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1일 화요일

3운법칙으로 검증되는 3위1체 법칙은 '21세기의 성경 해석'





21세기 이전에는 3위1체의 원리나 3운법칙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revelation)된 말씀이 인간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3운법칙과 3위1체의 원리 역시 모든 사람(이를 수용하는) 개개인의 것(所有)으로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고전 3:21-23). 계시된 말씀을 그렇게 계시된 대로 수용하면 각자 자기 것이 됩니다. 아무개의 성경 해석이라 하지도 않고 그 아무개의 공로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친히 나타내신 것이고 그 아무개는 단지 그 생명수를 공급하는 파이프(pipeline)였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개'의 3위1체의 원리 또는 3운법칙"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칭송 받는 또는 받게 될 '유명인'을 선정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대로 일개 '무명인'을 통해 이 3위1체의 원리나 3운법칙을 알게 하신 것이 이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의 발견도 그 발견자의 이름을 나타내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성경도 모르는 이 세상의 관례일 뿐입니다. 이 경우 대개 그 '아무개' 개인에게 비중이 두어지고 영광이 돌아갑니다. 따라서 그 개인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게 되고 무지한 인생들은 그 지식이 하나님에게서 난 줄은 알지 못하고 그 인간만을 높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릇 어떤 형태이든 자아중심을 미워하십니다. 죄와 악의 근본으로서 '머리'이신 하나님을 인정 않기 때문에 '몸'의 각 지체가 제각기 제멋대로 놀아나는 혼돈으로서 모든 불화, 압력, 쟁투, 살인의 시발점이 됨입니다. 헤롯왕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 앞에서 연설할 때 백성들이 크게 외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할 때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는 고로 주의 사자(使者)가 곧 치니 충(蟲)이 먹어 죽었다(행 12:20-23) 함과 같습니다. 이런 것이 죄와 악의 근본입니다. 

사람이 바치는 영광을 제 것인 양 여기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이것이 인간이나 영물들에게는 허물이 됩니다. 갑과 을의 하나됨에서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위하게 되어 있지 자기를 위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상대만을 위함으로써 자기가 무한대로 위해지는 삶의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사 43:7) 창조물의 영광은 창조자 자신께서 되어 주신다는 그 뜻입니다.

3위1체의 원리나 3운법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 나타내신 것이고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악령의 모든 거짓과 속임수를 격퇴함에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주신 것이라면, 이 소중한 것을 다룸에 있어 다윗 당시 웃사처럼 망령된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삼하 6:6-8). 웃사는 소들이 날뛸 때 하나님의 법궤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법궤에 손을 대어 붙들었으나 법궤를 절대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즉사한 것입니다. 

3위1체의 원리나 3운법칙이 필자가 인식하기로는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얼키고섥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현재의 난맥상을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하나님 친히 여러분 개개인에게 주신 선물로 인정, 최대한으로 활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 스스로가 그 발견자인 것이니(계시된 것을 수용하는 것이 곧 '발견'인 것), 필자도 그런  발견자 중의 하나입니다. 

3위1체의 원리를 검증하는 것은 3운법칙으로서, 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셈법인 만큼 너무나 간단명료합니다. 모든 사람이 직접 확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예비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해당 분야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 특별히 연구한 사람에 한해서 취급될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3위1체의 원리, 3운법칙 등은 아예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런 형편을 예견하시고 미리 준비하신 것이라 판단됩니다.

지금까지 필자의 신상을 밝힘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임이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만일 밝히게 될 경우 부각되는 것은 일개인에 관한 것으로 한정되어버리고 그 개인 여하에 따라 3위1체의 원리나 3운법칙도 논단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필자가 성경을 남달리 많이 탐독했다는 그 차이로써만 세상에 발표할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성경대로 두드리고 구하고 찾은 결과로 이런 새로운 지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평범한 일로서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든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그 영광을 헤롯왕처럼 가로챌 위치는 절대로 아닙니다.  3위1체의 원리와 3운법칙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니까 일종의 성경 "풀이"(벧후 3:16)와 같은 것이어서, 필자가 성경을 "강론"(행 17:2)하면서 오늘날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이것은 틀렸고 저것은 어떻다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에 스며져 있는 진리를 해석하여 알리는 그런 정도입니다. 필자의 해석을 수용할 것을 그 누구도 강요하지는 않으니까(사랑을 강조하는 성경이므로 성경은 무엇이든 강제, 강요하는 것이 없으니,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ㅡ하나님의 계명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하면" 마땅히 지키게 되어 있다는 안내요 지침일 따름입니다-요 14:15,23), 그것을 수용하고 않고는 독자의 완전 자유입니다. 

성경에서 3위1체의 원리와 3운법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필자의 각종 성경 해석을 수용하지 않으면 그뿐임과 같이 이 사실 역시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이 3위1체의 법칙은 창조의 법칙이고 만유 존속의 원리이므로 자연법칙에도 당연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보어와의 논쟁에서 '틀렸고' 그렇다고 보어의 주장이 완전 무결하다는 것은 아니니 만물의 상보성은 알았으나 그 상대되는 양자(兩者) 관계가 인과, 주종, 대소, 선후(먼저 존재함과 나중 존재함)로 가름되어짐을 몰라 창조자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으므로 '보어는 몰랐다'"고 하는 주제를 단 것입니다. 

성경 풀이에서 갖가지 억지 해석이 많은 중에(벧후 3:16) 어느 누구든 제대로 된 해석을 내놓으면서 이것은 "내가 해석한 것"이라고 내세우고 광고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3위1체의 원리와 3운법칙도 똑같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의 여러 사실 중 하나를 밝혀 드러낸 것에 불과합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마 11:27)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그 구원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는 일절 알 수 없음과 같이 3위1체의 법칙도 꼭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심으로써 지금까지 인식 못하던 것을 이제는 여러분이나 필자나 알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계시"라는 말에 특별한 무게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중 계시 아닌 것 즉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이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셔서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는 것이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시다"(사 28:24,29) 이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그 지으신 피조물을 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영물(靈物)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생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경이 "생명은 피에 있다"는 언급을 했지만 이 자연계 법칙도 진실임이 확증된 것은 현대에 와서였습니다. 이렇게 자연과학적으로 진실임이 입증되기까지는 아무도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만 3위1체 법칙은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망라하는 것이므로 자연과학적 실험으로는 검증되지 못한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그 대신 3운법칙이 검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느 누구든지 성경을 바로 해석하여 이를 가르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시는 것으로 알지, "아무개의 가르침"이라고 부질없이 토를 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성경이 밝히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가 바로 3위1체의 원리요 3운법칙입니다. 모든 자연과학 법칙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지만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성경에서 나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3위1체 원리나 3운법칙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생애와 모세 및 아브라함의 생애를 근거로 3운법칙이 발견되었고, 예수님께서 아버지(하나님)께 대해 여러 차례 설명하신 사실에서 3위1체의 원리의 골격이 나타나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께서 둘이 하나로 계시는 모습을 따라 만물을 지으셨음을 증명하는 것이 3위1체의 원리입니다. 상대성 이론 등은 자연법칙의 하나로서 인정되는 것이지만 3위1체의 원리는 초자연계의 존재까지 입증하고 있는 만유의 법칙으로서 성경에서 나왔다는 데에 그 의의가 어디다 비할 데 없이 막중합니다. 

유명 자연과학자(이제부터는 '과학'이라면 "자연과학"이라고 한정해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초자연계가 대칭적으로 존재함이 확인되었기 때문)들 중의 하나가 이 3위1체의 원리와  3운법칙을 발견했다면 좋았을 것이 아니냐 할지 모르나,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그다지 큰 의미가 부여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전공 분야와 영역에 따라 총체적인 인식이 자연계에만 한정되어 있는 자연과학자는 이와 대칭이 되어 있는 초자연계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의 모든 대목을 문자 그대로 진실임을 확신하는 것이 필수 전제 조건인데 그 정도라면 성경 자체에 매료되어 자연과학자가 되지 않고 기독교 교역자나 성경 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자연과학자라면 의당히 3위1체 원리와 이를 검증하는 3운법칙을 토대로 모든 연구를 누구나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무지했었으나 이제는 실상을 알게 되어, 몰랐던 당시에 비하면 완벽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를 안전 지대로 올려놓는 것은 또한 아님을 마음에 아로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이 전부가 아닌 것이니, 오직 지식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는"(마 18:3) 토대를 구축하는 디딤돌 역할일 뿐입니다. 이런 "지식"이  없이도 어린 아이 같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게 되면(고전 8:3) 이 경우 당당히(그러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나면 아버지의 뜻을 사랑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초대교회가 향유했던 기본 지식을 비록 상실했지만 지금까지도 구원 받음에는 아무 하자가 없었음이 이 때문입니다. 사람이 구원 얻는 근본이 되는 지식은 아주 간명하게도 사랑에 있기에 그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 죽음을 당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나도 의당히 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함이 옳다는 내 양심의 소리에 끝까지 충실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영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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