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5일 일요일

만물은 자기 짝을 찾아 존재한다


새 창조에서 하나님은 <또다른 나>를 만들어 주셨다. 
이 '또다른 나 자신'과 둘이 하나됨이 구원이다.
친히 '또다른 내'가 되어주심으로써 나를 새로 만드시는 것.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에게 자신을 주신"
그 자신을 다 바치신, 그래서 영원히 내게  선물로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명시하였다(갈 2:20).

여럿 중의 '나', '우리' 중의 '나'.
'우리'라 하면 막연, 애매모호하지만 '나'라 하면 인식부터가 다르다.
느낌부터가 다르고 마음에 울림부터가 다르다.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시다".
"TO LOVE ME AND GIVE HIMSELF FOR ME".
이것이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구원의 지식이다. 

이런 말을 모든 인간이 다 할 수 있다.
마지막 아담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ㅡ하나님이란 존재가 나만큼, 나 이상으로 소중한 것. 
"나 이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척할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어리석은 민생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기를 자랑처럼 한다. 
오만의 극치다. 오만은 자타에게 아무 덕이 되지 않건만.
굳이 오라고 하시지 않는다. 내버려 두신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함과 같이
너희를 모으려 하나 너희가 오기를 원치 않는" 하시며
어버이 정으로 눈물을 흘리시고 우시기까지 하신 것은
억지로는 아니 되고 하나님으로서도 불가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불가능 ㅡ 무서운 말이다. 


둘의 하나됨에서는 어느 쪽도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와 하나를 이룬(짝을 이룬) 상대방을
오로지 위할 뿐이다. 마지막 아담께서는 이미 증명하셨고
나는 그 다음 순서로서 나의 주인님을 위하는 사랑을 증명해야. 
사랑은 섬기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주인이요 종.
구원의 동시성과 양면성이니 3위1체의 원리를 따름이다.
3위1체의 원리는 성경을 푸는 열쇠다.
모든 과학적 발견 발명도
이 3위1체의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으니 재조명하라.
인간은 남녀가 짝이다. 그러나 새 피조물로서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런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은 바로 나.
내 이름이 조내숙이면 그 사시는 것이 조내숙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갈 2:20).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
바로 나 조내숙이가 사는 것.
영광스러운 사랑의 삶ㅡ머리께서 친히 나의 삶을 사시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이러하다. 
이 사랑의 관계를 멸시하거나 소홀히 함으로써 기회를 놓친 자에게
두 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사부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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