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9일 수요일




사람들은 대개 대소변 보는 것을 예로부터 더럽다, 창피하다고 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지금은 스승을 알기를 무엇 같이 여기지만 과거에는 사도(師道)를 중시하여 사람되라고 가르쳤기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을 우러러 보았으므로 선생님은 대소변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본성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가 성적으로 관계하는 것도 한 편으로는 짐승 같다고 여기기에 예로부터 그런 일을 방사(房事)라고 했습니다. 다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은밀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모순이 됩니다. 창조하실 때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도록 만드셨느냐 이 뜻입니다. 짐승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방귀를 뀌는 것마저 그 소리가 나오는 배설구를 연상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가능하면 그 소리 내는 것을 참는 정도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참을 수 없어 방귀를 뀌니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방귀 뀐 임자의 무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각하, 시워하시겠습니다" 한 것을 두고 아첨의 본보기라 해서 널리 회자되었지만 이 또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인간의 편협한 시각입니다. 아첨이라기보다 염치없이 나와버린 현장에서의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어른의 당혹스러운 감정을 역지사지로 어는 정도 완화시켜 준 재치 있는 응수라고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천사들(靈物)은 대소변을 보지 않습니다.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기보다는 순수한 식도락을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육체가 완전히 투명해지기도 하는 판에 먹고 마신 찌꺼기가 배설되느라 걸리는 시간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짝짓는 일도 없습니다. 아담 역시 초자연계 몸으로 있어 짝 짓기 위해 남녀로 분할된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할 짝을 이루기 위해 대칭성 원리에서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로 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하나님의 모습을 따름이어서 "홀로 지내는 것(獨處)이 좋지 않다" 하셨습니다. 
여자가 없었다면 아담(여자도 남자도 아닌 남녀 본질을 하나로 조화시켜 있으므로)이 초능력으로 자식 생산을 했을 것이나 여자가 있음으로 해서 여자가 그 역할을 했을 것이요 (자연계의) 동물적인 교접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초자연계 몸으로서의 광채가 벗겨져 나간 자연계 몸의 벌거숭이가 되어 있음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자연계 몸이 되면서 자연계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자식을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남녀간의 애정 교환은 초능력의 초자연계 몸이기 때문에  자연계 육체처럼 굳이 육체적으로 접속을 해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기만 해도 그 눈빛만으로도 육체적인 교접이 가히 미치지 못할 최상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연계에 속한 동물 같은 모양에다 동물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을 이제 자연계에 속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워하게 되는 연유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만드시지 않았고 인간이 범죄하여 이런 부끄러움을 스스로 불러들였으니 슬픈 현실입니다. 

자연계 몸이 되면서 "대소변", "남녀 잠자리" 등이 수반된 것입니다. 이런 비극적 실상은 모르고 인간도 동물과 무엇이 다르냐 하고 심지어 벌거벗고 지내는 나체족이 되는 것도 불사하니 악령 사탄, 이 세상 신에게 완전히 휘둘려서 그런 볼썽 사나운 짓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일반 동물과 무엇이 다르냐" 하고 이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한 때 인간이 초자연계 몸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함이 됩니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여 말할 줄 안다는 그것입니다. 인간이 애당초 초자연계 몸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이런 사실도 지적합니다. 사탄은 이런 비극적 결말을 침소봉대하여 오늘날 온갖 음풍(淫風)을 온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한낱 고깃덩이인 동물에 불과한 존재로서 인간을 부각시켜 영혼을 고사(枯死)시키려는 획책입니다. 

세상이 이러고도 잘도 굴러간다고 착각할 일이 아닙니다. 억지로 추스려 간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 강제력의 하나가 3운법칙입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억지로 끌고가는 것이므로 임시변통인 것이며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이 목적이 끝나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세상은 막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다름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복음)이 온 세상 에 전파되는"(마 24:14) 일입니다. 지금은 그 전파의 정리 기간으로서, 잘못 전파된 것은 바로잡아 주는 일을 겸해서 전파된 구원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불의를 좋아하는 이들"(살후 2:12)을 적 그리스도를 통해 도태시키는 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한 사람의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족했지만 지금은 구원을 얻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마다 개개인 모두가 다 세례 요한의 몫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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