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사람되신 하나님(하나님이신 사람)과 하나되었으니 원도 한도 없어라ㅡ이 세상 죽음과 고난이여 얼마든지 오라, 오라, 오라



나는 7전(顚)8기(起)하리라(잠 24:16)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 이상 막연하고 애매 모호한 존재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계셨기 때문에 성경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과 "친구" 사이라 한 것입니다(약 2:23). 그 증거가 아들 친히 나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죽음의 고난 받으신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란 사실은, 나와만 아니라 모든 인간 그 어느 누구와도 나와 같은 이런 '일대일'의 관계로 상관하신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차이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아들께서는 "다시는 너희를 종(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이라 하지 않고 친구를 삼는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친구"라는 것은 같은 또래가 아니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마지막 아담보다 내게 더 가까운 존재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일관되게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어느 인간보다 나와 가까우시고 그 어느 인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이ㅡ나의 부모의 사랑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하는데 부모 사랑은 이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함께 함이므로, 갑과 을의 둘이 아나됨이므로 이를 가리켜 갑은 을 안에 있고 을은 갑 안에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영으로 즉 성령으로 내 영혼처럼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사랑의 용어입니다. 즉 갑의 삶은 을이요 을의 삶은 갑이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빌 1:21), "다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갈 2:20)이라 했고 이제 무릇 산 자는 모름지기 나 위하여 죽으시고 나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해(그렇게 본을 보여주신) 사는 것이고 결단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후 5:15)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삶이 아니므로 즉 자아중심은 자기 부인의 반대 개념이므로 자아중심으로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삶의 낙으로 통하는 것이라면 자기 부인의 정상적인 삶은 죽음의 고난으로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자아중심의 삶은 '죽음'으로서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란 뜻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부유하여 부자로 사는 자는 오는 영원 세상에서는 위로가 없다 즉 죽지 못해 사는 고난 고통 비애뿐이라 천명하셨고, 속지 말고 부자로 있으면 그 부(富)를 반드시 가난한 자 구제하는데 남김없이 바치라고 바울사도는 가르치고 있습니다(딤전 6:17-19). 3위1체의 원리를 따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장래에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19)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 받아 잘 산다는 것은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탄의 교리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마지막 아담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셔야 그제서야 우리도 생명으로 변환되는 것이니(골 3:3) 그 때까지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고통뿐입니다. 생명과 죽음의 그 중간은 없고 반드시 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3위1체 원리의 대칭성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류의 구원자)께서 다시 오시면 반드시 초자연계 몸으로 즉 첫 사람 아담이 범죄 전에 누렸던 그 애초의 초자연계 육체의 영광으로 오십니다. 적 그리스도는 그런 몸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써 진짜와 가짜(그리스도에 관한)를 구분하라고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가짜는 반드시 자연계에 속한 육체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보다 월등한 기적을 나타내어 속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를 분명히 명심할 일입니다. 


이제부터의 그리스도는 반드시 번개처럼 동에서 번쩍하면 서에서도 번쩍하는(눅 17:24) 초자연계 몸의 모습 즉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이니 왜나면 이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속죄(贖罪) 작업을 마무리하셨기 때문에(이미 2천년 전에) 더 이상 범죄자 죄인의 구차한 비정상적인 모습인 이런 자연계 몸이 되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후에는 영원 멸망에 들어가는 악인이나 영생에 들어가는 의인이나 똑같이 "부활하여"(행 24:15) 초자연계 존재가 됩니다. 왜냐면 이것이 인간의 애초의 정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여전히 이런 자연계 육체로 나타나 아무리 큰 소리 치고 초능력을 과시해도 비정상이고 죽음의 자연계 몸인즉 가짜일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노정시킴으로써 자연적으로 폭로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이 적 그리스도임을 간파하는 가장 강력한 척도(尺度)이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적 따위에는 일절 아랑곳하지 마십시오. 죽음의 자연계 몸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직 한 분, 한 번뿐입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이루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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