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1일 토요일

인간은 자유인으로 창조되었고 영원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새로 창조되고 있다





그림을 크게 한 것은,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크다고 해도 이 세상 신(神ㅡ고후 4:4)의 한 손아귀에 주물럭거려지는 한낱 가냘픈 존재,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임을 오히려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모바일 보기에서는 그림이 크게 나오지 않음).  






이제까지 내 마음대로 네 활개치며 살아왔노라고 모두들 자부해 왔었다. 그러나 웬걸, 모든 인간 생애를 철통같이 옥죄어 56, 57개 마디의 세 갈래로만 갈라 내놓고 있는 3운법칙으로 인해 철저히 통제되고 마름질되어 "너는 여기서 저기까지 그리고 저기서 거기까지다"라는 잣대로 재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나풀레옹은 "내 인생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큰 소리 치며 기고만장했지만 그것은 그 생애의 LP에 한정될 뿐, 승승장구하던 그 기간이 끝나고 그 대칭형으로서의 DP가 시작되자 연전연패, 엘바섬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기세 좋게 웅비하는가 했으나 한 순간 이겼다 싶다가도 그냥 내리닫이로 급전 직하, 다시는 기사회생할 줄 모르는 내리막의 연속이었고 결국에는 새장(鳥籠)에 갇힌 새의 신세로 전락, 외롭게 쓸쓸히 센트 헬레나 고도에서 날개 쭉지 떨어진 만년을 채우고는 50대 초반에 숨을 거두었다.

LP는 말하자면 흥하는 운세, DP는 기우는 운세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운세가 기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운세가 기울어져 있었기에 러시아에서 패했고 연달아 1814년 영,불,프,오 연합군에게 내리닫이로 패한 것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세에서는 엘바섬 탈출도 무의미, 무위로 돌아간 것. 그래서 이 인간 생애의 법칙을 "3운(運)법칙"이라 한다. 흥하는 운세에서는 대개 그 정점(클라이맥스)이 있게 마련인데 나폴레옹도 정확히 그 시점에서 황제로 등극한다. OT형 생애에서 1795년과 1812년 사이의 대략 중간 지점인 1804년이다.
FS형인 박정희 전대통령도 그 LP의 대략 중간 지점인 1961년에 5.16 군사 혁명에 성공한다.

이 3운법칙은 자아중심으로써 인간 상호간 알력과 투쟁을 일삼아 결국에는 파멸로 종결 짓는 것을 방지하여 
공멸로 조기 파멸에 이름을 예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설정하신 것으로서 인간사, 세상사가 인위적으로 인간 자력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니 성경에 처음부터 밝힌 대로 "제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향(指向)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합니다"(렘 10:23)라 함과 같다.




인생을 옭아매는 것은 이런 3운법칙이 아니라
아주 눈을 어둡게 만들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인간의 생각을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잡아 조종하는 악령 사탄 곧 이 세상 신(神)의 농락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없는 줄로 믿게 하고 초자연계를 가려 오직 자연계뿐이라고 믿게 만들고
따라서 성경에 이른 대로의 과거 한 때 인간(아담) 아래 있었던 자기 정체를 감추는 일에 
인생들을 역이용해 왔던 것이다.

그의 꺼둘림에 사정없이 꺼둘리고 휘둘려 무신론자도 되고 진화론자도 되어 하나님도 없다, 
만물과 생물의 기원은 창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이런 모든 초능력에 의한 수작들은 자기네처럼 인생들을 멸망의 운명으로 빠뜨리기 위함이니
이와 같은 멸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인생들의 숫자가 일정량에 차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모종 특단의 조처를 취하게 되심으로써
이미 멸망의 운명에 처해진 자신들(악령들)도 구제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에 의존함이나
자아중심을 회개하지 않는 바탕 위에서의 그 어떤 방안도 
혼돈, 혼란만 가중시킬 뿐 묘안이 될 수는 없다.

오직 악령들의 자아중심의 욕심에서 나오는 무대책, 무작정의 욕심일 뿐이다.
그런데도 악령들이 여전히 나름대로의 희망을 품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투명하게 원리원칙으로만 움직이심을 잘 알기 때문.
그래서 혹여 무슨 기회라도 생기지 않을까 '우연'을 바라보고 저런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피조물보다는 슬기로우시다는 성경의 말씀을 저들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꾀에 자기 스스로 넘어간다고 말씀하신  그대로다.

하여간에 이런 악령들의 인질처럼 되어 그들의 통제하에 있는 인생들의 노예 생활이니
다시 말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완전히 상실당해 있는 상황이니
마지막 아담과 함께 하는 자유 외에는 그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지금이라도 깨닫고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되는 은혜를 입어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주인 의식 가운데 
이 세상을 새롭게 다시 새 생명 중에 사시라.
자신이 자유인이 되었으면 당연히 내 이웃도 이 광명의 자유 속에 들어오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고 싸워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구원 얻었다고 내 욕심만 차리고 그대로 악령들에게 매여 살겠다는 생각은 
실상을 모르고 지냈던 지금까지의 이력(履歷)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이제부터의 내 인생 걸음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왜 무슨 이유로 자유인되는 것을 버리고 원수들의 종살이를 선호할 것인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ㅡ자유가 그만큼 소중하다고 느꼈기에 창조주 하나님도 부정해 오지 않았던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지는 않고 사탄의 속임수, 거짓말은 더 믿어 
사탄과 같은 자아중심의 독재자로만 알아 왔던 어리석음이 아니던가.
자아중심에서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마지막 아담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요일 3:16)고 요한 사도는 분명히 밝혔다.
자유가 소중함은 사랑의 핵심인 까닭이요, 사랑이 바로 생명의 구심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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