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0일 수요일

단순한 지식이 아닌 최후통첩식 경고가 3위1체 원리의 성격



3위1체의 원리가 무신론, 진화론, 교회 내의 팽배해 있는 사도 바울의 지적대로의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들을 척결하여 청소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성경의 모든 진리를 자연계와 그 대칭형인 초자연계를 아우르는 법칙과 원리 측면에서 강력히 뒷받침함으로써 다시 면모를 새롭게 하여 우리의 구원이신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을 세상에 전파하는 데에 있습니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여 그 최첨단 지식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에 필적하게 또는 당연히 수반되는 형태로서 그 초자연적인 측면 곧 자연계와 유일하게 상대가 되는 초(또는 반)자연계의 실재를 밝힘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한 성경의 진리임을 다시 말해 그 정확무오함을 재선포함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은 적 그리스도의 때가 아니어서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의 "마지막 때 지식이 더하는 때"가 아니어서 교통 통신 분야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적 그리스도의 세대가 박두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각종 지식이 넘쳐 나게 되자 거기 보조를 맞추어 최최(最最)첨단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이 3위1체의 원리와 이를 검증하는 3운법칙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현대의 자연 과학계의 첨단 논의라 할 수 있는 빛의 성질에서의 입자성과 파동성, 그리고 양자 역학에서의 "양자 얽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그것보다 더 앞서 나아가는 초자연계에 관한 또는 관련된 확증적인 증거로서의 3위1체 원리입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과 보어와의 해묵은 논쟁에서 그 실상을 밝히는 것이며 "양자 얽힘"의 신비스러운 현상이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과학적(이는 초자연적 면에서의) 사실임을 드러내어줌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줌이니, 이제까지 외면당해 온 핵심적인 성경의 진리가 다시 초대교회와 같은 수준으로 전파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 부인이요 매일 자기 십자가 짐의 진실입니다. 이렇게 성경 진리의 요체가 소위 "로마서 7장의 바울 자신(사도가 된 다음)의 체험"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왜곡된 성경 해석에 의해 크게 그릇되게 인식되어 온 것을 혁파함에 있는 것이니, 초대 교회 당시 전파된 애당초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다시 오늘날 드러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동안 잘못 배웠고 잘못 알아 왔고 잘못 가르쳐 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여도 어린 아이 같이 되어 구원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순종에 이른 경우 구 누구든 구원 얻음에 아무 하자가 없었습니다. 비록 교리적으로는 잘못 가르쳐 왔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 모든 뜻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 한 그런 경우 구원은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구원의 진리가 간단 명료하다는 뜻입니다.

오직 자아중심을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걸림돌로 작용한 저간의 성경 해석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만민에게 "증거되기 위해" 복음이 전파되는 때로서 이제까지 잘못 이해되어 온 복음의 실상, 실체가 초대 교회 당시와 같이 그 모든 영광으로 충분히 빛이 발해져야 하는 필연성에서 더 이상 그런 미망(迷妄) 속에 싸여 있을 일은 아니기에 마지막 때 이와 같이 새롭게 조명(照明)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3운법칙 곧 인간 생애의 법칙으로 검증되고 있는 3위1체의 원리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당시와 똑같이(행 17:30 회개하라는 데에 있습니다. 잘못된 성경 해석에서 빚어진 모든 오류 따라서 그 모든 자아중심의 늪에서 벗어나 성경의 변함없는 진리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에 있는 것이니 즉 그 핵심이 양면성에서의 동시성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작용에 마땅한 우리 자신의 "반작용"인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마땅히 싹이 나야 합니다. 그런 작용에 대한 반응이 없으면 비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고 무용지물, 무의미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 역시 사랑으로 보응 또는 보답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게 되어 있습니다(요 14:21). 즉 싹이 나게 하는 비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고 생명에 필수 요건으로 다시 작용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사탄이 퍼뜨린 치명적인 위해 요소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또는 사랑으로만 한정해서 인간 구원을 해석한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과 같은 왜곡된 전혀 진실이 아닌 도리어 멸망에 이르게 하는 사탄의 교리만이 판을 쳐 왔습니다. 사탄은 성경이 그렇게도 강조하고 있는 "선을 행하라"는 경고를 마치 복음이 아닌 것같이 가르쳐 온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으려 한다"는 바울의 설명을 아주 엉뚱하게 해석하게 만들어 자기 입맛대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길들여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모든 거짓이 3위1체의 초과학적 진리, 원리로 규명되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중심을 회개치 않는 경우 고스란히 적 그리스도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욉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들 가운데 역사하게 하시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살후 2:11,12) 했습니다. "불의를 좋아함" 즉 자아중심을 회개하지 않는 일체의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3위1체의 법칙은 신불신(信不信)간에 모든 사람에게 심판의 지렛대가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디딤돌이 될 것이요 그럼에도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성경에 강조함과 같은 걸림돌로 작용하여 심판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마지막 때 이와 같이 다시 복음이 천명되었어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으로써 충분히 그 악함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3위1체의 법칙은 만유를 주재하는 모든 원리의 최고 기간(基幹)이라 하여 단순히 지식의 하나로 작용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만 그친다면 그런 지식이야 수 백만 가지가 있다 한들 무의미하기만 할 것입니다.

모든 지식을 알아도 생명(영생)에 이르지 않는데 천하를 얻어도 자기 생명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세상이 3위1체 원리의 의미와 가치를 몰라도 그 모른 그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를 위하여 필요한 이에게만 해당되는 지식이므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는 그 날 모든 인생들이 생명과 죽음으로 분류되어 양 갈래로 나누어질 때 그 판결의 잣대로 절대적인 권위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고로 3운법칙으로 검증되고 있는 3위1체의 원리는 지식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심판에 이르는 걸림돌임과 동시 영생에 이르는 디딤돌로 양면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3위1체의 원리를 수용한다고 해서 이 의미는 달라질 리 없습니다. 







사탄을 속히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실 것이다(롬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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