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0일 금요일

심각하게 아로새겨야 할 말씀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전 3:16/7:40).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그러하다"(:7).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히 12:14). 

이상 말씀을 성경대로 수용 않고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여 이 "성전"은 믿는 사람 개개인의 육체를 가리킴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로마서 7장을 바울 자신의 체험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대개 맞물려 있다. 내 안에 죄가 그대로 있어 "죄의 법"이 항상 나를 사로잡아 오는 "사망의 몸"인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셔서 그 사시는 성전을 삼으시겠느냐, 큰 모순이 아니냐ㅡ하는 것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이다. 


성령이 누구신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어떻게 되시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 "회개"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같다고 취급 받는 이들이 오히려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과 말씀에 순종하면 잘만 믿고 잘만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신기한가. 사실은 신기할 것도 없다. 사랑은 만국 만민의 공용어이기 때문이다. 오직 지식 있다 하고 자기 지혜를 자랑함으로써 '사랑할 줄 모르는' 교만한 이들만 구원에서 그동안 제외되었을 뿐이다. 


"거룩하라"는 것은 명령이다(벧전 1:15,1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얻었지만"(히 10:10), 3위1체 원리의 동시성과 양면성에 의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고후 7:1) 하는 것이다. 거룩함이 무엇인가ㅡ자기를 위하지 않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거룩하게" 만드셨다는 것은 우리 모든 피조물이 그 품속의 아기들이라는 말과 같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아드님께서도 그 품속에 계신다 했으면 말 다한 것 아닌가(요 1:18). 앞서의 설명대로 우리가 새 창조와 재출생에 의해 거룩하게 창조함을 받았다는 것은 아기와 엄마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엄마가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을 하는 구조다. 아기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하게(복종하게) 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갑과 을의 하나됨에서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함으로써 하나(한 영 또는 한 몸)로서의 병을 이루는 3위1체 원리의 동시성과 양면성이다. 


인간으로 말하면(동식물도 마찬가지지만) 성장하여 자주 독립함으로써 더 이상 엄마를 의존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그 품속의 아기라는 것이니 하나님은 영원히 (말하자면) 젊으셔서 기력이 쇠퇴하실 리 없어 모든 피조물을 위하시고도 남으신다. 고로 피조물은 자기를 위할 필요가 없다. 영원히 그렇다. 사람으로 치면 영원한 아기의 상태다. 따라서 당연히 각 피조물은 한 몸을 이룬 그 상태에서 머리의 지시를 따라 머리에게 (절대)복종하여 자기 이웃(머리와 함께 한 몸을 이루어 각 지체의 각 부분이 되어 있는)을 위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게 되어 있다. 머리가 자기를 위하고 각 이웃이 자기를 위하니 자기를 위할 필요가 없어서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고 그 반대가 자아중심. 


"자기 부인"이라는 용어는 이미 인간이 사망과 멸망의 자아중심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긴 단어다. 처음부터 죄가 없었고 죽음이 없었으나 자유의지에 의해 피조물들이 자아중심으로 흐르면서 비정상이 생기게 된 때부터의 개념이다. 고로 "거룩함" 역시 이 자아중심이 생기면서 새롭게 그 의미가 부각된 것. 모든 사상과 개념이 이와 같이 대칭성을 띠고 있음은 당연하니 이것이 3위1체의 원리다. 그런즉 아기가 그 엄마의 태에서 나올 때 엄마와 그와 같은 서로 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한 것처럼 우리 역시 새 창조로 탄생할 때 "거룩한 자"로서의 정상 상태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아담이든 영물(천사)이든 창조되던 당시는 다 거룩한 상태였음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스스로 이 거룩함을 이루지(혹은 유지하지) 못함을 인해 아담의 죽음이 왔고 사탄을 비롯한 악령들의 멸망이 운명지워진 것이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즉 "저들을 위하여 제가 저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요 17:19) 하신 기도이다. 지금까지 거룩하시지 않아서 거룩해지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앞서의 설명대로 자유의지에 의한 변함 없으신 사랑의 복종(머리이신 아버지께 대한)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복종이 그와 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고전 11:3)로서 본이 되어 계신다는 이상 말씀의 의미인 것이다. 


고로 하나님을 사랑의 원리인 3위1체 법칙에 의해 소유한(모신) 우리들 각자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만유의 상속자로서의 현재 신분이나, 스스로 자아중심으로 벗나가(이는 아담의 경우에서나 천사의 경우에서나 마찬가지였던 것) 성령(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시는 그리스도 즉 마지막 아담)을 모신 성령의 전인 내 몸을 더럽히면(자아중심으로 나감으로써) 영원히 용서가 없는 것이다(히 10:26).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함이 이 "거룩함을 이루라"는 바로 그 뜻. 


"만물이 다 나의 것"이니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고전 3:16-23)이라 함과 같다. 
악령들도, 사탄도, 거룩한 천사도 모두가 다 나의 소유물이다. "세계" 자체가 나의 것,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내가 그 주인이니까 내 위에 가는 이는 아무도 없고 오직 머리되시는 마지막 아담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사람)의 머리는 아버지(하나님)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고전 11:3)이시라 한 그대로다. 

내가 사탄이나 기타 악령들의 주인으로서의 현재 신분이지만 목적과 뚓이 있어 이 세상에서 고난(갖은 악형ㅡ히 11:35) 받음이니, 마지막 아담께서 모든 영물들의 주인이시나 이 세상에서 십자가 고난(우리 위해)을 받으심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어느 때든 내가 자아중심이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와해될 때(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을 때ㅡ히 6:6) 이야기는 아주 달라지는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계책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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