속 분(分)을 우리가 차지하자' 하고 (마 21:39)(막 12:8)(눅 20:15)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다).

(마 21:40)(막 12:9)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눅 20:16) 와서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말했다.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마 21:41) 사람들(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군중들-註)이 말하기를, "와서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입니다")(이 말을 누가는 주님이 하신 말씀으로, 마태는 군중들이 한 말로 기록하고 있다-註).

(눅 20:17)(마 21:42)(막 12:10)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막 12:11) 이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다(marvelous)'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눅 20:18)(마 21:44)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이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을 것이다".

(막 12:12)(눅 20:19)(마 21:45)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마 21:46) 즉시 잡고자 하나 군중들을(백성을)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앎이었다. 군중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버려두고 갔다.

'가이사'(Caesar)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마 22:15)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서 어떻게 해야 예수님으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눅 20:20) 이에 엿보다가 예수님을 총독의 치리(治理)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 하며((막 12:13)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마 22:16) 자기 제자('바리새'파 사람)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말하기를), (막 12:14)(눅 20:21) "선생님, 오직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바로 말씀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인 줄 압니다. (마 22:17)(눅 20:22) 그러면 선생님의 생각에는 어떠하신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을까요, 바치지 않는 것이 옳을까요?"

(당시 '유대'인의 민족 감정에 맞추어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 법에 저촉되어 고발할 트집거리가 되고, 바치라고 하면 '유대'인을 배신하는 것이 되어 민족반역자로 몰아 비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노린 것-註). (막 12:15) "우리가 바칠까요, 말까요?" 한 데에서 (눅 20:23) 예수님이 그 간계(奸計)(외식, 外飾, 假面)(악함)를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 22:19)(눅 20:24) 셋돈을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마 22:18)(막 12:16) '데나리온'(당시 유통되던 로마 화폐 단위) 하나를 가져왔으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22:20) "이 형상(화상(畵像))과 이 글이 뉘 것이냐?".

(마 22:21) 말하기를, "'케자르(Caesar)'의 것입니다". 이에 말씀하시기를, (막 12:17)(눅 20:25) "그러니 '케자르'의 것은 '케자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22)(눅 20:26)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여 예수님께 대해 심히 기이하게 여기며(to be amazed, to astonish, to marvel) 아무 소리도 못하고 예수님에게서 물러갔다.

부활이 없다

(눅 20:27)(마 22:23)(막 12:18)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눅 20:28)(마 22:24)(막 12:19)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말하기를) '사람의 형이 만일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해 대를 이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눅 20:29)(마 22:25)(막 12:20) 그런데 우리 중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했다가 자식이 없이 죽어 대를 이을 사람이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눅 20:30) (막 12: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대를 보지 못하고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마 22:26)(막 12:22)(눅 20:31) 일곱이 다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고 (눅 20:32)(마 22:27) 최후에 여자도 죽었습니다. (눅 20:33)(막 12:23) (마 22:28)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했으니 부활을 당하여 그들이 살아나면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눅 20:34)(마 22:29)(막 12:2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안가고 시집도 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된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되 (눅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이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눅 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으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영역으로는, "children")로서 하나님의 자녀("children")임이다.

(막 12:26)(눅 20:37)(마 22:31)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부활을) 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막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눅 20:38)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다".

(눅 20:39) 율법학자 중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니 (눅 20:40) 그들이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었다. (마 22:33) 군중들이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어느 계명이 큽니까"

(마태는 여기서 기록을 달리하고 있으니 즉 아래와 같다-註). (마 22:34) 예수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듣고 모였는데 (마 22:35) 그 중에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막 12:28) 율법학자 중 한 사람이 그들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기를, (마 22:36)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마 22:37)(막 12: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님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주인, 소유주)님이시니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므로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마 22:39)(막 12:31)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므로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다.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막 12:32) 율법학자가 말했다. "선생님, 옳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입니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태우는 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낫습니다". (막 12:34) 예수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이가 없었다.

"어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 12:35)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마 22:41)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여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마 22:42) "너희는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기를, "'다윗'의 자손이오". (눅 20:41)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사람들이(율법학자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 22:43)(눅 20:42)(막 12:36) 그러면 시편에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어찌 그리스도(메시아)를 주님이라 칭하여 친히 말하기를, (눅 20:43) (마 22:44) '주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다' 하였느냐?

(마 22:45)(눅 20:44)(막 12:37)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메시아)를 주님이라 불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마 22:46) 사람들은 즐겁게 듣고, 이에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이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이도 없었다.

(그러면 왜 성경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윗의 자손("the Son of David")"이라 하느냐 하면 사람으로서의 양자(養子) 관계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족보도, 하나는 요셉이 양자로 간 계통을 따르는 것과(눅 3:23) 그 생부 쪽으로 요셉이 관계된 것 두 가지를 다 소개하고 있다(마 1:6). 그리스도 자신께서는 고로 요셉에게 양자가 되시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양자(롬 8:23)의 신분임과 일치되어 있다-註).

가난한 과부

(막 12:41) 예수님께서 헌금 궤를 대하여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셨다. (눅 21:1)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며 ((눅 21:2)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하루 품삯 1 데나리온의 1/64에 해당, 당시 로마 화폐 단위)를 넣는 것을 보시고 (막 12:43) (눅 21:3)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눅 21:4)(막 12:44) 그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막 13:1)(마 24:1)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 지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제자들이)(어떤 사람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눅 21:5) 그 아름다운 돌들과 헌물(獻物)로 꾸민 것을 보이려고 나아와 말했다. (마 24:2) "선생님, 보십시오.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합니까?". (막 13:2)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눅 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다".

(막 13:3)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마 24:3)(눅 21:7) 제자들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와서 말하기를, (막 13:4) "선생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으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또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마 24:4)(막 13:5)(눅 21:8)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너희를 속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5)(막 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세상의 "구원자 곧 그리스도"라는 이름-註)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다', '내가 그리스도(메시아)다, 때가 가까웠다' 하여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막 13:21)(마 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메시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막 13:22)(마 24:24) 거짓 그리스도(메시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기적과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자들도) 미혹케 하려 할(속이려 들) 것이다. (막 13:23)(마 24:25) 너희는 삼가라. 보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마 24:26)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메시아)가 광야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라. 

(나중에도 이런 말씀으로 경고하신 것이 나오는데 이 경고를 한 차례만 아니라 여러 번 되풀이해서 강조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누가복음서를 기술한 순서를 따른다고 했지만 이런 포괄적인 내용으로 경고하신 대목들은 그런 순서가 별 의미가 없을 것이기에 가능한 한 주제별로 한데 모아 의미를 음미하는 것으로 편집 기준을 대략 정했다-'註..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마 24:15)(막 13:14)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者)는 깨달으라} (마 24:16)(눅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시내(市內, 城內)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 것이다.

(마 24:17)(막 13:15) 지붕 위에 있는 이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무엇을) 가지러 내려가지도 (들어가지도) 말며 (마 24:18)(막 13:16) 밭에 있는 이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다. (눅 21: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다.

"겨울에나 쉬는 날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눅 21:23)(마 24:19)(막 13:17) 그 날에는 아이 밴 이들과 젖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다. (눅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異邦, 만국, all nations)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異邦人, 유대인을 기준할 때 유대인 외의 민족이면 모두 해당됨-註)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다.

(마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이 일이) 겨울에나 쉬는 날(또는 "안식하는 날", 그러나 우리말 번역은 "안식일"이라고 되어 있고 영역도 대략 그런 뜻 즉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의 뜻으로 번역해놓고 있음-註)에 되지 않도록 ((막 13:18)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1)(막 13:19) 이는 그 때에(그 날들은)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창세로부터(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創初)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마 24:22)(막 13:20) 만일 주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시지 아니할 것이면(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의 택하신 사람들(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다(감하실 것이다).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마 10:26)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눅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다. ((마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마 24:15)(막 13:14)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者)는 깨달으라} (마 24:16)(눅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시내(市內, 城內)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 것이다.

(마 24:17)(막 13:15) 지붕 위에 있는 이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무엇을) 가지러 내려가지도 (들어가지도) 말며 (마 24:18)(막 13:16) 밭에 있는 이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다. (눅 21: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다.

"겨울에나 쉬는 날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눅 21:23)(마 24:19)(막 13:17) 그 날에는 아이 밴 이들과 젖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다. (눅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異邦, 만국, all nations)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異邦人, 유대인을 기준할 때 유대인 외의 민족이면 모두 해당됨-註)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다.

(마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이 일이) 겨울에나 쉬는 날(또는 "안식하는 날", 그러나 우리말 번역은 "안식일"이라고 되어 있고 영역도 대략 그런 뜻 즉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의 뜻으로 번역해놓고 있음-註)에 되지 않도록 ((막 13:18)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1)(막 13:19) 이는 그 때에(그 날들은)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창세로부터(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創初)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마 24:22)(막 13:20) 만일 주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시지 아니할 것이면(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의 택하신 사람들(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다(감하실 것이다).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마 10:26)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눅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다. ((마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눅 21:9)(마 24:6)(막 13:7) 난리와 소란(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즉시 되지 않는다(아직 아니다). (눅 21:10)(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눅 2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질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을 것이다. (마 24:8)(막 13: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다.

'노아'의 홍수 및 '소돔' '고모라' 당시와 같을 "인자의 때"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다. (마 24:38)(눅 17:27)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方舟, ark)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으며((마 24:39)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을 것이다), (눅 17:28), 또 롯의 때와 같을 것이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밭에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하였다. (눅 17: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할 것이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이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다. (눅 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는 잃을 것이요 잃는 이는 살릴 것이다.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지고

(눅 17: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 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5)(마 24:41) 두 여자가 함께 매(맷돌, 매란 것은 둥글고 넓적한 두 짝의 육중한 돌을 맞부딪쳐 그 무거운 힘으로 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로서 돌 두 개를 포개고, 위에 있는 아가리에 갈 물건을 넣어 위짝을 돌려서 갈게 되어 있는 바 힘에 부치니까 위짝을 돌리는 손잡이를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함께 쥐고 돌리게 됨-註)를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 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다. (눅 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다.

(눅 17:36) {없음}("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 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다"가 어떤 사본에는 있음) ((마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니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7)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님, 어디서 그렇게 됩니까?". 말씀하시기를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하셨다.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심을 사람들이 볼 것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막 13:26)(눅 21:27)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능력과 영광(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마 24:31)(막 13:27) 또 그 때에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낼 것이니 그들이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마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다. (마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그들에게 한 비유를 들어 (눅 18:2)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눅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하되 (눅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않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눅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 하였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눅 21: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다. (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항상 기도하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6)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막 13:24) 그 때에 그 환난 후 ((마 24:29) 그 날 환난 후에) (눅 21:25) 일월 성신(星辰)에는 징조가 있어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막 13: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눅 21: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여 무서워하므로 기절할 것이니 이는 하늘의 능력(하늘에 있는 능력)들이 흔들리겠음이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이다.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눅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눅 12: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눅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시중 들 것이다. (눅 12:38) 주인이 혹 2경(更-오후 10시~오전 2시)이나 혹 3경(새벽, 해 뜰 때까지)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

(막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다. (막 13: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막 13:35)(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어느 날에 너희 주(主)가 임할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다.

(막 13: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마 24:43)(눅 12: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시점에 올 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털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마 24:44)(눅 12:40)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치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다. (막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하여

(눅 12:41) '베드로'가 여쭙기를, "주님께서 이 비유를 저희에게 하심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입니까?". (눅 12:42)(마 24:4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이가 누구냐. (눅 12:43)(마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을 것이다. (눅 12:44)(마 24:4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이다.

(눅 12:45)(마 24:48) 만일 그 (악한)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하여 아래 사람들((마 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12:46)(마 24:50) 생각치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1) 엄히 때리고 신실(信實)치 아니한 자(위선자)의 받는 율(律)에 처할 것이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않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무릇 많이 받은 이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이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눅 21:29) 이에 비유로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마 24:32)(막 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눅 21:30) 싹이 나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자연히 아는 것이니(마 24:33)(막 13: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눅 21:31)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마 24:34)(막 13:30)(눅 21:32)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모든 일이) 다 이룰 것이다.(마 24:35)(막 13:31)(눅 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 24:36)(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할 것이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어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燈)을 가지되 기름을 갖지 않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는데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때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다! 맞으러 나오라!' 하였다.

(마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때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므로 (마 25:10) 그들이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고 준비했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면서 문은 닫혔다.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말하기를, '주님, 주님, 저희에게 열어 주십시오' 하나, (마 25:12) 대답하기를,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마 25:13) 그러니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양은 그 오른편, 염소는 왼편에

(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니 (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마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이들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創世)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相續)하라.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기를, '주님, 저희가 어느 때에 주님의 주리신 것을 보고 대접해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습니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혀드렸습니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습니까?' 할 것이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하였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말하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使者)들을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않았고, (마 25:43) 나그네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않았다' 하니, (마 25:44) 그들도 대답하기를,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였습니까?'.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기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 할 것이니, (마 25:46) 그들은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눅 21:37) 예수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성전에 나아갔다.
(요 12:44) 예수님께서 외쳐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이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요 12:45) 나를 보는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으니 무릇 나를 믿는 이로 어두움에 거(居, to dwell)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요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한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다.

(요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이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요 12:49) 내가 내 자의(自意)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나타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음이다. (요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몸을 죽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눅 1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한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5) 마땅히 두려워할 이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겠다.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를 두려워하라.((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가 되었다

(눅 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당시 유통된 로마 화폐 단위) 둘에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 버리시는 바가 되지 아니한다(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눅 12:7)(마 10:30)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가 되었으니 (마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할 것이다 

(마 10:21)(막 13:12)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다. (눅 21:16)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눅 21:17)(마 10:22)(막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눅 21: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할 것이다. 나중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아"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일 것이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마태는 이와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이미 10:22에서 하셨고 거듭 강조하셨음을 밝히고 있다-註).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끝이 올 것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올 것이다. (막 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니 그 때야 끝이 올 것이다.

종이 그 상전(上典)보다 높지 못해

(마 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니 (마 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악마'라는 뜻)'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화평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치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劍)을 주러 왔다.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는 내게 합당치 않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도 내게 합당치 않고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이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이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이는 얻을 것이다. (요 12:25 말씀과 같은 내용-註)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이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이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이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결단코 상(보답, reward)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이는"

(눅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나도) 하나님의 사자(使者)들 앞에서 ((마 10:32)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눅 12: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이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을 것이다((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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