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9일 토요일

지금은 "초자연" 과학의 시대



과학은 말 그대로 자연과학이다. 자연법칙에 관한 연구 분야다. 따라서 초자연계에 대한 것은 그 누구 못지 않은 문외한들의 연구 영역이다. 우리 중 아무도 초자연계에 관해 아는 사람이 없다. 자연계에 한정해서도 모르는 바가 아는 것보다 너무 많은 실정인데 하물며 자연계를 초월하는 영역이랴. 자연계와 양자 관계로 대립되어 초(또는 반)자연계가 실존함을 드러내는 것이 3운법칙(인간 生涯의 법칙)으로 검증된 3위1체 원리다. 실재한다는 것만 이제는 알게 되었지 실제 아는 바가 없지만 실존함을 전제할 수 있게 되니까 말하자면 반은 알게 된 셈이라 할까.

이렇게 반만 알고서는, 나머지는 우리 인간이 이 자연계 육체로 남아 있는 한에는, 절대로 모르게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영역이 다르니까 접근 자체를 못하는 까닭이다. 오직 양자 관계가 대칭성을 이루어 그 반대 성질을 지니고 있는 고로 자연계의 제반 법칙을 통해 유추함으로써 어느 정도 윤곽만은 해득할 수 있게 될지 몰라도 그것도 미지수인 것은 곧 이 세상, 이 세대(this generation)가 종료되고 다음 세대가 도래할 것이기에 그러하다.

다음 세대에 가서는 모든 지식에 이를 것도 같다. 그 때는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일시적(한정적) 치세(治世)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자연계가 이 자연계와 더불어 쌍(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빨리 인지하면 할수록 지금이라도 자연과학계에 상당 부분 일종의 기여는 하게 될 것만은 기대해볼 만하다 생각된다. 자연계 하나로써 초자연계의 영역에까지 넘보려 한 것이 다윈의 오만이라 할까 무지이다. 자연계밖에 모르는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자연계만 존재한다고 믿고 그렇게 전제를 하니까 여러 가지 시행 착오에 직면하게 되고 숙제란 것을 남겨 두면서 유리 방황하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의 저간 사정이다. 그러나 이제는 양면 세계의 완벽한 구조를 알았으니 새 시대를 열 채비를 갖추어야 함이 마땅한 것. 과학이라는 학문이 확실한 뼈대가 형성된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다윈의 진화론을 중심한 것이어서 150년 남짓이다. 아이러니하다 함은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계로만 한정된 지식'의 인간의 사고 방식 속에서 급조된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창조론과 맞서기까지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빚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단정에까지 이르게 되어, 이 황당한 날조된 이야기를 어이없게도 진리로 자리 매김을 하여 각급 학교에서 가르쳐 왔으니 어찌 기막힌 일이 아닌가.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진화론에 대한 내용을 삭제한다는 소식을 보고 첨단 과학을 자랑한다는 미국인들이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아서도 이 황당무계(진화론)가 얼마나 인류의 지성을 마비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영국의 저명한 ‘네이처’지에 "창조론자들에게 굴복하는 한국"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자 국내 보도 기관도 일제히 장단 맞추어 "네이처의 '韓, 창조론에 항복' 기사에 미국 네티즌 조롱 줄지어",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진화…창조론은 비과학적 허구" 등 창조론을 공격하기에 바빴다. 물론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자연계 과학자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초자연계 과학"이다.

논쟁할 필요가 없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우주가 언제 어떻게 생성되었고 지구상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나 진화했는가를 밝히는 것은 인류에게 영원한 숙제가 되어 있다" 함은 자연과학에 한정되어 있는 현실적 비극에 속한 넋두리다. 인간은 처음부터 초자연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 자연계 육체는 참극 그 자체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인류여, 언제까지 이러려는가.

진화론이 무신론으로 통하고 처음부터 그 바탕 속에서 배양되어 왔다는 것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 중 자연의 기이한 변화에 접하자 창조주의 창조의 영광을 재삼 확인하지는 못하고, 대신 지금까지 의심 없이 믿어 온 "지적 설계론"을 통째로 버렸기 때문이다. 나이 29세 때다. 그 지적 방황은 계속되어 말년에는 불가지론자로 완전히 돌아서버렸다. "페일리의 지적 설계론은 자연 선택의 법칙이 발견된 마당에 구식이 되어버려 이제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The old argument of design in nature, as given by Paley, which formerly seemed to me so conclusive, fails, now that the law of natural selection has been discovered)"고 선언한 것이다.

페일리(William Paley)의 논증이라는 것은, 지적 능력의 시계공이 있었기 때문에 시계의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것으로서 지극히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시계보다 더 정밀한 우주의 설계도 지적인 창조자의 개입이 필연이라는 상식을 다윈은 미련없이 벗어 던진 것이다. 비글호 항해 이후 그렇게 된다. 그래서 "구약성경이 거짓이요 야훼는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폭군이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 이후의 무지개 징조나 기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사가 모조리 거짓이어서 힌두교 경전이나 야만인들의 토속 신앙보다 더 나을 바 없다"고 공언했다.

때문에 진화론이 처음부터 "무신론적 기반 위에 세워진 바벨탑"이라 하는 것이다. 과연 진화론의 그 후 행적은 무신론과 밀착되어 왔었다. 얼굴은 다윈이고 몸은 원숭이가 되어 있는 만화가의 그림은 이러한 진화론의 색깔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니 즉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이 진화론의 일반적인 통념이다. 창조주를 부정하니 자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 진화론을 주장하거나 믿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진화론에 대해서나 기독교에 대해서나 둘 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신론은 '성경에서 명시하는 창조주'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이다. 신이라 하면 창조신을 가리키고 성경에 이른 대로 "하나"밖에 없으시다. 이 "하나"는 히브리어의 특이한 표현으로 복수로서의 하나를 의미한다. 따라서 세상 군소 종교에서 말하는 신, 무슬림이 말하는 신과는 구별되어 마땅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신론은 다시 강조하거니와 3운법칙(인간 生涯의 법칙)으로 검증되어 있는 3위1체 원리를 밝히고 있는 성경적 사실을 부정하는 일체의 것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애초의 건전한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시작된 진화론인즉 무신론과 동일시하게 됨은 불가피한 것이다.

노벨(1833-96)과 다윈(1809-82)은 동시대 인물이다. 20세기 초로서, 다니엘(단 12:4)이 "마지막 때"로 예언한 그 시점(時點)의 시작이다. 다니엘 예언의 초점은 교통 통신의 급속한 발전 및 각종 지식의 발달에 맞추어져 있다. 이에 발 맞추어 다윈의 진화론이 한 몫 끼어 들게 된 것은, 이러한 발달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그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앞둔 사전 포석이다. 전체 세계 인류를 한 동아리로 묶어 효과 있게 통제 조종할 수 있는 수단 방법이다.

이러한 인지 발달은, 우리가 원래의 초자연계 육체로 환원되면, 아무 것도 아닌 그야말로 종이 한 장 휴지 조각만큼의 위력도 없어진다. 자연계에 속하다보니까 이런 하찮고 구차한 기구 기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진화론은 장차 어떤 구실을 할 것인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ufo 등의 소위 "외계인", "외계 문명"으로 접속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외계인은 인간과 같은 존재가 "진화"한 결과다, 그러므로 그런 "진화"로써 인간도 영생할 수 있다고 속이는 데에 활용되지 않을까 거의 결론에 이르고 있다.

다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 형제, 친구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바 믿지 않는 이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할 것인가, 이것은 가증스러운 교리(성경을 지칭)다...성경과 기독교는 자연법칙을 알 길이 없었던 고대인들의 생각일 뿐이다. 확고한 자연 법칙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기적을 더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The more we know of the fixed laws of nature the more incredible do miracles become.)... 당시 사람들은 무지함으로 그 믿는 일에 우리가 거의 상상도 못할 정도로 경솔했음을 알므로 … 기독교가 신의 계시라는 것을 점진적으로 불신하게 되었다(I gradually came to disbelieve in Christianity as a divine revelation.)"ㅡ완전한 무신론이다. 

그렇다. 다윈이 안 것은 자연법칙이다. 그것뿐이다. 자연계만 안 것에 그쳤다. 그만 아니라 모든 과학자들이 이 틀에 완전히 묶여 있다. 반(反)입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백년하청이다. 3위1체의 원리를 통해 시야를 크게 넓힐 때이다. 이제는 자연계에만 얽매이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고도 남았다. 이 때 진화론을 각자의 뇌리에서 불식함으로 척결하지 못하면 적 그리스도 즉 인류의 원수가 창조주로 가장하기 시작할 때 색다른 진화론에 휘말려 그 때는 오도가도 못하고 고스란히 그물에 고기 잡히듯 걸려 들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현란한 각종 기적의 전시장처럼 되어 완전히 넋을 빼놓게 될 것이다. 이런 미혹을 KJV 영역으로는 "strong delusion"이라 번역하고 있다. 오죽하면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라도 미혹하려 들 것"이라 하셨겠는가. 태풍 앞에 초목이 쑥대밭이 되 듯하는 꼴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너나 없이 미친 듯이 그 기적 앞에 굴복하여 "창조자의 영광을 우럴어 대한다"고 광란하게 될 것이나 실제는 영물(靈物, 천사, 악령)들 고유의 초능력을 대함일 뿐이니 속지 말 것이다. 대단한 것도 아닌 그들의 능력이 자연계 존재로 전락한 인간에게는 마치 하늘처럼 엄청난 것으로 보여 나타남은 당연하다. 

기적 즉 초능력이라면 죽는 시늉을 하고 무조건 신적(神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자연계 육체로 퇴락해버린 인간의 비극적 참상이다. 진화론은 인간의 진화를 말하지만 실상은 이렇게 퇴화가 되어 있음을 성경의 초과학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능력의 기세를 몰아 "마지막 아담"(고전 15:45)과 한 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도리어 "사탄의 패거리"로 뒤집어 씌워 대대적 살륙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요 16:2). 우리 위해 십자가 죽음을 취하신 마지막 아담의 뒤를 따르는(눅 9:23) 그 날의 순절(殉節)을 예상하고 매사 임할 일이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는 "최첨단 과학"이라는 간판을 자유자재로 내걸고 구사할 것이다. 그러나 150년간이나 과학의 정수(精髓)처럼 여겨 온 진화론이 허구였음이 까발겨지는 오늘날 그 '학습 효과'를 얻은 우리로서는, 무조건 과학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구습을 청산하고 성경의 진실에 위배되는 일체의 것이 거짓이요 속임수(이 세상 신인 악령에 의한)임을 꿰뚫는 지혜를 얻었으니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면 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말기를 최종 당부 드리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무척이나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자연계에 한정된 것임을 다시 강조한다. 고로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우주나 생명의 기원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려면 당시대의 지식 수준에 한정되어 지식의 변천 발달을 따라 갱신에 갱신을 거듭해야만 하고 "과학에 바탕을 둔 진화론"이라 큰 소리쳐도 외짝, 외다리의 절름발이이지 완벽한 양다리 보행일 수가 없다. 단순 명료한 데에 힘이 실려 있다. 속이는 자 악령은 복잡하게 어질러 놓는 것이 그가 애용하는 전통적 수법이다. 아담 부부도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제법 똑똑한 척하려다가 파멸에 이른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논쟁하거나 종교와 과학이라는 논리의 대립 양상으로 언제나 평행선을 긋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자연과학 이론은 인간이나 종교가 만든 게 아니라 자연 법칙을 따름이어야 하고 자연법칙에 의해서만 그 이론이 설명되어야 하고 그 결과는 실제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하고 그 연구의 결실은 항상 잠정적이라 대체될 개연성을 지니기에 비판도 가능해야 한다"는 자연과학의 특성도 말 그대로 단지 외짝인 자연계에만 기반을 두고 있을 따름이기에 그러하다.

인간의 지식 습득이 자연계로 한정되어 있음은 초자연계에 속한 육체의 완벽한 기능 가동에 비해 너무나도 느리고 굼뜬 실상이라, 산으로 치면 그 정상에 오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땀을 쏟는 것과 같다. 그 고행과도  방불한 연구 결과 끝에 겨우 초자연계의 실재를 증명하였다고 개가를 부를 정도가 되면, 이미 초자연계의 실존을 입증하는 3위1체의 원리는 헬리콥터로 거뜬하게 정상에 착지함과 같은 형국이다. 

과연 어느 쪽이 과학이란 용어를 담기에 적절한가. 앞에서 말한 "과학적 특성"은 자연계에만 국한된 것임에 비해, 생명의 창조에 대해 이미 완벽한 해답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검증, 대체, 수정, 보완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오직 영원불변인 것이다. 이것이 초자연계 진실의 특징이다.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언제든지 수정이 되고 보완될 수 있는 자연과학의 이론"이 아니라 당장 폐기되어야 하는 속임수인 것이다. 인간의 속임수가 아니라 초월적 전재 즉 초자연계 존재인 악령들의 노림수이다. 초자연계의 진실은 어떤 증거가 제시될 필요도 없고 수정되거나 보완될 필요도 없는 최종 확정적인 것이니 여러 가지 제한으로 묶여 있는 자연법칙 관련 이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계속 변하고 수정이 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는 자연과학 이론의 특성에 구애될 이유도 없다. 진화론은 처음부터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설명될 수도 없는 운명이다. 진리 진실을 처음부터 외면하는 바탕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적 관점의 허구성만 잔뜩 짊어지고 허둥댈 뿐이다. 그러나 이런 따위를 적 그리스도는 요긴하게 써 먹을 것같다. 

실제 진화론은 소위 "진화 증거"들을 수집하여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통해 공인된다 하더라도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자기와 자기를 비교하는 꼴이니 발전이 없다. 자연계 현상의 한계를 따라 계속 맴돌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사탄의 수중에서만 놀아날 뿐이다. 부디 자기 분수를 알 일이다. 따라서 초자연계의 존재를 실증하는 3위1체 원리는 자연과학적 논리밖에 알지 못하는 과학자들에게 공인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으로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3운법칙으로써 그 권위가 인정되고 있음이다.


따라서 자연계에만 한정되어 있는 진화론과 성경은 서로 반박하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인류가 이루어놓은 많은 지식 체계"도 자연계에만 한정되어 있으므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라면 쓸모가 없어,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진화" 다시 말해 생태 변화 또는 적응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은 진화론을 신봉하는(진리 아닌 것을 무조건 믿는 속성에서는 미신과 같다) 자연계 과학자들의 몫이 아니라 초자연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해야 하나 불행히도 한계 밖이니 어찌 할 것인가.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것이 아니라 3운법칙으로 검증된 3위1체 원리의 진리를 수락하느냐 않느냐 양자 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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